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9일(월)

동네가 떠도, 동네를 떠나는 사람 없어야

성동구 젠트리피케이션 방지 조례

지난달 26일 서울 은평구 녹번동 ‘서울혁신파크’에서 개최된 개관 이벤트에는 500명 넘는 시민, 활동가, 예술가들이 함께했다. /서울혁신파크 제공
지난달 26일 서울 은평구 녹번동 ‘서울혁신파크’에서 개최된 개관 이벤트에는 500명 넘는 시민, 활동가, 예술가들이 함께했다. /서울혁신파크 제공

“남의 일인 줄만 알았는데…. 막상 닥치고 보니 막막하더라고요.”

서울시 성동구 성수동1가, ‘서울숲’ 초입에서 디자인 회사 ‘소울스프(Soulsoup)’를 운영하던 방장혁 대표는 지난 4월 말 쫓기듯 사무실을 옮겨야 했다. 2013년 3월, 지저분한 식품 창고였던 15평 공간에 손수 페인트칠과 바닥 공사를 하며 안착한 보금자리였다. 애착이 남달랐지만 버틸 도리가 없었다. “구정 끝날 무렵, 갑자기 건물주가 우리 공간에 직접 카페를 한다고 하더라고요. 동네가 뜨면서 언젠가는 예상했지만, 이렇게 빠를 줄 몰랐어요.”

인근 부동산에 확인한 결과 이 점포는 임대 매물로 나와 있었다. 임대료는 보증금 1000만원에 월 120만원. 3개월 만에 임대료가 월 60만원에서 120만원으로 배로 뛴 것이다.

소위 ‘핫(hot)’한 동네라면 피할 수 없는 운명, 바로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이다. 낙후된 도시환경이 개선되면서 임대료나 집값 등이 상승하고, 이를 감당할 수 없는 원주민들이 다른 곳으로 밀려나가는 현상을 말한다. 홍대(서대문구), 가로수길(강남구), 삼청동길(중구), 경리단길(용산구) 등에서 벌어진 현상으로, 최근 사회문제로 급격히 대두되고 있다.

다음 타깃으로 지목되고 있는 지역이 바로 서울 성동구 성수동. 2012년부터 사회혁신단체, 예술가 등이 둥지를 트면서 주목받기 시작한 지역으로, 서울숲길 주택가를 중심으로 자리 잡은 40여 곳의 소셜벤처·사회적기업·비영리단체들이 동네의 풍경을 바꾸고 있다. 최근 도시재생 시범지구로 선정된 것도 임대료 상승을 부추기는 요인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이 지역 임차인들의 고민은 깊어진다. 오는 11월로 임대 계약이 끝나는 공정무역기업 ‘더페어스토리’ 임주환 대표는 “2014년 1월에 입주했을 때, 우리 위층의 임대료가 50만원이었는데, 최근 110만원으로 올랐다더라”면서 “10월 말에 재계약을 해야 하는데, 만약 임대료가 배 이상 상승하면 생각이 복잡해질 것 같다”고 말했다.

지난달 25일 성동구가 입법예고한 ‘성동구 지역공동체 상호협력 및 지속가능발전구역 지정에 관한 조례’, 일명 ‘젠트리피케이션 방지 조례’는 이런 현상을 막기 위한 움직임이다. 지자체가 직접 젠트리피케이션 문제 해결에 나선 것은 국내에선 처음 있는 시도. 조례의 골자는 지속가능발전구역 지정과 주민협의체 구성이다.

먼저 관할구역 안에 특정 지역을 ‘지속가능발전구역’으로 지정하고 지속가능발전구역계획을 수립하도록 한다. 해당되는 구역에선 ‘자율상생협약(건물주와 임차인이 자율적으로 임대료 안정화를 위한 협약을 진행하는 것)’의 체결을 유도하고, 지역에 새로 유입되는 업체 및 업소의 조정 등도 이뤄진다.

주민협의체는 이 계획을 주도적으로 실행할 주민 자치 조직이다. 건물주·임차인·거주자는 물론, 사회적 기업가·문화예술인 등 지역 활동가도 참여한다. 이는 미국 뉴욕시에 운영되는 ‘커뮤니티보드(Community Board)’의 개념을 차용한 것. 맨해튼·브루클린·퀸즈·브롱스·스테이튼아일랜드 등 뉴욕시 전역에서 총 59개의 커뮤니티 보드가 활동한다.

정원오 성동구청장은 “이번 조례는 (지역) 문화를 만든 그룹과 기존 주민이 지역의 상승된 가치를 함께 공유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시작된 것”이라며 “우리의 실험이 전국 도심 곳곳에서 진행되고 있는 ‘젠트리피케이션’에 제동을 거는 단초가 될 수 있길 바란다”고 밝혔다. 이번 조례는 오는 8월 초 조례규칙심의회에 상정되며 9월부터 공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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