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8일(일)

진흙 캐러 매일 4시간 걷는 소녀 그 길에서 의사 되는 꿈꾼다

배우 최송현의 르완다 봉사기_ 마호로를 만나다

“친구와 함께 걷고 있어요.” 손을 잡고 걸으며 어디에 가느냐고 물었더니 아이는 신비로운 미소와 함께 대답했다. 우리의 첫 만남. 아이의 이름은 키냐르완다어로 ‘평화’를 뜻하는 단어 ‘마호로’라고 했다.

굿네이버스와 함께 르완다로 봉사활동을 떠난 최송현이 희망을 빚는 소녀, 마호로와의 만남 속에서 발견한 작은 감동을 전달한다. /굿네이버스 김성진 제공
굿네이버스와 함께 르완다로 봉사활동을 떠난 최송현이 희망을 빚는 소녀, 마호로와의 만남 속에서 발견한 작은 감동을 전달한다. /굿네이버스 김성진 제공

굿네이버스와 함께 떠나게 된 르완다. 떠나기 전 내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그 이름을 생소해했다. 오로지 미디어를 통해서 보아 온 아프리카 대륙. 그 안에 대한민국 면적 4분의 1 크기의 작은 나라. 1994년 민족 간의 내전으로 수백만의 피와 눈물이 서린 땅에서 나는 내 마음을 뛰게 하는 소녀를 만났다.

마호로 가족은 삼대째 토기를 만들고 있다. 마호로는 물레도 없이 돌 받침대를 손으로 돌리며 금세 하나를 완성했다. 토기를 만들기에 적합한 진흙을 캐기 위해 아이는 왕복 네 시간을 걸었다. 열한 살 소녀에게는 어울리지 않아 보이는 50㎝ 이상의 긴 칼과 마대를 한 손에 들고 다른 한 손으로는 내 손을 꼭 쥐었다.

마호로는 평소에 자주 부르는 노래를 들려주었다. 마호로가 불러주는 노래를 들으며, 이유를 설명하기 어려운 감동과 먹먹함이 동시에 차올랐다. 한국에 돌아와서도 귀하게 기억하고 싶은 욕심에 아이에게 부탁해서 휴대 전화기에 노래를 녹음했다.

마호로는 목적지에 도착하자 전문가처럼 눈을 빛내며 좋은 진흙을 찾아 이곳저곳을 관찰했다. 열한 살 아이가 들어갔다 다시 빠져나오기엔 다소 깊어 보이는 흙구덩이에도 마호로는 용감하게 뛰어들어서 가지고 온 긴 칼로 토질을 살폈다. 이런 경험이 처음인 내가 도울 수 있는 것은 땅으로부터 분리된 흙들을 마대에 담아 넣는 것뿐이었다.

성인도 걷기엔 상당히 먼 곳까지 오면서, 그리고 진흙을 캐면서, 또 그 무거운 진흙 마대를 들고 다시 집에 돌아가면서 마호로는 무슨 생각을 할까. 마호로는 꿈을 꾼다고 했다. 의사가 되고 싶다고 했다. ‘어려운 가정 형편을 나아지게 하고 싶어서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의사가 되고 싶다’는 것이다.

나는 적잖이 놀랐다. 천사 같은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던 아이가 갑자기 예상치 못한 어른의 대답을 해서일까. 나도 모르게 현재의 삶이 그들에게 어울리는 삶이라고 단정지었던 것일까.

언젠가 한국을 다시 찾은 서양인들이 놀랍게 발전한 우리나라를 보고 매우 섭섭해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발전의 흔적이 적고, 그들만의 문화를 지키며 원시를 느끼게 해주는 곳. 한국이 더 이상 그런 모습이 아니라 속상했다는 것이었다. 발전을 통해 보다 높은 삶의 질을 누리는 것을 그들만의 몫이라고 여긴다는 생각에 나는 그 얘기가 언짢았었다. 그런데 오늘의 나는 르완다의 고산지대에서 그 서양인들과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깊은 산 속에서 해가 지는 밤이 되면 전기가 없어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삶도, 왕복 네 시간을 걸어 캐온 흙으로 만든 토기 하나가 시장에서 거래되는 값이 2000원 미만이라는 사실도, 그래서 마호로의 8명 가족이 한 달 동안 4만원으로 살아야 한다는 것도 그저 그들에게 주어진 삶이라고 생각했던 것은 아닐까.

긴 일과를 마치고 마호로의 집에 도착해서 우리는 즐겁게 토기를 만들었다. 내 토기는 점점 못난이가 되어갔다. 마호로는 따뜻하게 웃으며 내 토기를 손봐주었고 우리는 얼마 지나지 않아 예쁜 그릇 두 개를 빚었다.

이미 어둠이 우리 모두를 가려버렸다. 숙소로 돌아 가야 할 시간. 아이는 내 손을 씻겨주고 싶다고 했다. 내 손에 물을 부어주고 비누를 묻혀 정성스레 씻겨주었다. 물도 비누도 귀한데 마호로는 뽀득뽀득 소리가 날 때까지 내 손을 씻겨주고는 나를 차까지 배웅했다. 차에 타서 한참을 서럽게 울었다. 갑자기 삶 속에 나타난 낯선 외국인에게 아이가 마음을 준 것 같아서. 그리고 나는 정해진 시간이 되면 곧 돌아가야 하는 사람이라서.

마호로의 집에 갈 때마다 아이는 저 멀리서 양팔을 수평으로 쫙 펴고 맨발로 나를 향해 달려왔다. 오늘은 뭘 하고 싶으냐고 물으면 조금만 더 안아달라고 했다. 통역이 없어도, 특별한 말을 하지 않아도 나는 마호로가 편하고 좋았다. 나는 굿네이버스를 통해 마호로와 1대1결연을 맺어 특별한 인연을 이어가기로 했다.

헤어지던 날. 나는 처음으로 마호로의 굳은 얼굴을 마주했다. 아이는 결국 눈물을 흘렸다. 돌아가서도 잊지 않겠다고 마호로를 달랬지만 마음은 무거웠다. 기억하는 것만으로는 아이의 인생을 바꿀 수 없기 때문에.

그래도 나는 오늘 휴대 전화기에 녹음된 마호로의 노래를 들으며, 우리의 만남을 시작으로 많은 사람들이 세상에 진정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관심을 갖게 될 것이라는 희망을 가진다. 언제나 큰 변화는 작은 관심에서 시작됐다는 것을 믿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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