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3일(월)

[기부 그 후] 다시 세워지는 집, 오래 간직되는 추억

쿵. 쿵. 쿵..

오늘도 어김없이 정일순(가명) 할머니의 집 천장이 울립니다. 사람들이 계단을 오르내리는 소리입니다. 할머니의 보금자리는 건물 1층과 2층 계단 아래 자투리 공간, 부엌 천장은 계단과 맞닿아 있기 때문입니다. 불편한 건 소리만이 아닙니다. 사람들이 계단을 다닐 때마다 천장의 콘크리트가 부서져 내릴 때도 있습니다. 수시로 떨어진 돌에 찌그러진 식기들도 눈에 띕니다. 덩어리뿐 아니라 가루도 날립니다. 숨을 쉴 때마다 목이 아프다고 합니다. 천장에는 철근 구조물이 흉물스럽게 모습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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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가 거주하던 집의 수리 전 모습. /구로종합사회복지관

살기에 불편한 공간이지만 할머니가 떠날 수 없는 이유가 있습니다. 이 집은 6년 전 세상을 먼저 떠난 할아버지와 20년이 넘게 살았던 공간입니다. 자녀들과 연락이 끊긴 뒤 서로 의지해 살았던 할아버지의 흔적이 곳곳에 묻어 있습니다. 물론 경제적인 이유도 있습니다. 할머니께서는 기초노령연금에 의지해 생활하고 계십니다. 작년까지만 해도 노인일자리를 통해 소일거리를 하셨는데, 이제는 다리가 너무 불편해졌기 때문이죠. 간간이 파지를 주워 생활비에 보태지만, 다리가 아파 그나마도 할 수 없는 날이 더 많습니다. 다행히 집주인이 가격을 크게 올리지 않아 20년 전과 비슷한 전세금으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런 할머니 댁에 구로 집수리 협동조합이 찾아왔습니다. 조합원들은 우선 마구잡이로 튀어나온 철근들을 잘라냈습니다. 묵은 먼지와 페인트를 벗겨낸 후 비가 와도 걱정 없도록 방수 페인트칠도 새로 했습니다. 계단에서 더 이상 부스러기가 떨어지지 않게 마감처리도 꼼꼼히 했고요. 가루가 날려 지저분했던 부엌도 말끔히 청소했습니다. 천장을 바꾸자 흡사 ‘폐가’ 같던 집이 깨끗하게 되살아났습니다.

할머니 댁의 변화는 구로종합사회복지관 덕분에 가능했습니다. 처음엔 차상위계층이신 할머니께 반찬배달 서비스를 하고자 집을 찾았습니다. 그리고 할머니와 상담을 하던 중 집에 문제가 있단 것을 알게 되었고요. 집을 수리하는 데 드는 비용은 만만찮았습니다. 지역 복지관의 특성상 주로 지역 주민들을 대상으로 모금하는데 이렇게 큰 금액을 마련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죠. 또 한 명의 특수한 사례만으로는 사업이 어렵기도 하고요. 고민 끝에 해피빈에 사연을 올리기로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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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 집 외부 모습. /구로종합사회복지관

모금 목표액은 90만 원. 과연 목표액을 달성할 수 있을까 걱정이 많았다고 합니다. 성공을 보장할 수 없으니 할머니께 ‘해드리겠습니다’라고 확실하게 말할 수 없어 안타깝기도 했고요. 그러나 걱정과 달리 해피빈 메인 페이지에 사연이 소개되면서 20일 만에 90만 원이 조금 넘는 금액을 후원받을 수 있었습니다. 목표 기간인 두 달에 비해 훨씬 빨리 모금이 완료된 것이죠. 구로종합사회복지관에서 올린 사연 중 가장 댓글이 많이 달린 것이기도 합니다.

도움의 손길은 계속 됐습니다. 집수리 협동조합에서 일반 인테리어 업체보다 저렴한 비용인 66만원으로 수리를 해주면서 남은 금액인 24만7300원으로는 생필품을 지원해드릴 수 있었습니다. 찌그러진 냄비를 대신할 식기들과 계절에 맞는 여름 이불, 벌레를 쫓아줄 홈매트, 세제, 치약 등 실생활에 꼭 필요한 물품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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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끔하게 수리된 천장의 모습. /구로종합사회복지관

아무도 해주지 않던 것을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할머니께서 전해온 감사인사입니다. 이제 할머니께서는 보다 안전한 집에서 생활하실 수 있게 되셨습니다. 무엇보다도 이사를 하지 않아도 되는 점이 제일 행복하다고 하십니다. ‘현재 목표액보다 더 모여 안전한 집으로 이주하실 수 있길 바랍니다’라는 따뜻한 댓글도 있었지만, 할머니께선 원하시던 대로 할아버지와 서울살이의 추억이 깃든 집에 오래오래 머무실 수 있게 되셨습니다.

구로종합사회복지관은?

‘아름다운 지역공동체 만들기’를 목표로 소외계층과 지역주민이 더불어 생활할 수 있는 종합적 사회복지서비스들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장애에 대한 차별을 없애는 여행’, ‘쪽방촌 어르신들 대중 목욕탕 보내드리기’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해피빈을 통해 모금해 지원합니다.

글/ 최아리 더나은미래 청년기자
사진‧자료/ 구로종합사회복지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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