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9일(월)

영리기업, 사회적기업 키울 수 있을까… “생존 안 되면 지원 의존할 수 밖에”

사회적기업 ‘딜라이트’ 김정현 대표
정부지원·외부 도움 받고… 돈·명예 모든걸 희생한다는 사회적기업 편견 없애야

‘딜라이트’는 성공한 청년 사회적기업의 대명사다. 2010년 9월 창업한 딜라이트는 청각 장애인을 위한 보청기를 34만원짜리 초저가로 판매하는 서울형 사회적기업이다. 사회적기업 연구동아리 활동을 하던 대학생 3명이 함께 경기도 부천의 가톨릭대 창업보육센터에 사무실을 열고 보청기 개발을 성공시킨 것이 그 시작이다. 이제 딜라이트는 직원이 41명, 작년 매출액 15억원, 오프라인 지점도 9개나 설치됐다. 하지만 최근 만나본 일부 사회적기업가는 “딜라이트가 20억이 넘는 외부 투자를 받은 이후 달라졌다. 과연 사회적기업인지 영리기업인지 잘 모르겠다”고 비판했다. 왜 그런 걸까. 서울 영등포구 당산동에 위치한 딜라이트 본사에서 김정현(26) 대표를 만나 그 이유를 들어봤다.

2010년 대학생들이 모여 창업한 사회적기업‘딜라이트’의 초창기 모습. 대학생 3명이 함께 시작한 딜라이트는 이제 직원 수만 41명으로 늘었다. 사진 맨 왼쪽이 김정현 대표다. /조선일보 DB
2010년 대학생들이 모여 창업한 사회적기업‘딜라이트’의 초창기 모습. 대학생 3명이 함께 시작한 딜라이트는 이제 직원 수만 41명으로 늘었다. 사진 맨 왼쪽이 김정현 대표다. /조선일보 DB

―딜라이트가 외부투자를 받은 이후 기업 성격이 영리기업 쪽으로 바뀌는 것 아닌가 하는 걱정이 많다.

“처음에 34만원짜리 제품 딱 1개뿐이었는데, 2010년 9월부터 온라인 판매를 시작해 그해 2억원어치를 팔았다. 전화와 편지를 수십통 받았고, 제주도에서 부모님 모시고 비행기 타고 오거나 지방에서 KTX 타고 올라왔다. 온라인을 통해 공급했더니 애프터서비스를 하는 것도 문제이고, 사람들이 직접 보청기를 보고 난 후 사용해보고 싶어하더라. 그때가 스물네 살이었다. 갑자기 커지니까 고민이 많았다. 처음엔 작게 시작해서, 영업공간도 없고 제조시설도 없었다. 모두 외부시설에 생산주문을 맡기고 있었다. 학교를 휴학하고 제대로 투자유치를 받기로 했다. 여러 곳과 접촉했는데, 투자의사가 있는 곳이 딱 3곳이었다. 한 곳은 절대적인 금액이 너무 적어 현 상황을 해결할 수 없었고, 또 한 곳은 금융·재무적인 투자만 전문으로 하는 곳이라 액수는 컸지만 시너지를 내기가 어려웠다. 현재의 파트너는 제약업을 하고 있어 아직 어리고 조직 운영경험이 없는 우리한테 도움이 될 것 같았다.”

―’영리기업은 주주의 목적에 충실해야 하고 배당도 해야 하는데, 사회적기업을 키울 수 있을까’ 우려하고 있다.(영리기업은 가처분 이익을 주주에게 배당할 수 있지만, 사회적기업은 3분의 2 이상을 사회적 가치를 위해 써야 한다.)

“철학이 맞느냐 맞지 않느냐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린다. 지금은 사회적 기업에 투자하는 임팩트 투자(impact investment)가 생겨나고 있지만, 당시엔 최선의 선택이었다. 원래는 다른 수익사업을 만들어내어 애초의 취약계층만 대상으로 한 사업을 계속할까 생각해, 해외의 사회적기업가들에게 직접 조언을 구했다. 답은 간단했다. 관련 산업 내에서 수익 모델도 만들어내어야지 다른 수익사업을 만들어낸다는 건 위험하고 어렵다는 것이다. 그래서 특정한 계층에 특정한 제품만 공급하는 방식에서 모든 제품 라인업을 도입해, 수익도 날 수 있게 발전시키는 게 좋겠다고 판단했다. 아직은 수익이 많지 않고 작년까지 적자였기 때문에, 배당 여부에 대해서는 아직 잘 모르겠다.”

―딜라이트는 청년 사회적기업의 대표주자로 많은 주목을 받고 있다. 직접 사업체를 운영해보니, 어떤가.

“사회적기업이 육성되어야 한다고 하면서, 사회적기업에서 일하려면 돈이나 명예나 모든 걸 희생해야 한다면 그걸 직업으로 가질 젊은이가 얼마나 있을지 모르겠다. 사회적기업이 정부 지원이나 외부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존재인 것처럼 좁은 의미로 여겨지는 것은 문제라고 생각한다. 미국의 탐스슈즈는 신발 하나를 팔아 아프리카 아이들에게 하나씩 주는 방식으로 비즈니스를 해서 매출액이 조 단위다. 나는 상징적으로 월급 100만원을 받지만, 우리 직원들은 대기업 수준의 월급을 받는다. 누군가의 희생만 요구하는 미래 비전이 없는 구조에서 기성세대는 청년들에게 자꾸 사회적기업을 창업하라는데, 현실적으로 이런 구조에서 뜻이 있어도 누가 선뜻 나서겠는가.”

―지난 5년 동안 사회적기업이 양적으로 팽창했다. 이제 질적인 팽창이 필요한 시점인데, 어떤 부분이 가장 필요할 것으로 보는가.

“우리 회사에서 인턴을 뽑으면 아이비리그(IVY league) 출신들이 서로 일하려고 온다. 젊은 층이 가고 싶어 하는 사회적기업 모델이 없다. 지난 4월 한 달 동안 미국을 돌면서 사회적기업의 주요 인사를 다 만나고 왔다. 한국에서 이만큼 사회적기업의 성공 모델을 만들었다는 사실에 다들 놀랐다. 미국은 수천억원 단위의 임팩트 투자 펀드가 많고, 수익률도 전반적으로 좋았다. 그런 인프라가 우리나라에도 있었더라면, 우리도 훨씬 수월했을 것 같았다. 앞으로도 한국에 이런 사회적기업 투자가 없을 것이라면 사회적기업의 성장은 어렵다고 본다.”

김정현 대표는 “사회적기업이 돈을 못 벌면, 자생하기 위해 누군가는 지원을 해야 하고, 지원에 의존하는 순간 지속가능성이 없어진다”며 “사회적기업은 자생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일부 사회적기업 전문가는 “사회적기업은 돈을 벌어 생존한다는 것에 앞서,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미션’이 더 중요하다”며 “앞으로 영리기업에 의해 딜라이트가 어떻게 변할지 걱정된다”고 말한다. 딜라이트의 사례엔 도약기에 놓인 한국 사회적기업의 고민이 그대로 녹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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