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6일(월)

[12가지 핵심과제] ④ 아동_힘없는 아동정책… 아동 애드보커시(Advocacy·권리옹호) 그룹 키우자

‘아동의, 아동을 위한 법’… 필요한 때
아동 정책 매번 후순위, 예산도 OECD 중 꼴찌
경찰·병원 협조 없어… 사건 사후 체계 조사 안 돼
국내에 아동 백서 없고 정책·방향도 성인 중심
독립적인 위상·예산 가진 아동권리 옹호 단체가 정부 감시·정책 제시해야

지난달 27일 서울 송파구 삼전동의 한 PC방 화장실에서 아이를 출산한 뒤 영아를 비닐봉지에 담아 질식사시키고, 이를 인근 모텔 주차장 화단에 버린 사건이 발생했다. 범인은 26세 여성 전모씨. 이후 언론과 인터넷에선 “엄마가 인터넷 게임에 중독돼 동거하던 남성과 임신한 줄도 몰랐다”는 뒷얘기가 쏟아져나왔다.

하지만 ‘버려진 영아의 죽음’에 대한 목소리는 어디서도 없었다. 정익중 이화여대 사회복지대학원 교수는 “화장실에서 아이를 낳았다는 식의 보도만 있을 뿐, 아이의 생존권이나 건강 등에 관한 이야기는 찾아볼 수가 없다”고 말했다. 이번 사건의 이면에는 ‘버려진 또 한 명의 아동’이 있었다. 아이 엄마 전모씨는 초등학교 때 아버지를 간암으로 잃고 정신병을 앓는 어머니 밑에서 전혀 보호받지 못한 채 가출, 수년 동안 PC방과 찜질방을 떠돌며 살아왔기 때문이다.

국내 '아동 권리' 전반에 대한 인식 수준은 매우 낮은 편이며, 정책과 방향도 아동 중심이 아닌 성인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조선일보 DB
국내 ‘아동 권리’ 전반에 대한 인식 수준은 매우 낮은 편이며, 정책과 방향도 아동 중심이 아닌 성인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조선일보 DB

◇아동 권리는 찬밥 신세

이 사건이 선진국에서 발생했다면 어땠을까. 영국에선 2000년 부모의 학대로 아동이 사망하는 ‘빅토리아 크림비’ 사건이 발생했다. 당시 의회는 수차례 조사활동을 벌였고, 토니 블레어 총리는 “10개월 동안 최소 10회의 위기개입 시점이 있었으나 놓쳤다”며 기존 아동보호제도를 ‘실패’로 규정했다. 이 사건을 계기로 2004년 아동법이 전면 개정됐다.우리나라의 경우는 어떨까. 세이브더칠드런 김희경 권리옹호부장은 “아동보호전문기관 상담원이 학대아동을 구출하러 갔다가 아버지에게 맞아 뇌진탕이 된 경우도 있고, 최근엔 아이를 빼앗겼다고 생각한 학대부모가 아동보호단체에 와서 불도 질렀다”며 “아동학대나 방임 등의 문제를 정부가 민간단체에 위탁하지만, 공권력이 없으니 출동해도 효과가 없고, 사회 전체가 아동폭력에 무관심하다”고 말했다.

◇아동복지 예산 OECD 중 꼴찌

장애인·노인 등과 달리 아동은 자신의 목소리를 자신이 직접 대변하기 힘들다. 모든 정책에서 소외될 수밖에 없다. 이호균 한국아동권리모니터링센터장은 “2000년 초부터 관심을 가져온 아동학대나 성학대, 방임, 빈곤아동문제 등에 대해서는 서서히 인식 개선이 이뤄지고 있지만, 아직 ‘아동권리’ 전반에 대한 인식 수준은 매우 낮다”며 “미국은 아동이 정책 1순위인데 반해 우리나라는 매번 후순위이고, 아동관련 예산도 OECD 중 꼴찌”라고 말했다. 이 센터장은 “주정부별로 지자체 예산이 활성화된 미국도 아동예산만은 국가가 쥐고 있는데, 우리는 지자체에 아동복지 예산이 이양돼 재정자립도에 따라 예산편차가 너무 크다”고 말했다.

정익중 교수는 “아동사망사건 사후관리 서비스 체계를 조사하려고 해도 경찰과 병원의 협조가 이뤄지지 않아 힘들고, 아동학대 사망통계도 중앙아동보호전문기관과 경찰청의 통계 차이가 너무 많이 난다”며 “큰 틀에서 아동정책을 재구성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아직 우리나라엔 아동 백서조차 없다.

◇아동 목소리를 대변할 그룹 절실해

전문가들은 아동의 목소리를 대변해줄 ‘애드보커시(Advocacy·권리옹호)’ 그룹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김희경 부장은 “보건의료가 열악한 나라에서 백신만 제공한다고 되는 게 아니라, 보건 관련 종합의료서비스가 가능하도록 정책이나 제도를 바꾸라고 촉구해야 한다”며 “아동학대도 형법상 범죄로 구성이 안 되면 처벌이 힘들듯이, 제도 개선이 이뤄지도록 애드보커시가 함께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김 부장은 “유럽의 많은 NGO는 옹호 활동이 단체의 핵심인 경우가 많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우리 NGO의 경우 정부 위탁사업을 통해 지원을 많이 받다 보니, 목소리를 높여야 할 때 이 부분이 한계로 작용한다. 아동단체협의회가 해마다 정책포럼을 열지만, 정작 관심을 가져야 할 정부정책 담당자나 국회의원 등의 참석률은 낮다. NGO 또한 자기 사업에 매몰된 채, 제도개선을 위한 한목소리를 내지 못한다. UN아동권리협약을 가입한 지 20년이 넘었지만, 지금까지 아동정책을 독립적으로 모니터링하는 기구도 없었다. UN의 지적을 받은 정부는 올해 들어서야 한국아동권리모니터링센터를 민간에 위탁운영토록 했다.

이봉주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외국은 민간의 큰 재단에서 아동 권리옹호를 전문으로 하는 단체들이 있어, 이 단체가 정부와 국회에 문제제기와 정책제안을 한다”며 “우리도 독립적인 위상과 예산을 가진 아동권리 옹호 단체가 만들어져 정부의 감시기능과 정책 파트너십을 담당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란희 편집장

정유진 기자

관련 기사

Copyrights ⓒ 더나은미래 & futurechosun.com

전체 댓글

제261호 2024.3.19.

저출생은 '우리 아이가 행복하지 않다'는 마지막 경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