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8일(수)

인식의 벽 허무니 “청각 장애인 바리스타가 탄생했어요”

수화로 소통하는 스타벅스

갈색 문을 열고 들어서니 은은한 커피 향이 가득하다. 매장 안쪽으로 커피를 만드는 바리스타들의 분주한 손길이 눈에 들어왔다. “카페 라떼, 톨(tall).” 주문이 들어오자 가장 바깥쪽에 서 있던 바리스타가 엄지와 검지를 이용해 ‘L’모양을 만든다. 커피 머신 앞에 서 있던 다른 바리스타가 고개를 끄덕이더니, 오른손으로 거품기를 집어들었다. 달달하고 부드러운 카페 라떼가 이내 완성됐다.

정유진기자_사진_스타벅스_청각장애인바리스타_2012지난해 9월 이후, 달라진 스타벅스 매장의 풍경이다. 청각장애인 바리스타가 바(Bar)에 서서 커피를 제조한다. 스타벅스커피 코리아는 2007년 장애인 4명을 채용한 이래, 2009년 6명, 2010년 15명, 2011년에 36명을 채용했다. 그러나 채용 초기만 해도 이들의 주된 업무는 테이블 정돈, 매장 내 청소, 물품 정리에 한정됐다. 손님이나 직원들과 직접적인 의사소통이 어려웠기 때문이다. ‘굳이 말을 하지 않아도 표정과 눈빛, 손짓 교환만으로 커피를 제조할 순 없을까.’무교동 서정민(33) 점장은 이런 고민을 시작했다.

“이 친구들이 바리스타로서 역량을 키울 기회를 주고 싶었어요.”

들리지 않고, 말할 수 없기에 이들이 바리스타로 홀에 서는 건 불가능하다는 인식이 많았다. 편견을 깨는 일이 먼저였다. 서 점장은 직원들을 불러 모았다. 누구든지 갑작스러운 사고나 병으로 장애를 가질 수 있고, 몸이 조금 불편한 것 외에는 이들과 다른 점은 아무것도 없다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모두 공감하더군요. 그때부터 직원들과 함께 홀에서 대화 없이도 소통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기 시작했어요. 처음엔 메뉴별로 카드를 만들어서 보여주는 방법을 생각했는데, 너무 번거로웠어요. 찾아낸 방법이 바로, 메뉴를 손가락으로 간단하게 표시한 ‘수화’였죠.”

(위)서정민 스타벅스 무교점 점장과 이소현 바리스타가 함께 만든 수화. (아래)손짓과 몸짓만으로 스타벅스의 모든 메뉴를 표현할 수 있다. 서정민 점장(왼쪽)이 청각 장애 바리스타와 함께 스타벅스 음료 메뉴를 수화로 표현하고 있다.
(위)서정민 스타벅스 무교점 점장과 이소현 바리스타가 함께 만든 수화. (아래)손짓과 몸짓만으로 스타벅스의 모든 메뉴를 표현할 수 있다. 서정민 점장(왼쪽)이 청각 장애 바리스타와 함께 스타벅스 음료 메뉴를 수화로 표현하고 있다.

엄지손가락을 세워 소문자 에이(a)를 만들면 ‘아메리카노’, 세 손가락을 구부려 엠(m)을 만들면 ‘마키아또’, 콧잔등 위에 둘째 손가락을 올리면 ‘딸기’ 등 이들만의 새로운 수화가 만들어졌다. 그 과정에서 청각 장애인 이소현(29)씨와 다른 직원들 사이에 친밀감도 형성됐다. 수화를 모르면 대화가 불가능할 거란 생각 때문에 다가서지 못했던 직원들이 소현씨와 자연스레 소통하기 시작했다. 의사소통이 자유로워지자 소현씨의 역량도 하루가 다르게 발전해 갔다.

“이소현 바리스타는 우유 거품을 낼 때 소리 대신 손의 감각으로 작업해요. 스팀기의 진동 느낌을 일반인보다 더 미세하게 잡아내기 때문에, 우유 거품의 밀도가 높은 쫀득쫀득하고 부드러운 카페 라떼와 카푸치노를 정말 잘 만듭니다. 한번 맛본 손님들은 카푸치노를 주문할 때 이소현 바리스타만 찾는다니까요.”

이렇게 만들어진 수화는 청각 장애인을 고용한 스타벅스 매장 전체로 확산됐다. 덕분에 소현씨처럼 전문 바리스타로 홀에 서는 청각 장애인의 숫자가 늘어났다. 스타벅스커피 코리아는 직원들을 대상으로 전문 수화 교육을 정기적으로 실시하고, 스타벅스 인기 메뉴를 수화로 표시한 안내문을 만들어 카페 내 잘 보이는 곳에 부착했다.

서 점장은 “안내문을 보고 수화로 직접 주문하는 손님이 늘어났다”며 스타벅스 매장 내의 달라진 분위기를 전했다. 스타벅스 코리아 송혜경 과장은 “미국 시애틀 본사로 메뉴별 수화 사진을 보냈는데, 반응이 놀라웠다. ‘당장 시도해야겠다’며 고마워하더라. 전 세계 스타벅스 매장으로 이 문화가 확산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서 점장의 나눔은 카페 밖에서도 이어진다. 스타벅스 봉사 동아리 ‘크레마(Cre ma)’ 운영위원인 그녀는 직원들과 함께 정신지체 장애인들이 운영하는 카페, ‘해뜨는 샘’에 찾아가 바리스타 기본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이러한 선행을 인정받아서 점장은 2006년, 개점 7주년 기념 ‘모범파트너’로 선정된 데 이어, 작년 4월에는 스타벅스 40주년 ‘스피릿 오브 스타벅스(Spirit of Starbucks)’상을 받았다. 얼마 전엔 ‘윤리 마일리지(기부, 봉사에 참여할수록 나눔 지수가 올라간다)’가 가장 높은 직원으로 선정돼, 회사의 지원으로 베트남 봉사활동을 다녀왔다.

작은 나눔이 아름다운 이유. ‘스타벅스의 엔젤(Angel·천사)’, 서 점장의 모습 속에 담겨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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