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9일(월)

“낙후된 뒷골목을 예술과 혁신의 장으로”

미국 온라인 기업 재포스 CEO자문전략 ‘매기 수’ 인터뷰

“재포스에 변하지 않는 것은 딱 하나다. 계속해서 변한다는 사실이다.”

미국 온라인 기업 재포스(Zappos)의 CEO 자문전략인 매기 수<사진>의 말이다. 토니 셰이 재포스 CEO가 라스베이거스에서 진행하는 ‘다운타운 프로젝트’에 그가 합류한 건 2013년. 뉴욕 맥킨지 컨설턴트로 일했던 그는 토니 셰이의 책 ‘딜리버링 해피니스’ 북 토크에 갔다가 다운타운 프로젝트를 듣고 완전히 매혹돼 합류했다고 한다. 2015년부턴 자포스에도 합류했다. 그에게 재포스와 다운타운 프로젝트가 벌이는 실험에 대해 물었다.

ⓒ이경민 영상미디어 객원기자

◇자율성 부여하고, 행복을 배달하고… 재포스의 ‘조직’ 실험들

ㅡ재포스 CEO 토니 셰이(Tony Hsieh)가 쓴 책 ‘딜리버링 해피니스’에 보면, 재포스에선 ‘직원이 행복한 조직’을 최우선으로 한다는 철학이 담겨 있더라. 정말로 그런가. 

“타투를 하거나 머리를 탈색하거나 책상을 마음대로 꾸며도 아무 문제 없다. 재포스에는 ‘조직의 핵심 원칙’은 있지만, 자잘한 규제는 없다. 가령, 출장 시 하루 숙박을 얼마 이하로 해야 하는지 정해진 규칙은 없다. 사람들은 ‘1000달러짜리에서 자면 어쩌려고 그러냐’며 놀라는데, 서로가 그렇지 않으리라는 신뢰에 기반한 문화다.”

그는 “재포스의 ’10가지 핵심 가치’가 재포스 문화의 정수(精髓)”라며 “이런 원칙을 정해놓고도 뭐가 있는지 모르고 먼지만 쌓인 곳들도 많은데, 자포스에선 조직의 사업과 관계 모두에서 10가지 핵심 가치가  반영 된다”고 했다. 

재포스 문화의 10가지 핵심 가치 중 첫번째 원칙은 ‘서비스를 통해 고객에게 ‘와우(wow)’하는 감탄사가 나올 정도의 경험을 선사한다”는 것. ‘고객과 직원에게 행복을 전달한다’는 자포스의 철학도 이 원칙에 기반한다. 솔직하고 열린 관계를 구축할 것, 변화를 적극 수용할 것, 좀더 적은 자원으로 좀더 많은 성과를 낼 것… “긍정적인 팀정신으로 가족적인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도, “재미와 약간의 희한함을 창조하는 것”도 재포스 문화의 10가지 핵심가치다. 

“한번은 고객센터로 한 엄마가 다급하게 전화와서 ‘아이가 아이패드 앱으로 핑크색으로 된 모든 제품을 샀다’고 이야기하더라. 전화 상담원이 차분하게 대응해 전 제품은 환불처리를 해주고, 핑크색 제품 몇 개는 아이에게 선물로 줬다. 재포스의 전화상담원 중엔 무려 11시간에 걸쳐 전화 상담을 한 상담원도 있었다. 이런 것들은 매뉴얼이나 규제로 되는 게 아니다. 큰 기준에서 각자가 판단하는거다. 우리가 사람을 뽑는데 가장 공을 들이는 이유다. 우리는 장기적인 비전을 믿고, 우리 문화의 일원이 될 사람을 뽑는다.”

재포스의 ‘독특한’ 면접 문화는 워낙 유명하다. 신입사원을 뽑은 뒤 5주간 트레이닝을 하고, 조직과 맞지 않아 떠나겠다는 이들에겐 한 달치 월급에 맞먹는 3000달러 상당을 준다. “돈만 보고 일할 사람들을 걸러내기 위해서”라는 것. 

◇보스 없는 조직? 자포스의 새로운 실험

2015년, 재포스의 토니 셰이는 새로운 실험을 시작했다. 조직 운영 방식을 ‘홀라크라시(Holacracy)’로 바꾸겠다고 공표한 것. 전통적인 상사나 매니저를 없애고, 모든 구성원이 주도적으로 문제를 판단하고 해결하는 ‘자율 경영 시스템’으로 바꿔가겠다는 것이었다. 

ㅡ재포스가 홀라크라시를 채택한 지 2년이 지났다. 어땠나.

“‘새로운 언어’를 익히는 것에 비유할 수 있다. 규칙을 익히는 데 6개월은 걸렸다. 지금은 꽤 익숙해졌고, 홀라크라시 방식을 좋아하는 이도 늘었다. 가장 큰 변화는 뭔가를 할 때 상사의 결재가 필요하지 않다는 점이다. 직급이 낮아 의견을 낼 수 없던 이들도 의견을 낸다. 다들 권한이 커졌다고 느낀다.”

홀라크라시의 특징은 상사나 관리자 위계 대신 업무간의 위계로 일을 한다는 것. 직원 한 명이 다양한 역할을 수행하는 것도 가능하다. 

ㅡ재포스 내에서 어떤 서클에서, 어떤 방식으로 일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나는 ‘브랜드 아우라’라는 브랜드 전략 서클에 내 업무 시간의 50%를 쓰고, ‘디스럽트(Disrupt)’라는 이름의 비즈니스 개발 네트워킹 서클에서 나머지 업무 50%를 쓴다. 이 밖에도 인사, 노무 등을 담당하는 ‘다섯가지 바퀴’ 서클, 직원 이벤트를 담당하는 ‘펀지니어링(fungineering)’서클, 회사 바깥 이해관계자에게 재포스 투어를 시키고 문화를 알리는 역할을 하는 ‘재포스 인사이트’ 서클 틍 총 500여개의 서클이 돌아가고 있다. 일하는 방식도 각자가 서클과 합의해 정한다. 5개 서클에서 각각 업무시간의 20%를 할애해 일할 수도 있고, 두개의 서클을 8:2 방식으로 일할 수도 있다.” 

그는 “홀라크라시 책에 나온 그대로가 완벽한 시스템이라기보다는 하나의 새로운 방식이라고 생각한다”며 “다양한 실험을 해보고, 실패하고, 다른 방식을 찾아보면서 ‘보스 없는 조직’도 굴러갈 수 있고 경쟁력 있다는 걸 증명하는 과정”이라고 덧붙였다.

2015년엔 임직원이 20% 가량 재포스를 떠났다. 홀라크라시 실험이 실패했다고 보는 이들도 있는데.

“떠난 이들 중엔 기존에 있던 권한을 포기해야 하는 매니저급이 많았다. 물론 퇴직금과 근속 연수에 비례해 한 달 유급휴가를 주는 등 보상도 컸다. 12년 근무한 이는 1년간 유급휴가를 받기도 했다. 제도가 맞지 않는다면 떠나는 게 맞고, 떠나기 좋은 시기였다.”

◇도시에서 벌이는 거대한 실험, ‘다운타운 프로젝트’

재포스 CEO 토니 셰이는 재포스 본사가 있는 ‘라스베이거스 혁신’에도 뛰어들었다. 일명 ‘다운타운 프로젝트’. 자비를 투자해 낙후된 도심지를 사들이고, 작은 가게 창업을 지원한다. 레스토랑을 만들고, 스튜디오를 세웠다. ‘아무도 찾지 않던 낙후된 뒷골목’에서 5년째 음식과 예술, 음악을 아우르는 축제가 열린다. 7억달러 이상의 자산가인 토니 셰이 역시 ‘다운타운 프로젝트’ 지역, 캠핑카 하나에 애완용 야마 두 마리와 함께 산다.

ㅡ다운타운 프로젝트에서 어떤 걸 했나. 투자 기준은 무엇이었나.

“2012년 시작해 지금까지 4000억원 정도를 투자했다. 부동산과 작은 비즈니스, 테크 스타트업, 교육이나 문화에도 투자했다. 사람이 아무도 없는 후미진 곳이었는데 이제는 콘서트가 열리고 가족이 찾는다. 생기가 넘친다. 지역 커뮤니티를 얼마나 좋게 만들 것이냐, 사람들을 모을 것이냐가 투자 기준이었다. 투자 자본 수익률(ROI)이 아닌 투자 자본 대비 커뮤니티 기반 수익(ROC·Return on Collisions)인 셈이다.”

ㅡ미국 언론에선 ‘다운타운 프로젝트’가 5년 전 약속했던 것 만큼 성공적이진 않다는 평도 많다.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나. 

“지난 5년간 도시를 바꾼다는 게 정말 쉽지 않다는 걸 배웠다. 잘했던 점도 있고, 또 소통이 부족했던 면도 있다고 본다. 가장 많이 비판받는 지점은 여러 시설을 만들면서도 ‘주거 시설’을 충분히 만들지 못했다는 점이다. 현재 ‘주거공간’에 주력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또 우리가 투자했던 작은 규모의 비즈니스 중 잘 안된 곳들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미국에서 작은 가게를 열면 열에 아홉은 첫 해에 문을 닫는다. 실패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분명히 알지만, 지역과 커뮤니티를 위한 공간에 투자를 한거다. 예전엔 아무도 지나다니지 않던 곳에 사람들이 북적이는 것만으로도 생기를 불어넣는 역할을 했다고 본다.”

ㅡ성공 사례가 있다면 소개해달라. 

“‘라이터스 블럭(Writer’s Block)’이라는 이름의 독립 서점이 있다. 책과 다른 물건들을 팔고, 독립 출판도 가능하다. 이렇게 번 돈으로 지역 어린이들에게 무료로 읽고 쓰기를 교육한다.  비영리와 영리의 ‘혼합’ 모델인 셈이다. 라스베가스는 미국에서 문해율이 굉장히 낮은 도시로 꼽힌다. 그런 지역 아이들과, 문화를 즐기고자 하는 모두에게 생긴 소중한 공간이다. 그 밖에도 여러 성공 사례가 있다. 신용불량자가 투자를 받아 설립한 레스토랑 ‘잇(EAT)’은  얼마전 체인점을 내기도 했고, 감옥을 다녀온 이들을 레스토랑 및 다른 일자리로 연계해주는 곳도 있다. 실제로 와보면 지역사회가 풍기는 활기와 에너지를 느낄 수 있을거다.”

얼마 전, 라스베가스 다운타운 지역엔 사회혁신가들을 위한 공동 주거 공간 ‘디웰’이 문을 열었다. 한국의 루트임팩트·HGI가 공동 참여한 커뮤니타스(Communitas) 이니셔티브의 일환이다. “한국의 성수동에서 체인지메이커 생태계를 키워낸 경험을 바탕으로 해외에도 비슷한 방식으로 혁신가들을 위한 생태계를 지원할 수 있겠다”고 본 것.

루트임팩트, HGI가 라스베가스에 문을 연 공동주거공간 디웰의 모습. 사회혁신가들의 ‘작당모의’의 장이 될 예정이다. ⓒ루트임팩트

ㅡ루트임팩트와 하는 디웰 프로젝트도 소개해 달라.

“사회혁신가를 위한 공동 주거 공간을 내기로 한 게 4년 전이다. 원래 있던 건물을 개조해서 ‘디웰’을 오픈했다. 록펠러 자선자문단도 협력한다. 이 외에도 다양한 프로젝트에서 협업을 이어가려 한다. 함께 실험할 앞으로의 여정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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