2024년 4월 29일(월)

사춘기 혼자 견디는 소녀, 엄마 손길로 보듬어주세요

편부·조손가정 여자 아이, 초경·속옷 등 대처 어려워
굿네이버스 女兒 지원 사업 ‘소녀야, 너는 반짝이는 별’
여성용품 담은 선물 전하고 성장·진로 멘토링도 마련

은수(가명)는 열네 살이다. 학교 마치고 집에 돌아온 은수를 유일하게 반기는 사람은 할아버지다. 시각장애 1급인 할아버지는 몸이 불편해 일을 나갈 수 없다. 부모님은 이혼하고 난 뒤 연락이 끊겼다. 은수는 할아버지와 함께 경제적 어려움 속에서도 꿋꿋하게 지내왔다. 지난해, 초경을 하기 전까지는.

그날 은수는 막막했다. 생리대는 어디서 사야 하는지, 어떻게 착용하는지 알려줄 사람이 없었다. 친구에게도 물어보지 못했다. 친구들도 그런 걸 물어보진 않았기 때문이다. 문득 잊고 지내던 엄마의 빈 자리. 마음 한편이 아려왔다.

열네 살 은수는 굿네이버스 여아 지원 사업을 통해 용기를 얻고 밝게 성장하고 있다. 사진은 실제 지원 대상 아동이 아닌 대역으로 촬영됐다. ⓒ오태경 사진작가

여아 지원 캠페인, 2년간 시민 2만명 동참

저소득 가정의 여성 청소년이 매달 겪는 생리적 현상에 대응하지 못해 고통받고 있다. 통계청이 5년마다 발표하는 ‘아동종합실태조사'(2013년 기준) 결과에 따르면, 전국 저소득 가정의 아동은 약 38만명. 이 가운데 여성 청소년(9~17세)은 13만여 명에 이른다. 2년 전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일으킨 ‘깔창 생리대’ 사건은 그 심각성을 일깨우는 계기가 됐다. 여성으로서 자연스럽게 경험하는 월경. 이를 두려움과 공포로 느끼는 아이들이 있다는 사실이 어른들을 충격에 빠뜨렸다.

이후 사회 전반에서 움직임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차원에서 여아 지원 사업이 꾸려졌고 개인 후원도 고개를 들었다. 그해 10월 굿네이버스는 국내 NGO 단체 가운데 최초로 대규모 여아 지원 캠페인 ‘소녀야, 너는 반짝이는 별’을 기획했다. 불과 3개월 만에 약 4100명이 캠페인에 참여했고, 이를 기반으로 이듬해 1월부터 첫 지원 사업을 시작할 수 있었다. 지난해에만 이 캠페인을 통해 여아 3800여 명에게 약 4억4000만원 규모의 지원이 이뤄졌다. 올해는 대상자를 4000여 명으로 확대하면서 지원 규모도 약 4억7000만원으로 커졌다. 지금까지 캠페인에 동참한 시민은 2만1000명에 달한다.

굿네이버스 여아 지원 사업을 통해 한 해 4000여 명의 저소득가정의 아이들이 지원받고 있다. 사진은 실제 지원 대상 아동이 아닌 대역으로 촬영됐다. ⓒ오태경 사진작가

생리대·속옷 담긴 선물상자… 주기적 멘토링으로 마음까지 보살펴

은수 또래의 아이들에게 필요한 건 생리대만이 아니다. 아버지와 함께 지내거나 조손 가정에서 생활하는 아이들은 2차성징이 나타났을 때 상대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다. 혼자 골라야 하는 속옷, 부인과 검진, 화장품 구비 등도 아이들에게는 큰 산이다.

굿네이버스는 여아들에게 필요한 물품을 한데 담은 ‘반짝반짝 선물상자’를 전달하고 있다. 상자 속에는 ▲생리대(6개월분) ▲생리대 파우치 ▲보디워시 ▲종합 비타민 ▲손거울 ▲속옷 교환 쿠폰 등이 들어 있다. 특히 속옷 교환 쿠폰은 신체 치수를 혼자서 잴 수 있도록 제작된 줄자와 함께 제공되는데, 이를 통해 치수와 디자인을 골라 인터넷으로 주문하면 몸에 맞는 속옷을 받아볼 수 있다. 해당 서비스엔 예비 사회적기업 온리원스가 손을 보태고 있다.

정서적 결핍 역시 저소득 가정의 소녀들에게서 보이는 모습 중 하나다. 굿네이버스는 전국 52개 지부를 통해 초등학교 고학년부터 중학교에 다니는 여아 가운데 도움이 필요한 학생들을 찾아나섰고, 아이들이 신체 변화에 대한 이해가 상대적으로 낮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이를 계기로 단순 물품 지원으로 그칠 수 있는 지원 사업에 멘토링을 더했다. 여학생에게 특화된 맞춤 멘토링을 시작한 것. 아이들은 성교육 전문 강사와 함께 위생용품 구매부터 사용법, 위생 관리 등에 대한 정보를 나눈다. 또 소녀들이 겪는 신체 변화뿐 아니라 이성 교제, 친구 관계, 진로 등 다양한 고민을 솔직하게 이야기한다.

유혜선 굿네이버스 국내사업본부장은 “저소득 가정 여아들의 건강한 발달과 성장을 도모하기 위해 위생용품 지원을 넘어 여아들이 겪을 심리·정서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고민하고 있다”면서 “현장 의견을 수렴해 수시로 지원 방향을 점검하고, 더 많은 아동이 지원받을 수 있도록 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문일요 더나은미래 기자 ilyo@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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