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9일(월)

외국인 강제 성매매, 노동력 착취 빈번…한국도 인신매매 주요국 됐다

박미형 국제이주기구 한국대표부 소장 인터뷰

 

지난달 부산에서 성매매 남성 및 알선업자, 브로커 77명이 검거됐다. 부산시 한 철학관에서 태국 여성을 감금시킨 상태에서 불법 영업을 한 사건이었다. 감금됐던 태국 여성이 인근 편의점에 간 틈을 타 아르바이트생에게 ‘도와달라’는 쪽지를 전달한 덕분에 수사가 시작됐고 다행히 구출로 이어졌다. 급습한 현장에는 5명의 태국 여성이 수개월째 감금돼 성매매를 당했다. 

감금된 여성들을 구했으니 문제는 해결된걸까. 여성단체 및 이주민 관련 단체들은 “그렇지 않다”고 입을 모은다. “비슷한 사건이 수년째 계속해서 일어나는데도 문제를 제대로 바라보고, 근절하기 위한 노력이 부족하다”는 것. 지난달 11일, 공익법센터 어필,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 탁틴내일 등 12개 단체는 성명서를 내고 “태국 여성을 감금하고 성매매를 강요한 것은 명백한 ‘인신매매 사건’이라며 ‘성매매 혐의’가 아닌 ‘인신매매’라는 시각에서 피해자를 보호할 적절한 조치를 취해야 하고 인신매매 관련자들을 엄중 처벌해야 한다”고 했다.  

국내 인신매매 규모는 어느 정도일까. 감금돼 성매매를 한 사건을 ‘성매매 특별법’ 대신 ‘인신매매’라는 시각에서 바라봐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지난 7월 30일 유엔이 정한 ‘전 세계 인신매매(휴먼 트레피킹·human traffiking) 근절의 날’을 맞아 박미형 국제이주기구(IOM) 한국대표부 소장<사진>을 인터뷰했다.

ⓒ국제이주기구 한국대표부

ㅡ‘태국 여성을 성매매 업소 등에 알선한 브로커 등 검거’ 사건을 인신매매 사건으로 봐야함에도 성매매 특별법을 적용한 것을 두고 반발이 컸다. 어떤 차이가 있나.

“성매매 알선 등에 관한 처벌법(이하 성매매 처벌법)을 적용할 경우, 알선한 사람, 성을 구매한 남성, 성을 매매한 여성 등 관계된 모든 이들이 범법자다. 태국 여성들은 감금 당해서 성매매를 강요 당했음에도 범법자이자 불법 체류자가 된다. 즉시 출입국관리사무소를 통해 본국으로 추방된다. 인신매매라는 ‘렌즈’를 적용하면 태국 여성들은 엄연한 피해자다. 적절한 보호와 지원을 제공해야 하고, 가해자를 적발해 처벌해야 한다. 그러나 태국 여성 사건을 비롯해 지금까지 인신매매로 인정된 사례는 거의 없었다. 그렇다보니 피해자가 선뜻 나오기 힘들다. 이번 태국 여성 5명도 출입국관리사무소를 통해 태국으로 보내졌다.”

ㅡ인신매매라고 하면 영화에나 나올 법한 일로 여기는 이들이 많다. ‘인신매매’를 어떻게 정의하나.  

“많은 이들이 ‘인신매매’라고 하면 봉고차를 타고 가다 사람들을 납치하거나, 돈을 받고 사람을 파는 상황만을 떠올린다. 현실에서의 ‘인신매매(휴먼 트래피킹·human traffiking)’는 이와 다르다. 2000년 UN에서 발표한 의정서에 따르면, 취약한 지위나 상황을 악용해 타인을 착취하는 행위를 ‘인신매매’라고 부른다. 우리나라에선 ‘매매’라는 단어 때문에 납치 당하거나 팔려온 경우만을 떠올리기 쉬운데, 핵심은 ‘착취’다. 성 착취나 강제 노동 착취, 유사 노예제, 장기 적출 등이 인신매매에 해당된다. 합법적으로 비자를 받고 들어와서도 인신매매를 당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문제는 이러한 인신매매가 전 세계적으로 계속해서 커지고 있다는 점이다.”

ㅡ전 세계적으로 인신매매가 계속 증가하는 이유는.

“인신매매가 다른 사람의 노동력이나 성을 착취해 큰 이윤을 남기는 구조기 때문이다. 범죄 조직에서 마약을 거래하듯이 사람을 거래한다고 보면 된다. 마약은 한 번 사용하면 끝이지만, 사람은 노동력을 다할 수 있을 때까지 계속되다보니 훨씬 큰 이윤을 남긴다. 휴먼트래피킹으로 1년에 발생하는 이익은 3조2000억원 정도로 추산된다. 범죄 조직의 주요 수입원이기도 하다. 문제가 심각하다보니 교황은 인신매매를 두고 ‘현대판 노예’라고 일컫기도 했다. 미국, 중국, 우리나라, 태국, 소말리아 등 전 세계 인신매매와 관계 없는 나라가 없을 정도다.”

인신매매 관련 인포그래픽. 이미지를 누르면 ‘인신매매(휴먼 트래피킹)을 설명하는 국제이주기구 한국대표부 홈페이지로 이동합니다. ⓒ국제이주기구 한국대표부

ㅡ‘착취’가 인신매매의 핵심이라고 했는데, 피해자가 그 상황에서 빠져나오면 되는 것 아닌가.

“피해자가 감금되어 나올 수 없는 경우일 때도 많다. 그러나 감금되지 않았다고 해도 빠져 나오기가 쉽지 않다. 착취 당하는 사람들은 정신적으로도 완전히 지배당한 상태다. 가족을 해코지한다거나, 도망치다 걸리면 죽인다고 협박하기도 한다. 두려움과 공포심, 무력감 등으로 사람을 세뇌시키고 잡아놓는다. 또한, 인신매매는 워낙 은밀하게 이뤄지다보니 추적이 쉽지 않고 피해자가 자진해서 나와야 가해자를 추적할 수 있다. 그러나 피해자가 빠져나와도 충분한 보호나 지원이 부족해 피해자가 선뜻 나오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ㅡ한국에서는 인신매매가 어느 정도 수준인가.

“한국도 자유롭지 않다. 한국은 인신매매 피해자들이 오는 ‘목적지’일 뿐 아니라, 다른 나라로 인신매매 피해자를 보내는 ‘송출국’이다. 매년 러시아나 중국, 동남아 국가 출신 피해자들이 한국으로 오고 있고, 또 한국 출신 피해자들이 미국, 캐나다, 호주, 일본 등에서 발견되기도 한다. 가장 널리 알려진 건 성착취다. 앞선 태국 여성 사례와 같이, 해외 여성들의 강제 성매매는 공공연한 사실이다. 소위 ‘연예인 비자’라 불리는 ‘E6-2 비자’를 통해 한국에 온 여성들이나, 국제결혼중개업소를 통해 한국인 남성과 결혼하기 위해 한국에 입국한 동남아 여성들 중엔 성매매나 강제노동을 강요 받는 이들도 있다. 한국 남성들이 베트남, 태국, 캄보디아 등에서 벌이는 아동 성관광도 인신매매의 원인으로 본다. 현지에서 남성 성구매자의 수요를 맞추기 위해, 아동 인신매매를 늘리는 결과를 낳기 때문이다.”

필리핀, 태국 등 동남아시아 여러 국가에선 여성들이 ‘한국에 가서 가수가 될 수 있다’는 말을 듣고 공연 비자인 ‘E6-2’ 비자를 통해 한국에 입국하지만 미군기지, 제주도, 항구 인근 유흥주점 등에서 성매매에 연루되곤 한다. 예술비자로 인한 성매매 문제를 다룬 다큐멘터리 ‘호스트네이션’(감독 이고운)의 한 장면. ⓒ2017 제22회 서울인권영화제 홈페이지.

ㅡ국내에서도 성착취 외에 다른 형태의 인신매매가 존재하나.

“원양어선 참치, 새우, 농수산물 등 우리가 먹고 쓰는 것들도 인신매매와 관련되어 있다. 국내에서 성매매보다 더 큰 비중을 차지하는 건 어업과 농업에서의 착취다. 지난달 28일 미 국무부가 발간한 ‘2017 인신매매보고서’에서도 한국 어선에서 일하는 많은 외국인 노동자들이 강제노동을 당하는 인신매매 피해자라고 봤다. 이들 중에는 자국에서 한국어능력시험을 보고 ‘고용허가제(EPS)’를 통해 합법적으로 들어온 이들도 있다. 과도한 노동을 시키거나, 도망가지 못하게 여권을 빼앗는다거나, 돈을 제때 지급하지 않는 행위 등 모두가 불법이고, 노동 착취에 해당한다. 특히 어업은 이주노동자의 비율이 굉장히 높고, 앞으로도 늘어날거다. 원양어선, 어업에서의 과도한 노동 착취 등이 인신매매 정의로 포함되어있음에도 문제로 생각하는 이들이 적다. ”

ㅡ인신매매가 국경을 넘어 일어나는 만큼 근절하는 게 쉽지 않아보인다. 국제이주기구에선 인신매매를 막기 위해 어떤 일을 하나.

“UN을 비롯해 국제사회에서 이주자 권리 보호에 대한 논의가 시작됐다. 특히 이주자의 성이나 노동력을 착취하는 인신매매를 막아야 한다는 문제의식이 크다. 지난해 9월엔 뉴욕에서 처음으로 ‘난민과 이주자를 위한 정상회담’이 개최됐고, 2018년 유엔 총회 전까지 각 회원국의 책임을 정리한 ‘난민과 이주에 관한 글로벌 컴팩트’를 만들기로 합의했다. 이를 위한 이해관계자간의 합의와 협력을 이끄는 게 국제이주기구의 역할이다. 그밖에도 인신매매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정부와 시민사회 역량을 강화하고 피해자를 직접적으로 지원하는 등 인신매매와 관련해 다양한 예방·보호 활동을 진행해왔다.”

ㅡ국내에선 어떤 정책이 필요할까.

“전 세계 이주자 수가 10억명에 달한다. 전 세계 인구 7명 중 1명이 태어난 나라를 떠나 다른 나라로 이주한다. 이주는 막을 수 없는 흐름이다. 이주 노동자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부터 달라질 필요가 있다. 미국에서도 관광업이나 농업에 종사하는 이들은 대부분 남미 출신 이주민 노동자다. 우리나라의 농어업 분야도 마찬가지다. 막연한 두려움이나 편견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이주민 노동력이 필요한 분야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어떤 산업에 어느 정도의 노동력이 필요한지를 산출해야 한다. 그래서 사실과 근거에 기반해, 이들이 합법적으로 이주해 정확한 노동권을 보장받을 수 있도록 이주 정책을 설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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