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3일(금)

영국 흔든 ‘브렉시트’… 자원봉사계에 어떤 변화 줄까

英 민관협력 현장을 가다 <下·끝>

 

3000만명. 지난해 영국에서 활동한 자원봉사자 숫자다. 우리나라의 8배(374만6577명)다. 이들이 지난 1년간 활동한 자원봉사 시간은 20억 시간. 비용으로 환산하면 무려 76조원(500억파운드)에 달한다. 전 국민의 45%가 자원봉사를 하는 나라, 영국. 최신 동향을 듣기 위해 런던에서 만난 제임스 뱅크스(James Banks) GLV(자원봉사협의회·Greater London Volunteering) 대표는 “지금 영국의 자원봉사계는 격변기”라며 입을 열었다.
 
 
영국의 1만40000곳 자선단체 및 자원봉사기관의 역량강화 및 자원봉사 교육을 담당하는 자원봉사협의회(GLV)가 시민들과 자원봉사를 하는 모습.
영국의 1만40000곳 자선단체 및 자원봉사기관의 역량강화 및 자원봉사 교육을 담당하는 자원봉사협의회(GLV)가 시민들과 자원봉사를 하는 모습. /GLV 제공

GLV는 1만4000개 지역 비영리단체(이하 NPO), 시민 9만명과 함께하는 자원봉사 중간 지원 조직이다. 처음엔 영국 32개 지역에 있는 자원봉사센터 관리자들의 모임으로 출발, 21년간 NPO를 대상으로 자원봉사 역량 강화 교육, 컨설팅, 네트워킹을 담당해왔다. 2012년 런던올림픽을 위해 3년간 5만명의 자원봉사자를 발굴하고 훈련을 담당한 대표 기관이기도 하다. 제임스 대표는 “최근 2년간 영국 정부가 자원봉사 관련 예산을 절반가량 삭감하면서, 자원봉사단체와 NPO 전반이 침체기”라면서 “지원금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자원봉사 서비스의 질에 전처럼 신경 쓰지 못하는 분위기가 우려된다”고 말했다. 지금은 정부(OCS·제3섹터청)가 주도적으로 자원봉사 법안, 기금, 프로젝트를 직접 시도하고 있다고 한다. 그는 제3섹터청이 1년 6개월 전 런던에 세운 자원봉사 지원센터 ‘볼런티어링 매터스(Volunteering Matters·전 서비스 볼런티어)’를 예로 들며 “정부 주도형 자원봉사 사업이 많아지면서 비영리 민간 중간 지원 조직에 좀처럼 기회가 열리지 않고 있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최근 영국 제3섹터청(OCS)은 대기업을 대상으로 자원봉사 의무 법안을 준비 중이다. 1년에 최소 3~7일까지 유급휴가를 쓰고 자원봉사를 하도록 의무화하는 제도다. 또한 비행청소년들에게 무료로 제공되는 이동카드(Travel Card)를 뺏고, 자원봉사를 4시간 이상 할 때 돌려주는 제도도 시행되고 있다. 제임스 대표는 “정부는 자원봉사 참여율을 높일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오히려 자선단체들은 자발적인 자원봉사 문화를 위축시킬 수 있다며 염려한다”고 설명했다.

영국은 전 국민의 45%가 자원봉사를 하는 나라다. /GLV제공
영국은 전 국민의 45%가 자원봉사를 하는 나라다. /GLV제공

최근 영국의 다양한 정책 변화를 NPO는 어떤 눈으로 바라보고 있을까. 영국 NPO 1500곳의 대표들이 가입돼 있는 비영리단체장 연합 ‘아케보(이하 ACEVO)’를 찾았다. 1987년 설립된 ACEVO는 복지·청년·보건·여성 등 300개 분야로 나눠 정기적으로 단체장 모임을 개최하고, 이들의 목소리를 정부에 전달하는 인식 개선(Advocacy) 기관이다. 단체장들의 역량 강화 교육이나 경제적·윤리적·법률적 자문도 담당한다. 단체장 개인이 지불하는 멤버십 비용으로 유지되고, 마약·담배 등 유해한 기업이나 기관의 돈은 받지 않는 등 철저한 윤리 정책을 가진 것도 특징이다.

15년간 ACEVO 대표로서 정부를 향한 ‘스피커’ 역할을 해온 스티븐 버브(Stephen Bubb) ACEVO 대표는 “우리 기관의 핵심 역할은 정부 지원금에 대한 방향성 제시”라면서 “정부가 사업비는 지원하지만, 인건비나 운영비를 지원하지 않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비영리단체의 사업별 실제 비용을 계산할 수 있는 툴킷(Full Cost)을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기자를 만난 날이 마침 “ACEVO 대표로서 임기 마지막 날”이라며 영국 정부의 정책 변화에 대한 쓴소리를 냈다. 가장 우려되는 제도로는 폴리시(POLICY) 법안을 꼽았다. 이는 ‘정부의 지원금을 받은 단체는 정부를 비판할 수 없다’는 법안이다. 스티븐 대표는 “지원금을 줄 때 계약서에 비판 금지 조항을 넣겠다는 것인데, NPO 대표들은 물론 영국 시민들도 반대하고 있다”고 했다. 아직 법안 통과가 미뤄지고 있는 이유로 영국의 시민의식을 들었다. 1600년대부터 자선단체들이 학교·병원·오페라하우스 등 공공 서비스 전반을 운영할 정도로 역사가 오래된 만큼, 시민들이 NPO의 가치를 응원하고 지지한다. 스티븐 대표는 “정부가 비영리단체의 목소리를 무시하지 못하는 이유”라며 “실제로 ‘자선단체들이 선거 기간 동안 정부에 반대되는 입법 촉구 활동을 할 수 없다’는 내용의 법안(Lobbying Act)도 ACEVO의 문제 제기로 수정됐다”고 말했다. 

이번 서울시 NPO지원센터의 ‘영국 민관협력 및 시민사회 지원 시스템’ 연수 프로그램에 동행한 시민사회 및 비영리단체 전문가들은 “민관협력의 키워드는 소통”이라면서 “브렉시트(Brexit) 이후 영국의 정책이 자선단체·NPO·자원봉사계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지 주목된다”고 입을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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