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6일(목)

일주일 두번의 방문치료 세상에 한걸음 더 나아가는 힘

밀알복지재단 ‘중증장애아동 방문물리치료’

지난 7월 5일 오후 안산의 한 가정을 찾아갔다. 아이들이 여름방학으로 들뜬 요즘, 중증의 장애아동은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고대권 더나은미래 기자 kodk77@chosun.com
고대권 더나은미래 기자 kodk77@chosun.com

영민(가명)이는 6개월만에 태어났다. 인큐베이터에서 산소호흡기와 주삿바늘 몇 개를 꽂은 채 3개월을 보내고 세상에 나왔다. 열한 살이지만 뇌병변 1급 판정을 받은 중증장애인이다. 인지능력으로 치면 5세나 6세에 해당한다.

영민이는 깨끗한 옷을 입고 물리치료사 한향완씨를 기다리고 있었다. 몸도 시선도 천천히 움직여 무엇을 하고 싶은지 이해할 수 없는 순간이 많지만 향완씨나 영민이의 할머니는 영민이가 말하고 싶은 것을 재빨리 이해했다.

향완씨에게 영민이는 소중한 존재다. 물리치료를 받은 지 4개월 만에 영민이가 걷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원래 영민이는 2006년에 수술을 한 번 해서 철심을 박고 있을 땐 어느 정도 걸을 수 있었는데 수술 후 물리치료와 운동을 꾸준히 하지 못해 철심을 빼자 경직이 다시 왔다”고 한다. 영민이 할머니에 따르면 지금 영민이는 “무릎쪽 성장판만 자라고 종아리쪽 성장판이 자라지 않는 상태”다. 그래서 다리가 휘어졌고 제대로 서 있기도 힘들다.

향완씨는 영민이를 거실에 눕히고 다리를 주무르며 말을 걸기 시작했다. 주로 학교 생활에 대한 것이었다. 영민이는 가끔 고개를 돌리거나 표정을 바꿔 향완씨의 질문에 대답을 했다. 잠시 후 향완씨는 영민이의 발바닥을 자기 어깨에 놓고 밀고 당기기를 반복했다. 영민이의 얼굴에서 땀이 났고 가끔 가래 끓는 소리가 났다.

땀이 나지만 선풍기를 틀 수는 없다. 얼마 전 감기에 걸렸는데 찬 바람을 맞으면 합병증이 발생할 수 있다. 몇 차례의 다리 스트레칭이 끝나고 이번엔 윗몸일으키기다. 향완씨가 자신의 이마를 영민이 무릎 위에 올려놓고 “헤딩, 선생님 이마에 헤딩”이라고 얘기하자 영민이가 천천히 윗몸을 일으킨다. 그러고는 간신히 향완씨의 이마에 자신의 이마를 갖다 댄다. 어렵사리 한 번이 끝나지만 향완씨는 다시 “헤딩”이라고 속삭이고 영민이는 다시 일어난다. 영민이의 오른쪽 다리에 한 뼘 크기의 수술 자국이 보인다.

할머니는 2006년에 영민이의 수술비로만 1100만원가량을 사용했다. 수술할 때 피를 수혈해가며 수술을 했다. 하지만 “수술이 끝나고 물리치료를 꾸준하고 정기적으로 받는 것이 수술하는 것보다 더 어려웠다”고 한다. “수술했던 병원에서 한 달인가 복지관에서 동에 전화해줘서 받은 돈으로 재활치료를 하고는 근처에 물리치료가 되는 병원을 찾아보니 없었어요. 수술했던 병원에서 물리치료가 되는 병원을 추천해줬는데 거긴 멀었고 우린 차가 없었죠. 그래서 포기를 했어요.” 영민이를 데리고 나가는 것 자체가 고생인 상황에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그러고 나서 다른 복지관 지원으로 가까운 병원에서 10개월 간 물리치료를 받았다. 병원에 갈 수 없을 때는 할머니가 운동을 시켰다.

고대권 더나은미래 기자 kodk77@chosun.com
고대권 더나은미래 기자 kodk77@chosun.com

복지관 지원이 없으면 물리치료를 받기 힘드냐는 질문에 할머니는 정색을 한다. “한 달 간 병원에서 재활치료 받는 것도 영민이 같은 의료 수급자는 자부담이 100만원 가량이었고, 요즘 병원 가서 물리치료 받는 건 30분에 1만8000원 수준인걸요.”부모님이 이혼하고 고모가 보내주는 돈으로 생활하는 영민이네의 주 수입원은 영민이의 장애수당이다. 충분한 치료비를 마련하기가 쉽지 않다.

얘기를 하는 동안 30분이 흘렀다. 어느 정도 몸이 풀렸는지 향완씨가 영민이를 안아 일으켜 세운다. 앞에서 영민이를 안고 천천히 거실 주위를 걷기 시작한다. 느릿느릿 춤을 추듯 영민이를 리드하는데 영민이의 발을 보니 뒤꿈치가 땅에 닿지 않는다. 다리의 경직을 더 풀어주고 수술도 해줘야 한다. 향완씨의 부축으로 영민이가 걷는 것을 보더니 할머니의 목소리가 변하기 시작한다.

“할아버지가 살아 있을 때는 괜찮은데, 우리가 언제까지 살 수는 없잖아요. 고등학교다니는 이 애 사촌이 나중에 잘 돌보겠다고 얘기는 하지만 우리 마음이 편할 수가 없지 않겠어요.”

영민이는 말이 없다. 향완씨도 그저 영민이를 붙들고 허리 펴기를 시켜주고 배와 가슴, 등을 마사지한다. 잠시 후 팔을 앞뒤로 흔드는 연습을 하는데 팔이 뒤까지 흔들어지지 않는다. 그리고 오른팔 왼팔과 오른발 왼발이 서로 박자가 맞지 않는다. 열한 살 영민이가 스스로 일어나 걸을 때까지는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그래도 할머니는 기운을 낸다. “지난 4개월간 노력해서 걸을 수 있게 되었는데, 남은 시간 더 노력하면 충분히 좋아질 것”이라며 다시 스트레칭을 하는 영민이에게 “세게 밀어버려. 선생님 넘어지라고 세게 밀어버려라”하고 농담을 한다. 향완씨도 “그래 세게 밀어”하며 영민이를 응원한다.

45분간 향완씨는 계속해서 영민이에게 말을 걸었다. 그냥 치료만 하면 영민이가 힘들 수도 있고 지루할 수도 있어서 말을 건넨다. 또 인지가 계속 발달하도록 유도하기 위해서 말을 건다. 영민이는 향완씨가 건네는 질문에 일일이 표시를 하면서 향완씨와 공감대를 키우고 믿음을 쌓는다.

영민이와 작별인사를 나누고 현관문을 나서자 향완씨는 다른 집으로 향한다. 5분 거리엔 희영(가명)이네 집이 있다. 향완씨는 한 주에 5일, 하루에 6명에서 7명 정도 아이들의 물리치료를 한다. 고된 일이지만 향완씨는 더 많은 아이들이 꾸준히 물리치료를 받을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향완씨는 밀알복지재단의 중증장애아동방문물리치료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이런 치료가 영민이처럼 차도를 나타내는 경우도 있지만 생명 유지를 위해 물리치료를 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그냥 두면 몸이 계속해서 뒤틀리고 경직이 오기 때문에 계속 몸을 풀어주기도 해야 할 뿐 아니라 뇌병변을 앓는 아이들은 면역체계가 약해져 폐렴 등 합병증이 오기 쉬워 다양한 의료 혜택이 필요하다.

밀알복지재단에 따르면 전국에 영민이 같은 중증장애아동이 2만2000명 정도가 있다. 시설에 입소해 충분한 치료를 받아야 하는 아이들이지만 실제 시설에 입소한 아이는 극소수다. 아이들이 집에 숨어 있으면 제대로 치료를 받기도 힘들고 나이 수준에 맞는 인지를 키우기도 힘들다. 일주일에 두 차례의 방문 치료지만 이것만으로도 한 아이와 가정이 전혀 다른 삶을 살 수 있다.

●후원 안내

장애아동 1:1 결연 및 후원 문의
: 02-3411-4665, www.miral.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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