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2일(일)

대학은 지금 기부 문화 변신 중

대학 모금 쟁탈전

인재 영입하고 맞춤형 서비스 늘어 
총장 직속 기금기획본부 신설
‘모금 전문가’ 영입하고 기금팀 규모 확대
릴레이 모금과 기부자 이름 딴 장학금 제도

Getty Images Bank
Getty Images Bank

지난해 6월 고려대는 염재호 총장 직속 기금기획본부를 확대 신설했다. 직원 수도 12명으로 기존보다 2배가량 늘렸다. 서울대와 사회복지공동모금회 등 외부 ‘모금 전문가(fundraiser·펀드레이저)’도 스카우트해왔다. 그 외에 별도로 영입한 외부 전문가는 기업인 등 잠재적인 고액 기부자를 많이 접할 수 있는 경영대학에 배치했다. 창립 111주년을 맞이한 올해의 모금 목표액은 1200억원으로, 지난해(530억원)보다 2배 넘게 커졌다. 고려대 기금기획본부 관계자는 “고려대는 다른 대학과 달리 전 국민이 함께 모금한 약 6000억원으로 설립된 역사성이 있다”면서 “최근 모금 전략을 새롭게 세팅하는 대학들이 벤치마킹을 위해 고려대를 많이 다녀갔다”고 설명했다.

◇모금 전문가 영입하고, 부서 키워… 대학은 지금 변신 중

최근 국내 대학의 기금운용팀(대외협력팀·발전기금 등)은 총성 없는 전쟁이 한창이다. 등록금 동결이 지속되면서 각 대학 재정 상황에 ‘빨간불’이 켜졌기 때문. 게다가 기부금 또한 줄어드는 추세다. 대학교육연구소에 따르면, 2014년 국내 사립대 153곳 기부금 총액은 4037억원으로 2010년(4557억원)보다 4년 만에 약 500억원 감소했다. 이런 상황에서 그나마 선전하고 있는 게 바로 ‘개인 기부’다. 2013년

1089억원이었던 개인 기부금은 2014년 1212억원으로 늘었다. 전문가들은 “사립대 전체 수입 총액의 1.7%에 불과한 기부금 비율을 끌어올리는 게 매우 중요한 시점이 됐다”고 입을 모은다. 하버드대는 모금 인력만 500명에 이르고, 해외 유명 대학은 재정에서 기부금이 차지하는 비율이 10~30%나 된다.

성균관대는 올해 1월 유지범 부총장 직속으로 발전협력팀을 새로 꾸렸다. 총무팀에서 기금 운용을 담당하던 기존 시스템을 개편해, 기부자 발굴·예우 및 기금을 관리하는 전담자 4명을 배치한 것. 경영대·의대·공대 등 단과대학은 물론 타 부서에까지 모금 담당자를 배치할 계획이다. 성균관대 발전협력팀 관계자는 “현재 교내 다른 부서와 비교해도 가장 많은 인력이 편성된 편”이라면서 “고등학생 수가 계속 줄어들면서 우수 인재 확보가 어려워지고, 삼성그룹을 비롯한 기업들의 비상 경영 체제가 이어지면서 모든 대학이 모금 비상에 걸렸다”고 설명했다.

서울대 발전기금 역시 최근 유산 및 부동산 기부 문의가 늘면서 회계지원팀 인력을 종전 1~2명에서 5명까지 보강하고, 부동산운영팀을 별도로 운영하고 있다. 서울대 발전기금 관계자는 “이전부터 꾸준히 후원해온 고액 기부자 중에서 유산 기부를 생각하는 분이 늘고 있다”면서 “1000억원 규모 기금을 더욱 투명하게 관리하기 위한 인력 및 시스템 보강이 우리 대학의 화두”라고 덧붙였다.

한양대 역시 최근 미국의 고액 기부 문화를 공부하고 돌아온 타 부서 실무자 1명을 모금팀 인력으로 충원했고, 이화여대는 외부 모금 전문가 한 명을 영입해 전문성을 더했다. 대학들이 한꺼번에 기금팀 규모를 늘리면서 펀드레이저 영입 경쟁도 치열해지고 있다. 10년 넘게 대학 모금을 전담한 A씨는 “타 대학 모금 전문가를 스카우트하면서 ‘다시는 얼굴 못 볼 각오하라’는 경고도 들었다”면서 “국내에 능력 있는 펀드레이저가 손에 꼽히다 보니, 평소 눈여겨보던 인재들을 오랜 시간 공들여 영입하는 추세”라고 귀띔했다.

◇맞춤형 예우 서비스, 기부 규모별 모금 전략 뜬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대학별 모금 전략도 다양하고 세련돼졌다. 1000억원을 모금해 지난해 백양로를 완공한 연세대는 가족 모금 전략을 성과로 꼽았다. 백양로 지하 1층 명예의 전당(고액 기부자 이름을 새긴 외벽)엔 ‘부부 동문석’ ‘가족석’이 따로 마련돼있다. 100만원 이상 기부한 부부 이름을 새기고, 가족이 함께 기부하면 구성원 중 1명만 연대 출신이어도 명예의 전당에 가족 이름을 전부 올려준다. 연세대 대외협력처 관계자는 “백양로가 완공된 이후에도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올리고 싶다’며 고액 기부 문의가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대는 소액 기부 전략을 강화하고 있다. 지난해 시작한 ‘선한 인재 이어달리기’가 대표 사례다. 이는 선한인재장학금(매 학기 저소득층 학생 750명에게 매달 30만원씩 생활비를 지원)의 재원 마련을 위해 시도한 모금 캠페인으로, ‘아이스버킷 챌린지’처럼 다음 기부자를 지목하는 릴레이 모금이다. 류진 풍산그룹 회장, 배우 이순재씨, 서울대 마을버스 회사인 인헌운수의 박성훈 이사가 1번 타자가 됐고, 6개월 만에 무려 100억원을 모금했다.

고려대와 성균관대는 올해 고액 기부자를 위한 맞춤 전략을 세웠다. 고려대는 호텔식 VIP 서비스를 고액 기부자 예우 프로그램에 도입했다. 예를 들어 예술에 관심이 많은 고액 기부자가 학교를 방문하면, 예술대학 교수 미팅과 박물관 투어를 연결하는 식의 맞춤형 메뉴를 준비 중이다.

성균관대는 기부자 이름을 딴 장학금 제도를 신설했다. 최근 신설된 총동창회의 임대 수익금을 장학금으로 주는데, 여기에 건물 기금을 낸 고액 기부자 이름을 붙인 것. 성균관대 발전협력팀 관계자는 “후원자가 낸 기부금 외에도 매달 장학금이 학생에게 전달된다고 하니, 고액 기부자들의 반응이 뜨겁다”고 설명했다.

기부 문화를 확산하기 위해 장기 플랜을 세운 대학도 있다. 한양대는 지난해 국내 대학 최초로 ‘필란스로피(phila nthropy·자선)의 이해와 실천’이란 이름의 교양과목을 개설했다. 올해 공과대에선 적정 기술을 어떻게 필란스로피에 활용할지, 교과과정에서 함께 배우고 실행할 계획이다.

동문들의 기부를 홍보하고 확산하기 위해 나눔 서포터스도 선발했다. 한양대 대외협력처 관계자는 “한양대 30만 동문 중 기부에 동참한 이의 비율이 3~8%에 불과한데, 미국 프린스턴대는 63%나 된다”면서 “재학생들이 졸업 후 사회에 나가서도 남을 배려하고 기부할 수 있도록, 나눔을 이식하는 다양한 프로젝트를 확대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관련 기사

Copyrights ⓒ 더나은미래 & futurechosun.com

전체 댓글

제261호 2024.3.19.

저출생은 '우리 아이가 행복하지 않다'는 마지막 경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