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일(수)

[대한민국 사회문제 지도로 그리는 사회적 기업의 미래] ② 안전은 비용 아닌 투자… 주민 주도형 재난관리 시스템 마련해야

미래 지도 프로젝트 (2) 전문가 14인의 대한민국 안전 진단

안전 분야 중 가장 시급한 문제
‘안전 의식 부족’으로 꼽아
국민안전처 예산 중 99%가
장비지원·노후시설에만 투자

조선일보 더나은미래는 사회적기업연구소(소장 서재혁) 및 연세대 공공문제연구소 정부와기업연구센터(센터장 장용석)와 함께 우리 사회가 해결해야 할 문제와 사회적기업 간의 미스매치를 살펴보는 ‘대한민국 사회문제 지도로 그리는 사회적기업의 미래(이하 미래지도)’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지난 6개월간 국제 지표 및 빅데이터 분석을 통해 ▲안전 위협 ▲소득 및 주거 불안(부동산대책·가계부채) ▲노동 불안정(비정규직·청년 일자리) ▲교육 불평등 ▲보육 ▲탈북자(통일) ▲환경파괴 등 7가지 사회문제를 도출했다. 이어 전문가 심층 인터뷰를 통해 사회문제별 정책 현안 및 대안을 시급한 순서대로 짚어볼 예정이다. 미래지도 프로젝트 두 번째 순서는 전체 빅데이터의 45%(8676건)를 차지할 정도로 최우선 과제로 꼽힌 ‘안전 위협’에 대한 전문가 14인의 심층 진단이다.  편집자 주


 

Getty Images Bank
Getty Images Bank

더나은미래가 안전 분야를 ▲공동체 기반 위협(재난·안전 의식 미흡 등) ▲사이버 위험 ▲강력범죄 ▲식품안전 사고 ▲신종질환 위험 등 5가지로 나눠 가장 시급하고 중대한 문제를 꼽아달란 질문을 던지자, 전문가 14명 중 9명이 ‘재난 및 안전 의식 미흡’을 꼽았다. 안전 의식을 높이는 것이 안전 사회로 가는 지름길이라는 것. 신창섭 충북대 안전공학과 교수는 “안전 문화가 정착되지 못한 상태에서는 다른 어떤 조건이 변해도 위험이 사라지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최근 5년간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인적재난은 145만8169건에 달한다. 2005년 25만6992건이었던 인적재난은 2013년 29만4707건으로 껑충 뛰어올랐고, 인명 피해도 1만명 이상 늘었다(통계청). 기술은 고도화되고 산업도 발전했지만, 안전 수준은 한참 뒷걸음질친 것. 이영재 동국대 경영대학 교수는 “안전 분야는 하드웨어만큼 ‘휴먼웨어(Human-ware)’가 중요하다”면서 “내년도 예산안을 보니 국민안전처에 책정된 15조 대부분 눈에 보이는 장비지원 및 노후시설 투자이고, 성과 책정이 어려운 사람 투자나 교육은 없더라”고 꼬집었다.

2015년 국민안전처에 책정된 예산 3조3124억원 중에서 99.4%가 하드웨어 지원이고, 현장 전문성을 위한 휴먼웨어 투자로는 국민 안전 의식 선진화(17억원)와 소방 보조 인력 양성 및 지원(180억원)이 전부다. 안전에 대한 개념 설계가 잘못됐기 때문에 정부 예산이 잘못 쓰이고 있단 지적도 많다. 조원철 연세대 명예교수는 “안전은 비용이 아니라 투자”라면서 “미국은 방재산업에 1억 달러 투자하면 미래에 최소한 16배 경제적 효과를 낳을 것으로 계산하고, 일본은 9.2배, 독일은 9.8배로 측정하는데 우리나라는 단순 비용으로만 계산하는 게 문제”라고 설명했다. 윤동근 울산과기대 재난관리공학과 교수는 “미국 국립건축과학연구소의 복합재난 예방위원회는 1달러를 재난 예방에 투자하면 사회 전체적으로 4달러, 즉 4배의 비용 절감 효과가 있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정부 안전 정책 점수 “매우 나쁨”… 구조부터 바꿔야

전문가들은 현 정부 안전 정책의 시의적절성, 효율성, 영향력 등 3가지 부문에 모두 낙제점을 줬다. 이장희 충북대 경영학부 교수는 “사고 발생 시마다 즉흥식 ‘땜질’ 대응이 많다”고 했다. 박두용 한성대 기계시스템공학과 교수는 “안전 혁신 마스터플랜 중에 딱히 떠오르는 게 없다”면서 “안전은 ‘혁신’에서 비롯되는 게 아니라 ‘기본’을 어떻게 지킬지 치밀한 전략 속에서 이뤄지는데, 배가 기울어지는 걸 느껴보는 안전 체험 교육장을 만든다고 안전 의식이 높아지는 게 아니다”고 지적했다. 일부 학자들은 “안전 혁신 마스터플랜 평가를 하러 갔더니 정책 홍보만 하고, 실제 얼마나 예방했고 어떤 정책이 효과적이었는지에 대해 대답을 못하더라”면서 보여주기식 정책에 대한 실망감을 표했다.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되도록 구조 개편이 필요하단 의견도 많았다. 문현철 조선대 법학과 외래 교수는 “미국은 과거 재난 사례 및 환경 분석, 시뮬레이션을 통해 국가사고관리체계(NIMS), 국가대응체계(NRF), 사고지휘체계(ICS) 등 재난관리 표준이론과 체계를 만들고 지속적으로 보완하고 있다”면서 “컨트롤타워 중심의 명령 하달식 구조를 탈피해, 안전 문제는 예방적 사회복지란 접근으로 부처별 시스템을 통합하는 새로운 모델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윤명오 서울시립대 재난과학과 교수는 “교통사고 숫자가 항공기나 선박 침몰 사고보다 통계적으로 훨씬 많지만 세월호 침몰에 사람들이 훨씬 더 불안하게 반응하는 것처럼, 생활 안전을 줄인다고 충격적인 사고가 줄어드는 것은 절대 아니다”면서 “삼풍사고 때 불법 증개축 현장을 눈앞에서 놓치고 감독하지 않은 것처럼, 초대형 재난을 막으려면 기술과 시스템을 제대로 모니터링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자료:통계청)
(자료:통계청)

◇1차 안전망은 현장… 민간 주도형 지역 자율 방재단 만들어야

초기대응은 출동 전에 이뤄진다. 현장에 있는 인원과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 단순사고가 대형 재난으로 번지기 때문. 전문가들이 민간의 현장 전문성에 투자해야 한다고 입을 모으는 이유다. 실제로 지난해 10월 전남 신안군 홍도에서 171톤짜리 바캉스호가 좌초됐을 때, 114명을 구조한 일등 공신은 홍도 지역 주민들로 구성된 민간 해양구조대원들이었다.

조원철 연세대 명예교수는 “애향청년회, 의사협회, 해병전우회, 약사협회, 종교단체 등 동네 지리와 사정을 가장 잘 아는 읍면동 중심의 지역공동체를 중심으로 재해재난관리 자율체제를 만들어야 한다”면서 “미국연방비상관리국(FEMA)도 처음엔 물리적인 안전 관리를 시도하다가, 3년 전부터 지역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재해재난 관리 능력을 키우는 프로젝트에 집중하고 있다”고 말했다.

UN 재해경감전략기구(ISDR) 역시 최근 ‘기후변화 및 재해에 강한 지역사회를 만들자(Resilient Community)’는 캠페인을 전 세계적으로 실시하고 있다. 최근 강서구도 지역 자율 방재단을 운영하면서 주민들이 직접 지역의 붕괴된 곳, 신호체계 등 안전 모니터링을 실시하고 있다. 이영재 고려대 경영대학 교수는 “안전 교육을 받거나 훈련에 참여하면 보험료를 감면해주는 해외 정책을 참고해도 좋다”면서 “일본 기업들은 재해·재난 등 예기치 못한 위기에 최단 시간 내에 핵심업무에 복구할 수 있는 경영기법(업무연속성계획·BCM)을 지역에 들고 가 안전 및 위기관리 컨설팅을 하기 시작했는데, 우리나라 기업들도 일회성 재해 기금이나 물품 기부만 할 게 아니라 지역 주민과 안전 지수를 높이는 참여가 강화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사이버 범죄, 안전 화두로 떠올라

정보유출 등 사이버 위험은 향후 떠오를 안전 문제로 꼽혔다. 최근 불륜 사이트 ‘애슐리 매디슨’의 유출 파문, 휴대전화 거래사이트 ‘뽐뿌’의 개인정보 190만건 해킹사건처럼 사이버 범죄 사건이 연일 터지고 있다. 지난해 국내에 발생한 사이버 범죄는 총 11만109건. 문제는 검거율이 2008년 89.3%에서 2014년 65.3%로 대폭 떨어졌단 점이다. 이동훈 고려대 정보보호대학원 교수는 “미국이 이란의 핵시설을 사이버공격으로 중단시켰던 스턱스넷(Stuxnet) 사례나, 국내 한수원 사태처럼 사이버 위험이 물리적 공간으로 번지는 융합 위험에 대비할 시점”이라면서 “최근 전자장비가 포함된 스마트 자동차와 비행기를 해킹하며 마음대로 조작하는 사례가 늘고 있지만 국내엔 아직 제대로 된 대비책이 없다”고 말했다.

인력 양성 등 중장기적 대책이 필요하단 목소리도 높다. 이홍섭 정보보호최고책임자협의회 회장은 “현재 사이버 인재 양성에만 집중돼 있는데 이들이 취직할 곳이 없어 정책 효율성이 떨어지고 있다”면서 “미국은 은행 등 산업군별로 모여 공동 사이버 대응 체제를 운영하는데, 우리나라는 협력하지 않고 정보 유출에 대한 책임도 회피하기 급급하다”고 비판했다. 한편, 사이버 안전 전문가들은 청와대에 사이버 안보 특보를 임명한 것과 올해 12월 23일부터 시행될 ‘정보보호산업진흥에관한 법률’에 대한 기대감을 드러냈다. 심종헌 지식정보보안산업협회장은 “기업이 자발적으로 정보 보호 투자 현황을 평가하고 대외적으로 공개하면 인센티브를 주는 제도인데, 잘만 정착된다면 2019년까지 시장 2배 확대, 약 2만명의 신규 고용 효과가 예상된다”고 설명했다.

※도움 주신 분: 강은성 CISO Lab 대표, 김찬오 서울과기대 안전공학과 교수, 문현철 조선대 법학과 외래교수, 박광배 법무법인 광장 변호사, 박두용 한성대 기계시스템공학과 교수, 신창섭 충북대 안전공학과 교수, 심종헌 지식정보보안산업협회 회장(유넷시스템 대표), 윤동근 울산과기대 재난관리공학과 교수, 윤명오 서울시립대 재난과학과 교수, 이동훈 고려대 정보보호대학원 원장, 이영재 동국대 경영대학 교수, 이장희 충북대 경영학부 교수, 이홍섭 정보보호최고책임자협의회 회장, 조원철 연세대 사회환경시스템공학부 명예교수(이상 가나다순)

관련 기사

Copyrights ⓒ 더나은미래 & futurechosun.com

전체 댓글

제261호 2024.3.19.

저출생은 '우리 아이가 행복하지 않다'는 마지막 경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