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7일(토)

‘조부모 교육’ 강의 듣고 건강·놀이법 배워 “며느리와 갈등 없이 손주 키우는 재미에 푹”

르포, 조부모의 손자녀 양육 현장
실제로 키워보니 10만원어치 기저귀 2주일 만에 다 써
어마어마한 양육비에 타던 차 소형차로 바꿔
시부모와 갈등 생겨 직장 관두는 여성 많아
어린이집 보낼 경우 최하 150만원 들어

이해영씨가 손자를 보며 웃고 있다.
이해영씨가 손자를 보며 웃고 있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폭신한 담요 위에서 흔들리는 알록달록 모빌이 눈에 들어왔다. 작은 나비가 움직일 때마다 아기의 얼굴에 웃음이 번졌다. 따뜻한 사람들, 기분 좋은 기운이 아기 주위를 동그랗게 둘러싸고 있었다.

“두 달 새 집안 분위기가 확 달라졌어요. 아들 딸 키울 때랑은 느낌이 또 다르더라고요. 아기가 한 번 웃을 때마다 걱정이 하나씩 사라지는 기분이에요.”

할아버지 이해영(61)씨가 손자 정원(1)이를 바라보며 흐뭇한 미소를 짓는다. 이리 안고 저리 안고, 좀처럼 품에서 떼어놓질 않는다. 기저귀·장난감·젖병 등 집안 구석구석 아기 용품이 가득했다. 부부 둘만 있을 때와는 달리, 이제는 보일러도 따뜻하게 땐다. 아기의 체온을 유지해야 하기 때문이다.

지난해 10월, 해영씨 부부는 관악구 건강가정지원센터에서 진행하는 조부모교육 강의를 신청했다. 아들 내외가 맞벌이를 하는 터라 아기가 태어나면 직접 돌봐야 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정원이가 세상 밖으로 나오기 전에 충분히 준비하고 싶었다.

“예전에 우리 아이 키울 때랑은 세상이 많이 달라졌잖아요. 아이가 울 때는 어떻게 달래는 게 좋고, 어떤 걸 먹이는 게 좋은지, 제대로 알고 손주를 키우고 싶었어요.”

조부모교육은 총 3회에 걸쳐 진행됐다. 조부모의 삶과 건강에 대한 기본적인 정보는 물론, 손자녀와 재미있게 놀이하는 방법, 양육 방식의 차이에 따른 갈등 사례를 토론하는 구체적인 프로그램도 준비돼 있었다.

“조부모 교육에 대한 관심에 비해 개설된 강의가 너무 적어요. 구청 홍보지에 조부모 강의가 개설됐길래, 주변에 관심을 보이는 할머니·할아버지들과 함께 교육을 받으러 갔죠. 손자녀를 양육하는 다른 조부모들과도 만날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고민은 비슷했어요. 며느리와 갈등 없이 손주를 잘 키울 수 있는 방법이었죠. 강의를 듣고 나니, 오랜 공백 후 아기를 키운다는 것에 두려움이 사라지고 오히려 기대감이 들더군요.”

저출산과 취업 여성의 육아 문제 해결을 위해 조부모의 손자녀 양육 교육이 필요한 시점이다. 일찍부터 조부모 교육을 받고 손자를 돌보고 있는 이해영씨 부부와 며느리. /세살마을연구소 제공
저출산과 취업 여성의 육아 문제 해결을 위해 조부모의 손자녀 양육 교육이 필요한 시점이다. 일찍부터 조부모 교육을 받고 손자를 돌보고 있는 이해영씨 부부와 며느리. /세살마을연구소 제공

하지만 실제로 손자녀를 양육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정원이 할머니 김을숙(58)씨가 가장 놀란 부분은 양육 비용이었다. “예전엔 천기저귀를 빨아 썼잖아요. 지금은 10만원어치 기저귀가 2주도 안 돼서 동이 나버려요. 분유값은 또 어떻고요. 근처 마트에 가보니 분유에만 도난방지장치가 따로 붙어 있더라고요. 형편이 어려운 엄마들이 아이를 굶길 순 없으니 훔쳐가는 일이 많았다더라고요. 안타까워요. 저도 얼마 전까지만 해도 손주가 최소 둘은 돼야 한다고 말해왔는데, 생각이 완전 바뀌었어요. 하나 키우는 데 드는 비용이 이렇게 어마어마한데 더 낳으란 말 못하겠더군요.” 해영씨도 지금 타고 다니는 중형차를 팔고, 아들과 소형차 한 대를 같이 사용하기로 결정했다. “부모님이 키워줄 수 없는 맞벌이 가정은 그 비용을 어떻게 감당할지 걱정이 되네요.”

조부모가 손자녀를 양육하는 맞벌이 가정의 경우는 그나마 낫다. 어린이집에 아이를 보내거나 아이돌보미를 부를 경우, 최하 150만원의 비용이 들어간다. 모르는 곳에 아이를 선뜻 맡기긴 싫지만, 방법이 없다. 정원이 엄마 마지연(32)씨가 직장인 여성의 어려움을 전했다.

“저야 시부모님이 조부모 교육까지 미리 받으실 정도로 열린 분들이시지만, 속으로만 끙끙 앓다가 결국 시어머니와 티격태격하는 친구들도 많고요. 어린이집 비용이 부담돼 직장을 그만두고 아이를 키우는 친구들이 대부분이에요.”

손주 키우느라 동창 모임에도 못 나가고 팔·다리도 쑤시지만, 아기 덕분에 하루하루 활력이 생긴다. 해영씨는 “집에 부부 둘만 있을 때는 따분하거나 가끔 우울할 때도 있었는데, 정원이가 있으니 외로울 새가 없다”면서 손주 키우는 재미를 전했다.

“결혼 전에는 공부하랴, 결혼 후에는 일하랴 아들 내외가 집에 거의 들르질 못했었어요. 그런데 지금은 손주 덕분에 거의 매일 얼굴을 보고 살죠. 가족 분위기도 정말 좋아졌습니다. 가정의 건강과 행복이 중요하다는 걸 부쩍 깨닫게 되는 요즘입니다.”

세살마을연구소가 진행한 조부모교육 프로그램 모습 /세살마을연구소 제공
세살마을연구소가 진행한 조부모교육 프로그램 모습 /세살마을연구소 제공

서울대학교 아동복지학과 옥선화 교수는 “저출산이 심각한 우리나라에서 조부모의 손자녀 양육은 가족이라는 삶의 의미와 기쁨을 되찾게 하는 대안이 될 수 있다”면서 조부모 양육 지원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어린이집 등 보육시설에 들어가는 지원금을 손자녀를 키우는 조부모에게 양육비를 제공한다면, 조부모 역시 손주를 키우는 일에서 더 큰 가치와 자부심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손자녀를 양육하는 할머니·할아버지 수가 늘어나는 만큼 이제 정부나 기관에서도 좀 더 심화되고 실질적인 조부모 교육을 준비할 필요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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