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8일(수)

하고 싶은 일 하면서 돈 버는 사회? 제가 만들어보겠습니다

더매진 프로젝트

공부하면서 돈을 벌 수는 없을까. 주세호(33)씨의 ‘행복한 상상’은 이 물음에서 출발했다. 개인 사업과 취미로 하던 복싱으로 장학금 500만원을 모았다. 생활장학금이 필요한 학생들을 모집하고 본격적인 프로젝트에 돌입했다. 이름하여 더매진(theimagine). ‘더 열심히(더 매진한다)’, ‘더 행복한 세상을 상상한다’는 이중적인 의미를 담았다. 일주일에 한 번, 5시간씩 모여 각자 하고 싶은 공부를 하면 주씨가 직접 시간당 1만원의 수당을 학생들에게 지급한다.

“제가 좋아하는 일로 다른 사람도 행복하게 만드는 게 제 목표에요. 지금은 일단 저부터 시작하는 거고. 그런 사람들이 많아지면 사회가 정말 행복해질 것 같아요.”

주 씨는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다. 그의 삶을 관통하는 단어는 ‘행복’이다. 28살의 늦은 나이에 취미로 복싱을 시작한 주 씨는 2015 MBC 프로 복싱 미들급 신인왕에 등극했다. 경기마다 받는 대전료가 쏠쏠했다. “복싱을 하는 순간은 정말 행복하거든요. 그런데 제가 좋아서 하는 일인데 돈이 생기는 거에요. 이 돈으로 다른 사람들도 행복하게 할 수는 없을까 고민했죠.” 궁리 끝에 대전료를 더매진 프로젝트 장학금으로 쓰기로 결정했다. 이밖에도 게스트하우스 수익금과 각종 스터디 회비를 통해 장학금을 충당한다. 그렇게 모은 돈이 500만원. 모두 ‘재밌어서 하는 일’이다.

“저는 재밌는 일 하면서 돈 벌고, 그 돈으로 학생들은 공부하면서 장학금도 받고. 얼마나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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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싱선수로 활약하는 주세호씨의 모습, 2015년 MBC 신인왕전 2라운드 KO 우승사진

◇ 매 순간 행복을 느끼는 것, “나만이 정할 수 있습니다”

10여 년 전 주 씨는 삶에 회의를 느꼈다. 누구나 한번쯤 해보는 ‘나는 왜 사는 걸까’라는 고민이었다. 죽어도 상관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작정 오토바이를 타고 춘천역까지 달렸다. 그 순간 그는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감동을 느꼈다. “너무 짜릿하더라구요. 그때 알았어요. ‘아 나는 이런 행복을 느끼기 위해 사는 거구나’하구요. 그리고 또 한 가지, ‘내 삶의 의미는 나만 정할 수 있구나’라는 걸 깨달았죠.” 이후 그는 깨어있는 매 순간 행복해지기 위해 노력한다.

이 노력은 ‘시간 관리’로 이어졌다. 주 씨는 대안 대학 커뮤니티인 ‘신촌대학교’에서 ‘지금당장행복한시간관리같이훈련할과’ 강사로 활동 중이다. “하고 싶은 게 너무 많았어요. 이걸 다 하고 싶은데 그러기 위해선 시간관리를 잘 해야 했죠. 잠 자는 시간도 아까워서 하루에 3시간만 자는 ‘3시간 수면법’도 연습하고 있습니다.” 그에게 시간 관리는 행복을 극대화시키는 수단이다. “시간 관리의 핵심은 자기가 정말로 행복한 시간을 찾아서 그 시간을 최대한 늘리는 데 있어요.”

강의장에서 주 씨는 ‘질문하는 사람’이다. 수강생들에게 언제 가장 행복한지, 어떻게 하면 그 행복한 시간을 늘릴 수 있을지 묻는다. 답은 스스로만이 내릴 수 있다. 물어보고 답하는 과정에서 수강생들은 각자의 행복을 찾는다. “자기가 가장 행복한 시간을 찾고 서로에게 공유해요. 그걸 듣는 사람들도 덩달아 행복해지죠.” 주 씨는 각자의 에너지가 모여 행복이 더 커진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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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매진프로젝트의 주세호씨

◇ 더 많은 사람들이 더 행복해지는 상상

주 씨는 몇 년 전 백화점에서 의류 판매업을 했다. 하루에 14시간씩 일하고 나면 녹초가 되곤 했다. 독서나 자기 계발은 꿈도 꿀 수 없었다. 더매진 프로젝트를 떠올리게 된 계기다. “저는 독서토론을 정말 좋아하거든요. 좋은 책은 더 멋진 세상을 상상하게 하기도 하구요. 그런데 저처럼 좋아해도 못 하는 사람들이 있잖아요. 그런 분들에게 마음 편히 책 읽을 수 있는 시간을 선물해주고 싶었어요.”

지난 10월 9일, 더매진 프로젝트 1기 ‘알바 대신 독서’가 끝이 났다. 4명의 수강생이 5주에 걸쳐 각자 25시간씩 공부했다. 현재는 더매진 2기 ‘알바 대신 페미니즘’이 진행 중이다. “수강생 중 한 분이 그러시더라구요. 독서를 엄청 좋아하는데 생활이 바빠서 책 볼 겨를이 없었다고요. 여기 와서 책 읽는 시간이 되게 행복하고 위로가 된다고 했을 때 정말 뿌듯했어요.”

주 씨는 더 많은 사람들이 행복해질 수 있는 방법에 대해 고민하고 토론하는 사회를 꿈꾼다. “사실 처음에는 학생들이 알바 할 바에야 여기 와서 같이 공부하면 좋겠다는 생각뿐이었죠. 그런데 진행하다보니 지속성도 고민이 되더라구요. 한 명을 뽑더라도 저와 비슷한 뜻이 있고 더매진 프로젝트를 퍼뜨릴 수 있는 사람이었으면 좋겠어요.” 더매진 프로젝트를 통해 행복이 행복을 만드는 선순환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 그의 목표다.

더매진의 다음 프로젝트로 그는 ‘알바 대신 연애’를 구상중이다. 즐기면서 하는 것이 목표인만큼, 그는 재미있고 다양한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있다. “남중-남고-공대 출신 남성과 여중-여고-여대 출신 여성을 매칭하는 이벤트를 진행하고 싶어요. ‘내가 추운 건 남중남고 때문이야…’ 이렇게 생각하시는 분들 많잖아요. 생각만 해도 재밌을 것 같지 않아요?” 주 씨는 다른 사람들도 본인처럼 지금 당장 행복해질 수 있다고 믿는다. 그리고 앞으로도 그런 일을 하고 싶다고 했다. “제가 행복한 일로 다른 사람들도 행복하게 만들 수 있는 일이요.” 나만 챙기기도 버거운 헬조선 시대에, 한 청년은 독특한 아이디어로 주위를 행복 바이러스로 물들이고 있었다. 

조일호 더나은미래 청년기자(청세담 6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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