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9일(월)

하루 평균 43명 목숨 끊어… 10~20대 ‘자살 거부감’ 약하다

대한민국, 자살 보고서
자살률, 사고사의 2.3배 OECD 회원국 중 1위
약해지는 개인 의지와 부정적 사례 쉽게 접하는 사회적 환경 영향도 커
우울증과 자살은 ‘실과 바늘’ 관계, 국민태도 조사 결과 70대 우울증 31.4%
자살률 증가에 비해 대응 시스템은 미비… 정부 지원 적어 기업·공익재단에 의존

마포대교에 설치된 SOS 생명의 전화
마포대교에 설치된 SOS 생명의 전화

“그냥…상담하면 돼요? 뭐부터 말해야 할지 모르겠어요.(울먹)”

20대 여성의 힘없는 목소리. ‘한국생명의전화’에 걸려온 한통의 사연은 그렇게 시작됐다. “아무도 없는 것 같아요. 그냥 세상에서 없어져 버렸으면….” 울먹거림으로 근근이 이어지던 말조차 끊기고 침묵이 이어졌다. 상담사는 “울고 싶으면 참지 말고 시원하게 울어버려요. 얘기는 나중에 하고”라며 그녀를 다독거린다. 부모의 이혼, 가출, 그리고 한 남자와 힘든 결혼생활에서 겪은 외로움과 고통이 침묵과 흐느낌의 교차 속에서 천천히 전해졌다. 상담사는 질문을 건네다가도 어떤 대목에선 조곤조곤 달래기도, 함께 울분을 표하기도 하며 공감대를 형성해간다. 행여 대화 속에서 “죽고 싶다”는 말이 나올 때면 “그런 생각은 하지도 말아요. 죽긴 왜 죽어, 멋지게 살아야지”라며 용기를 준다. 30여분의 시간이 흐르고 대화가 무르익어가자, 이 여성의 목소리에 점차 생기가 감돌기 시작한다. 간혹 옅은 웃음소리마저 들린다. “우리 슬기롭게 헤쳐나가요, 이겨낼 수 있죠?”라는 상담사의 마지막 당부. “네”라는 답변 속에는 새로 얻은 용기가 배어 있는 듯하다.

◇IMF 이후 폭발적으로 늘어난 자살률

한국은 과연 ‘자살공화국’ 오명을 벗을 수 있을까. 2010년 기준, 우리나라에서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사람은 하루 평균 43명에 이른다. 이는 30년 전에 비해 4배가량 증가한 수치다. 자살자는 교통사고 사망자의 2.3배나 된다. OECD 표준인구로 계산한 한국의 자살률은 28.1명으로 회원국 중 1위다. OECD 국가 평균 자살률 11.3명보다는 무려 148% 높은 수치다. 독일·덴마크·오스트리아 등 OECD 대다수 국가는 지난 15년간 자살률이 30% 이상 크게 떨어졌는데, 우리는 왜 점점 자살이 늘어나는 것일까.

지난 1976년부터 한국 최초로 전화 카운슬링 활동을 시작한 ‘한국생명의전화’ 상담의 역사는 우리나라 자살 역사와 궤를 같이한다. 초기에는 가벼운 상담전화가 많았고, 장난 반, 호기심 반으로 걸려온 전화도 적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은 전국 19개의 종합상담센터에서 전문 상담훈련을 받은 자원봉사자 5000여명이 24시간, 연중무휴로 상담에 임하고 있다.

25년 경력의 추상희(58) 상담 자원봉사자는 “내가 상담을 처음 시작했던 1986년도 당시만 해도, 자살문제가 지금처럼 심각한 정도는 아니었다”며 “오히려 부부 사이의 갈등이나, 진로문제에 대한 고민 상담 비중이 더 컸을 정도”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IMF 이후부터 증가하기 시작한 자살률은 지난 2001년 이후부터는 매년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한국생명의전화 박현규 상담실장은 “불과 10년 전만 해도 자살과 연관시키기 힘든 이유들이 자살로 이어지고 있다는 것을 많이 느낀다”고 전했다. “점점 약해지는 개인의 의지와 그런 부정적인 사례들을 너무 쉽게 접하고 있는 사회적 환경이 결합됐기 때문”이라는 것이 박 실장의 설명이다.

우리나라에서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사람은 하루 평균 43명에 이른다. /김영근
우리나라에서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사람은 하루 평균 43명에 이른다. /김영근

◇70대 우울증 위험계층, 10~20대 ‘자살’ 덜 금기시

최근 들어 특정 연령대 자살이 증가하고 있다는 것도 큰 문제다. 우울증 위험 계층으로 급속히 편입한 노인세대의 자살은 전년대비 7.5배나 증가했다. 자살에 대한 거부감이 약해진 20대 이하 계층의 사례도 눈에 띄게 늘고 있다.

지난 2월 한국자살예방협회가 전국 만 13세 이상 남녀 12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생명존중에 대한 국민태도 조사’ 결과도 이를 뒷받침한다. 우울증 자가진단 결과 70대는 31.4%로, 전체 응답자(20.9%)에 비해 훨씬 높았다. 우울증과 자살은 ‘실과 바늘’ 관계라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이뿐 아니라 10~20대는 타 연령에 비해 ‘자살은 윤리적이지 않음/용서할 수 없는 죄악’ 등의 응답(38%)이 전체 응답(61%)대비 20%포인트가량 낮았다. 자살을 덜 금기시하는 경향이 있음을 보여주는 수치다.

한국생명의전화 라이프라인 자살예방센터의 김봉수 사회복지사는 “한 사람이 죽을 때까지 얻을 수 있는 소득을 통상 7억~10억 사이로 볼 때, 하루 400억원 이상의 직접적인 경제적 손실이 있는 것”이라며 “자살 유가족 문제 등 2차 피해까지 감안하면 손실은 더욱 커진다.”고 설명했다.

◇자살 대응 시스템 미비

하지만 자살률의 증가속도에 비해, 대응 시스템을 준비하는 속도는 더디기만 하다. 국내에서 자살 문제를 사회 전반적으로 인식하고 대응해 나가기 시작한 것은 초기단계에 지나지 않는다. 실제로 ‘자살예방 및 생명존중문화 조성을 위한 법률’ 같은 관련법이 막 시행 준비를 마쳤으며, 전문협회(한국자살예방협회)가 발족한 것도 2007년이다. 한국생명의전화의 박실장은 “생명존중 의식을 확산하는 캠페인과 예방에 관한 지원 확보가 시급한데, 현재 국가의 자살 예방 사업비는 굉장히 적은 수준”이라고 평가하며 “현재는 기업이나 공익재단의 지원에 의존하는 현실”이라고 설명했다. 생명보험사회공헌재단이 2008년부터 복지지원과 인식확산, 연구지원 등을 통해 자살예방을 지원하는 사업은 이러한 정부 지원의 사각을 보완해주고 있는 대표적인 사례다.

하지만 자살 대응 시스템만큼 중요한 건 주변의 관심이다. 한국자살예방협회의 조사 결과, 1200명의 응답자 중 77.5%가 ‘자살은 예방할 수 있다’고 답했다. 주변의 충분한 관심과 따뜻한 위로, 자살예방정책이 상호보완적으로 작용하면, 자살률을 낮추는 데 기여할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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