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일(수)

“‘토이’를 만나고 딸아이 꿈도 수의사로 바뀌었죠”

안내견 후보 사회화 프로 ‘퍼피워킹’ 손지영씨 가족 시각장애인 안내견 후보 ‘토이’ 1년간 위탁 “가족간 대화 늘어… 장애인에 대한 시각도 변해”

“빨리빨리!” 손지영(42·경기도 분당)씨의 말에 ‘토이(래브라도 리트리버·11개월)’가 ‘볼일’ 볼 채비를 한다. ‘빨리빨리’는 ‘이곳에서 배변을 하라’는 주인의 신호. 손씨는 “배변 훈련은 안내견이 되기 위한 기초적인 단계이자, 가장 중요한 훈련”이라며 “이제 토이는 내 신호 없이는 아무리 급해도 참고 기다린다”며 기특해했다. 토이는 시각장애인 안내견 지망생이다. 걸치고 있는 오렌지색 조끼에는 ‘안내견 공부 중입니다’라고 쓰여 있다. 오는 9월이면, 안내견 학교에 입학해 본격적인 훈련에 돌입할 예정. 훈련을 통과해 장애인을 도울 수 있는 개는 10마리 중 3마리 정도. 한 해 배출되는 안내견도 기껏해야 10마리 내외다. 바늘구멍 같은 관문을 뚫기 위해선 많은 과정을 거쳐야 한다. 사람과 친해지고, 사회에 적응해가는 ‘퍼피워킹(Puppy Walking)’도 그중 하나다.

손지영씨 가족이 퍼피워킹 강아지 '토이'와 함께 단란한 한 때를 보내고 있다.
손지영씨 가족이 퍼피워킹 강아지 ‘토이’와 함께 단란한 한 때를 보내고 있다.

퍼피워킹은 생후 7주 된 안내견 후보들이 일반 가정에 1년간 위탁돼 사회화를 체험하는 특별한 과정이다. 위탁을 맡는 가정을 ‘퍼피워커’라 부르는데, 모두 무보수 자원봉사로 이뤄진다. 하우종 삼성화재 안내견학교 과장은 “서울·수도권에 거주하며, 집에 사람이 상주하고, 다른 강아지를 키우지 않는 집은 퍼피워킹을 신청할 수 있다”고 했다. 목나영 안내견학교 훈련사는 “품행·사회화·배변활동 등을 교육시켜야 하는데 초반에는 가정 내에서, 후반으로 갈수록 야외 훈련이 많아진다”고 했다. 토이가 손씨 가정에 들어온 지 어느덧 9개월. 토이 역시 바깥 생활이 늘었다. “아파트에 큰 개를 들이다 보니, 처음엔 부담도 많이 됐어요. 엘리베이터에 ‘안내견이 되기 위해 훈련을 받는 강아지이니 놀라지 말고 예쁘게 봐주세요’라고 써붙여 놓기도 했죠. 그런데 토이가 워낙 순하고 얌전해서 사람들과 잘 지내요. 버스·지하철도 잘 타고, 마트에선 엎드리고 한참을 기다려주죠. 유독 에스컬레이터만 무서워했는데, 이젠 능숙해요.” 토이 칭찬이 그칠 줄을 모른다. “반드시 좋은 안내견이 될 것 같다”는 자신감도 내비쳤다. 사회화가 목적인 만큼, 동거 과정에선 사회의 온갖 상황과 소리에 익숙해지게 도와야 한다. 안내견 학교에서 “집에 있을 땐 항상 TV를 켜두라”고 조언하는 것도 그 때문. 대형마트, 카페, 리조트, 놀이공원 등을 일부러 자주 데리고 다녔는데, 초반엔 개의 입장을 꺼리는 곳도 있었지만 상황을 전해 듣곤 오히려 반기기도 한다.(장애인복지법 제40조3항에서는 ‘보조견 표지를 붙인 장애인 안내견을 동반한 장애인이 대중교통수단이나 공공장소, 숙박시설 및 식품접객업소 등에 출입하려는 때에는 정당한 사유 없이 거부해선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퍼피워킹이 토이의 사회화만 돕는 건 아니다. 손씨는 “남편과 강아지 관련된 문자를 하루 30번 넘게 주고받는다”며 “대화와 소통이라는 큰 선물을 토이가 주고 있는 셈”이라고 했다. 손씨의 아들 조현진(10)군은 “토이가 온 이후 매일매일이 ‘이벤트’ 같다”며 “토이 덕분에 많은 걸 누리고 있는데 곧 떠난다니 너무 슬프다”고 했다. 딸 조유진(14)양은 장래 희망까지 바뀌었다. 아빠를 따라 금융인이 되겠다던 조양의 새로운 꿈은 ‘수의사’. 조양은 “강아지를 목욕시키고, 함께 있을 때 정말 행복하다는 걸 느꼈다”며 “특히 다른 사람을 돕기 위해 태어난 토이 같은 강아지들은 정말 ‘행운아’인 것 같다”며 웃었다. 손씨는 “예전엔 시각장애인을 그저 ‘눈이 안 보이는 사람’ 정도로만 여겼는데, 이젠 그들에게 누군가 필요하다는 걸 깨닫는다”고 했다. 토이를 키우며 장애에 대한 인식이 저절로 바뀐 것. 지난달 ‘스승의 날’에는 아들의 학급을 찾아 학부모 수업까지 펼쳤다. ‘시각장애인과 안내견’에 대한 강의에 토이도 직접 조수로 따라나섰다. 손씨는 “아이들이 참 열심히 들어주더라”며 “이 아이들도 우리 가족처럼 토이를 통해 시각장애인에 대해 새롭게 깨달은 부분이 있었을 것”이라고 했다. 최근 퍼피워킹을 원하는 가정이 부쩍 늘고 있다. 목나영 훈련사는 “예전에는 우리가 자원봉사 가정을 찾으러 다녔는데, 이제는 6개월에서 1년까지 기다려야 할 정도로 신청자가 늘었다”고 한다. 하지만 너무 쉽게 생각해선 곤란하다. “배변훈련과 급식훈련에는 끈기가 필요하고, 매일 데리고 나가는 것도 보통 일은 아니에요. 중간에 포기할 생각을 했을 정도죠. 호기심보다 책임감이 커야 합니다.” 손씨의 당부는 이어졌다. “토이가 안내견 심사에서 떨어지면 저희가 다시 데려와서 키우려고요. 그래도 안내견이 됐으면 좋겠어요. 역할을 훌륭히 수행하고 은퇴견이 돼서 다시 우리 집에 오면 또 인터뷰하러 와주세요(웃음).” 최태욱 기자 분당=장진영 청년기자(청세담 3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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