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2일(목)

5년 새 봉사자 수 3배 늘었지만 질적 수준은 제자리걸음

자원봉사 현주소
작년 봉사자 630만명 그중 중고생 100만명
진정성·배려심 없이 시간 채우기식 빈번 수혜자에겐 큰 상처 돼

한국자원봉사센터중앙회의 통계에 따르면 자원봉사자의 수는 해마다 늘어 2010년 12월 기준으로 630만명(등록인 기준)을 넘어섰다. 2005년까지 등록된 자원봉사자 수는 208만명. 5년 사이에 무려 3배가 증가했다. 그렇다면 자원봉사의 질적 수준도 높아졌을까. 노인, 장애인, 아동 등 대인 관계에 초점을 맞춰 봉사활동이 벌어지는 지역 자원봉사센터와 사회복지관의 자원봉사 실무자를 만나 자원봉사 현장의 목소리를 들어봤다. 실무자들은 자원봉사의 확대를 반기면서도 잘못된 자원봉사의 사례들을 제시했다.

전문가들은 봉사활동의 주인공은 봉사자가 아니라고 이야기한다. /조선일보 DB
전문가들은 봉사활동의 주인공은 봉사자가 아니라고 이야기한다. /조선일보 DB

잘못된 봉사활동의 첫 번째 유형은 수혜자에 대한 이해가 없는 봉사활동이었다.

“얼마 전 ‘자원봉사자 교육을 어떻게 시켰냐’는 항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장애인 가정을 방문한 봉사자가 집안이 너무 지저분하다며 청소를 했는데, 그분이 시각장애인이셨거든요. 물건들이 본인이 기억하는 장소에 없어 놀라셨더라고요.”

자원봉사에 앞서 수혜자에 대한 충분한 이해는 필수다. 봉사자가 보기에 사소한 것이라도 수혜자 입장에선 그렇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비단 장애인 봉사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노인 분들은 본인이 쓰던 물건에 대한 애착이 크기 때문에, 봉사자들은 아무리 낡은 물건이라도 함부로 버려선 안 된다. 오랫동안 간직해온 추억이 버려졌단 사실에 어르신들은 몇 개월 동안 가슴앓이를 하신다고 한다. 새것, 더 좋은 것을 선물해도 그 상처는 쉽게 아물지 않는다.

파주시 자원봉사센터 김영선 소장은 “장애인 봉사활동의 핵심이 자립을 돕는 것이라면 어르신들은 본인의 고집과 의견이 존중받길 원하신다. 같은 수혜자라도 봉사활동에 대해 장애인과 어르신들의 욕구가 다를 정도로 수혜자들은 다양한 욕구를 가지고 있다”며 “나의 필요가 수혜자의 필요와 동일하다고 생각해선 안 된다”고 조언했다.

두 번째로는 타의에 의한 봉사활동이 꼽혔다.

자원봉사를 희망하는 청소년의 숫자는 2007년 이후 급증하기 시작했다. 한국자원봉사센터중앙회가 제공한 ‘자원봉사자 직업별 현황’에 따르면 2006년까지 50만여 명에 불과했던 중고생 봉사자가 2010년엔 100만명에 육박한다. 하지만 이들이 모두 평소 자원봉사에 관심을 갖고 열심인 것은 아니다. 사회복지관과 자원봉사센터의 실무자들은 “방학 때만 되면 몇백 명씩 갑자기 몰려드는 학생들을 관리하자니 인력도 부족하고, 그때마다 프로그램을 기획하는 게 쉽지 않다”며 어려움을 호소했다.

특히 대학 입시를 앞둔 청소년의 경우 이런 일들이 빈번하다고 한다. 학부모들이 자녀의 봉사활동 프로그램을 문의하는 것은 물론, ‘자녀 대신 봉사 시간을 채울 순 없느냐’, ‘2시간이면 된다’며 대리 봉사를 요청하는 경우도 있다. 진정성 없는 봉사자들의 마음은 고스란히 수혜자들에게 전달된다.

한국자원봉사센터중앙회_그래픽_자원봉사자_2011세 번째는 봉사자 중심의 봉사활동이다.

서울의 한 자원봉사센터 실무자는 “사전 문의 없이 기관을 찾아와 ‘오늘 당장 봉사 시간을 채워야 한다’는 이들이 많은데, 막상 이들이 봉사활동하는 모습을 보면 씁쓸할 때가 많다”고 한다. 행사를 돕겠다고 와선 행사가 끝나기도 전에 본인이 채워야 할 시간만 딱 채우고 아무런 말도 없이 돌아가는 이들도 있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봉사자’ 중심의 사고방식이 특히 아동에게 큰 상처를 줄 수 있다고 경고한다.

몇 개월 동안 공부방 선생님으로 한 아이의 멘토 역할을 했던 자원봉사자가 연락도 없이 사라져 어렵사리 연락을 취하면 ‘봉사활동도 그만한다고 연락해야 하는 거냐’는 반응이 대부분이라고 한다.

프로그램을 참여하겠다고 자원한 봉사자가 3시간 넘게 나타나지 않아 우는 아이 앞에서 발만 동동 구르는 일도 다반사다.

방화2종합사회복지관 김일용 관장은 “아동 봉사활동의 경우 수요보다 공급이 많은 기이한 현상이 벌어진다. 봉사자들이 장애인, 노인보다 아동 봉사활동이 더 쉽다고 생각하기 때문인데 이는 큰 착각이다. 학교, 가정 안에서 아픔을 겪은 아이들은 자원봉사자의 사소한 말 한마디에 상처를 받기 때문에 더욱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또 봉사자와 자주 이별을 겪은 아이들은 마음을 쉽게 열지 않고 타인을 불신하기 때문에 지속적인 봉사가 어려운 이들은 아동 봉사활동을 신청해선 안 된다”고 당부했다.

한양사이버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구혜영 교수는 “봉사자들은 ‘나보다 부족한 이들을 돕는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자원봉사 현장은 배려와 감사를 경험하는 배움의 터전이기 때문이다”며 바른 자원봉사에 대해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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