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 활동을 통해 수학·과학·영어 등의 교과목을 수업하는 ‘예술융합교육’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학생들은 선생님의 설명을 듣는 대신 직접 몸을 움직이며 ‘빠름’과 ‘느림’의 개념을 이해하고, 팔다리를 벌려 ‘예각’과 ‘둔각’의 차이를 배운다. 영국 교육회사 ‘아티스 에듀케이션(Artis Education·이하 아티스)’은 2004년 설립 이후 지금까지 현지 초등학교 700여곳 50만명의 학생에게 이 같은 예술융합교육을 제공했다.
아티스의 창립자인 레베카 보일(Rebecca Boyle)은 지난해 아티스를 유한회사에서 비영리재단으로 변경했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지역에 있는 초등학교에 아티스 프로그램을 더 적극적으로 보급하기 위해서다. 회사 대표였던 그는 현재 재단 이사장을 맡고 있다. 워크숍 참석차 한국을 찾은 레베카 보일 아티스재단 이사장을 지난 20일 서울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영국 700여개 초등학교 정규 수업에 아티스의 예술교육 도입
“뛰어난 예술가들을 보면 대부분 어릴 적부터 예술을 접할 수 있는 환경에 놓여 있었어요. 그런 경험을 통해 본인의 자질과 꿈을 키워나갈 수 있었죠.”
보일 이사장은 미국 예일대에서 음악학 석사 학위를 받은 뒤, 예술 매니지먼트 회사인 IMG에서 7년간 무용가, 음악가, 공연 예술가들의 활동을 관리하고 지원하는 일을 했다. 그는 “IMG에서 여러 예술가와 함께 일하며 어릴 적부터 예술을 접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걸 깨닫게 됐다”면서 “더 많은 아이에게 예술을 경험할 기회를 주고 싶어 아티스 에듀케이션을 설립했다”고 말했다.
“아티스 프로그램은 아이들이 무용, 음악, 연극을 결합한 예술 활동에 참여하며 자연스럽게 교과목에 관한 지식을 익히도록 설계돼 있어요. 예를 들어 과학 교과에 나오는 ‘태양계’를 배운다고 하면, 아이들이 각자 하나의 행성이 되어 궤도를 도는 퍼포먼스를 하며 이야기를 만들고 함께 노래를 부르는 식이죠. 이렇게 몸을 직접 움직이면서 자연스럽게 태양계 원리를 이해하고 행성 이름을 배우게 됩니다.”
보일 이사장은 가급적 많은 어린이에게 예술 활동 기회를 주기 위해 ‘초등학교 수업 시간’을 파고들기로 했다. 추가로 특별 수업을 편성하는 식이 아니라, 정규 교과 과정과 결합시켜 학교 운영에도 부담을 주지 않고, 전 학생이 참여할 수 있게 한다는 계획이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초등학교 교장을 설득해야 했다.
“영국의 초등학교도 한국과 마찬가지로 담임선생님 한 사람이 모든 교과목을 가르칩니다. 교사들은 대체로 영어나 수학과 같은 주요 과목에 초점을 맞추고 있어요. 그래서 음악, 무용, 연극 등 예술 분야에 대해서는 예술가들보다 전문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아티스의 예술교육 전문가들이 담임선생님과 함께 수업을 진행하면, 보다 창의적이고 풍성한 수업이 될 수 있다고 교장 선생님들을 설득했습니다.”
보일 이사장은 “양질의 수업을 위해 ‘예술교육 전문가 양성’에 상당히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고 강조했다. 지난 14년간 아티스가 예술교육 전문가 양성에 투자한 금액만 130만 파운드(약 19억원)에 달한다. 그는 “아티스의 수준 높은 훈련을 통해 약 700여명의 예술교육 전문가가 탄생했다”면서 “모든 교과 수업에 예술을 접목해 아이들을 가르칠 수 있는 최고의 전문가들”이라고 말했다.
◇“창의력 길러주는 예술융합교육, 한국의 교육 현장에 변화 일으키길”
현재 아티스는 초등학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다양한 교과목에 예술활동을 결합한 ‘아티스 러닝(Artis Learning)’ ▲아이들의 심리적 ‘웰빙’에 초점을 맞춘 ‘아티스 바운스(Artis Bounce)’ ▲영어 교육 프로그램 ‘아티스 랭귀지(Artis Language)’ ▲수학 교육 프로그램 ‘아티스 매스(Artis Maths)’ ▲예비 중학생들의 중학교 적응을 돕는 ‘아티스 트랜지션(Artis Transition)’ 등 5가지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다. 이런 프로그램을 통해 아이들은 교과 내용을 더 쉽고 재미있게 배울 수 있다.
아티스 프로그램은 학생들의 창의력, 자기표현력, 팀워크, 의사소통 능력, 자신감 등을 기르는 데도 효과를 내고 있다. 보일 회장은 “처음부터 이런 성과까지 기대한 것은 아니었다”며 웃었다.
“원래 아티스 프로그램은 아이들이 조금 더 일찍 예술을 접하면서 예술에 흥미를 느끼고 예술가의 꿈을 키울 수 있도록 하는 게 목적이었어요. 그런데 설립 초기 함께 수업을 진행해본 교장 선생님들로부터 뜻밖의 피드백을 받았죠. ‘아이들의 수업 참여도가 높아졌다’ ‘자기표현을 더욱 적극적으로 하게 됐다’ ‘자존감이 높아졌다’ 등의 이야기였어요. 덕분에 우리와 수업을 진행한 학교 중 상당수가 꾸준히 파트너십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아티스는 한국에서도 여러 차례 교사 대상 워크숍을 진행한 바 있다. 2012년과 2015년엔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초청으로 한국을 찾아 국내 예술 강사들에게 아티스의 노하우를 공유했다. 지난해엔 현대차 정몽구 재단이 주최한 창의예술교육 연수 프로그램에서 국내 초·중등 교사, 예술강사, 교육복지사 50명에게 예술을 접목해 정규 과목을 가르치는 창의 교육 기법을 소개했다.
“4차 산업혁명 시대, 아이들에게 가장 중요한 건 창의력과 상상력입니다. 예술융합교육을 통해 이런 능력을 기를 수 있죠. 한국에서 진행한 몇 번의 워크숍을 통해 창의적인 교육 방식에 대한 교사들의 관심과 열정이 대단하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아티스의 프로그램을 접한 교사들이 학교로 돌아가 동료에게 그들이 배운 예술 교육 기법을 소개하는 식으로 예술을 접목한 창의교육을 시도하는 교사들이 점점 늘어난다면 한국의 교육 현장에도 변화가 일어나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