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9일(월)

하루 20시간 스마트폰 하던 아이, 친구 눈을 보기 시작했다

굿네이버스 스마트폰 과몰입 예방 통합 예술치료 프로그램

 

형우(13·가명)는 지적장애인 엄마와 일용직 노동자인 아빠 밑에서 외동아들로 자랐다. 하루 대부분을 혼자 보냈던 형우의 유일한 친구는 스마트폰. 하루 20시간 이상 손에서 놓지 않을 만큼 중독이 됐다. 학교에서도 아이의 관심은 온통 스마트폰 속 세계에 있었다. 수업 시간에도 온종일 게임 아이템을 찾았고, 친구들과는 대화할 틈도 없었다.

그랬던 형우가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다. 지난 5월 참가한 스마트폰 과몰입 예방 프로그램 ‘I’m a Good Maker’를 통해서다. 세 번째 수업, 게임을 잊은 채 하얀 전지 위에 지우개를 던지며 땅따먹기를 하던 형우는 마지막 날 치료사 선생님에게 고백했다.

오늘 처음으로 친구들 눈을 똑바로 본 것 같아요. 앞으로는 친구들하고 밖에서 땀 흘리면서 뛰어 놀래요.

 

◇아동·청소년 스마트폰 과몰입 심각… 초등학교 고학년부터 예방해야

 

형우를 바꾼 ‘I’m a Good Maker’는 초등학교 고학년(4~6학년)의 스마트폰 과몰입을 예방하기 위한 통합 예술치료 집단 상담 프로그램이다. 아동복지NGO 굿네이버스가 정신건강 예방사업의 일환으로 개발해 2016년 10월부터 전국 60여 개 학교, 5000여 명을 대상으로 시행해왔다.

프로그램은 2주간 총 4회기(회기당 1교시)에 걸쳐 진행된다. 스마트폰 과몰입을 이해하는 영상과 보드게임, 예방법을 개사한 노래를 부르는 에그셰이크 악기 연주, 땅따먹기 게임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있다. 모든 과정은 굿네이버스 좋은마음센터의 심리치료사가 직접 진행하며 심리적 위험군에 해당하는 아동을 확인한다.

경기 안양의 한 초등학교에서 열린 ‘I’m a Good Maker’ 프로그램 수업 중, 학생들이 에그셰이크 악기를 연주하며 ‘폰놔송(폰을 놓자)’을 부르고 있다. ⓒ굿네이버스

왜 스마트폰 과몰입일까. 우리나라 10~19세 아동·청소년 10명 중 3명은 스마트폰 과몰입 위험군에 속한다. 박사라 굿네이버스 좋은마음센터 광주서부 미술치료사는 “아동은 스스로 느끼고 행동하는 등 조절 능력이 약해 수많은 매체에 무분별하게 노출되는 스마트폰 중독에 취약하다”며 “SNS 대화방에서 따돌림을 시키거나 같은 교실에 앉아서도 스마트폰으로 대화하는 등 아동 스스로 중독에 대한 문제 인식이 없다”고 말했다.

특히 아동들이 최초로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시기는 초등학교 4학년. 전국 초등학교 고학년의 86.5%가 스마트폰을 가지고 있을 정도로 보유 비율이 급증한다. 박아름 굿네이버스 아동권리사업본부 사업운영팀 과장은 “최근 청소년의 스마트폰 중독 문제가 대두되면서 스마트폰을 처음 가지는 초등학교 고학년부터 올바른 사용법을 알려주고 위험군 아동을 발굴하고자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음악·미술·게임 곁들인 수업… 학생과 교사 만족도도 높아

 

프로그램 시행 1년차, 학생들 사이에서는 긍정적 변화의 움직임이 보인다. 프로그램에 참가한 대전 태평초등학교 조세호(12·가명)군은 “하루 5~6시간 스마트폰을 해서 친구들이 ‘게임 폐인’이라 놀렸는데, 수업 때 체크 리스트(과몰입 진단 검사)를 해보고 나서 진짜 심각하다는 것을 깨달았다”며 “어머니와 게임 시간을 줄이기로 약속하고 벌써 1시간 정도 줄였다”고 말했다. 같은 반 이현지(12·가명)양은 “매일 밤마다 트위터를 했는데 자기 전에 스마트폰을 많이 하면 키가 안 크고 눈도 나빠진다고 해서 SNS를 줄이게 됐다”고 말했다.

박아름 과장은 “참가한 아동들은 실제 스마트폰 과몰입 진단 척도상 고위험군과 잠재적 위험군이 줄어든 것으로 나타나 효과성을 검증했다”며 “특히 스마트폰 과몰입 예방을 위해 각자 세운 계획을 지키겠다고 응답한 아동이 96%에 달한다”고 설명했다.

경남 진주의 한 초등학교에서 열린 ‘I’m a Good Maker’ 프로그램 수업 중, 한 학생이 스마트폰 실천 계획을 작성해 그림을 완성하고 있다. ⓒ굿네이버스

이와 관련, 이은수(가명) 대전 태평초 교사는 “간혹 스마트폰의 영향으로 수업에 집중하지 못하거나 폭력적인 영상을 보고 다른 친구에게까지 나쁜 영향을 주기도 했지만 이런 문제를 수업에서 다룰 기회가 없었다”며 “아이들이 재미있는 활동을 통해 스마트폰 과몰입의 심각성을 인지할 수 있어 유익했다”고 말했다. 수업을 진행한 박사라 미술치료사는 “가정에서 실천할 수 있도록 부모용 워크북도 제공하니 학부모 반응이 좋다”며 “아이들의 사회 관계성 등 심리적인 부분까지 다뤄주는 것이 차별점”이라고 말했다.

굿네이버스는 향후 스마트폰 과몰입 예방 프로그램을 전국적으로 실시해나갈 예정이다. 박아름 과장은 “작년 시범적으로 시작한 프로그램이 의미 있는 결과를 내 더욱 많은 학교가 참여할 수 있도록 할 예정”이라며 “앞으로는 수요에 따라 프로그램 중 발견된 고위험군 아동에 대한 ‘후속 집단 프로그램’ 등도 마련할 계획이다”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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