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일(수)

[Cover Story] 반려동물 1000만 시대, 유기동물 보호소를 가다

“가족이 되고 싶어요”

주인 못찾거나 입양 안되면 안락사 한 해 유기동물 처리비용 100억원’유기견’ 편견에 입양도 꺼려
정부 지자체 보호소 90%가 위탁운영 전문성 떨어지는 사설보호소 난립

대규모 애견 번식장 90%가 무허가…싸게 분양받고 버리는 악순환 이어져

반려동물 인구 1000만명 시대다. 국민 5명 중 1명은 동물과 함께 산다. 동물보호법이 제정된 지 올해로 24년째요, ‘반려동물등록제’가 전면 시행된 지 3년째다. 국내에도 반려동물 복지가 정책적으로 이뤄지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한 해 8만 마리 이상 동물이 유기된다. 유기동물 입양과 안락사 등으로만 한해 100억원 이상이 든다. 전국 유기동물 보호소 368개는 제 역할을 못한다는 평가다. 일부 사설 유기동물 보호소(private animal shelter)는 법적 테두리 밖에서 불법 밀거래를 하기도 한다. ‘더나은미래’는 전국의 유기동물 보호소 4곳을 현장 르포 취재해 유기동물의 현주소를 들여다봤다. 편집자 주


Getty images /멀티비츠 제공
Getty images /멀티비츠 제공

여느 개들과는 조금 달랐다. 짖지도 반기지도 않았다. 진한 밤색 털에 하얀 콧잔등이 도드라졌던 ‘차돌이'(도사견·4년 추정)는 기운 없는 모습으로 견사(犬舍) 주변만 어슬렁거렸다. 왼쪽 허벅지 뒷부분엔 수술 흔적이 남아있다.

“두 달 전 전라도 지역의 한 시(市)보호소에서 데려왔어요.”

이영숙 동물학대방지연합회 양주쉼터 소장이 말을 이었다. “다리에 종양도 있고, ‘심장사상충’도 있었지만 치료의 손길은 전혀 없었죠. 내버려뒀으면 안락사를 당했을 거예요.”

동물학대방지연합회는 유기동물을 구조·보호하고 입양으로 연결하는 비영리 민간단체다. 1999년 처음 설립됐고, 2003년 경기도 양주에 터를 잡았다. 현재는 ‘차돌이’와 같은 동물 140마리를 보호하고 있다. 지난 1일 오후에 찾은 이곳은 울타리 설치가 한창이었다. “새 식구를 맞이할 준비를 하는 중”이라고 했다.

대구 ‘한나네보호소’를 찾은 김용훈씨가 펀딩을 통해 모은 기부금을 전달하고 있다.(위) / 보호소에 수용된 유기견 중에서도 대형견의 경우에는 입양이 쉽게 성사되지 않는다.(아래)
대구 ‘한나네보호소’를 찾은 김용훈씨가 펀딩을 통해 모은 기부금을 전달하고 있다.(위) / 보호소에 수용된 유기견 중에서도 대형견의 경우에는 입양이 쉽게 성사되지 않는다.(아래)

◇유기는 늘고 입양은 줄고… ‘시한부 견생’ 선고받는 유기견

동물보호법에선 공공장소에서 배회하거나 버려진 동물을 ‘유기동물’로 규정하고, 발생 신고가 들어오면 자치구별 유기동물 보호기관으로 연계한다. 이후 7일간 ‘주인 찾기’ 공고를 하고, 10일이 지나도 나타나지 않을 경우 입양 또는 안락사 처리가 된다. 이 비용만 한 해 100억원 이상이 든다.

문제는 실제 입양으로 연결되는 케이스가 드물다는 것. 관할 부처인 농림축산식품부에선 30% 정도가 입양됐다고 추산하지만 “통계에 잡히지 않는 부분까지 포함하면 비율은 훨씬 낮아질 것”이라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버려진 개라는 인식에 입양 자체가 힘들고 파양되는 경우도 심심찮게 발생한다. 이영숙 소장은 “‘연이'(비글 믹스·6년)라고, 3년 전에 이스라엘 대사관에 입양이 된 녀석이 있었는데 너무 말썽을 피워서 2년 반이나 살다가 파양됐다”고 했다. 연이는 아직도 양주쉼터에 머물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선택지 중 하나가 ‘안락사’다. 지난해엔 46% 정도의 유기동물이 보호소에서 생을 마감했다(자연사 포함). 이 중 40%가 연령 2년 이하다.

보호소의 전문성 문제도 끊임없이 제기된다. 현재 정부·지자체가 운영하는 유기동물보호소 10곳 중 9곳은 위탁운영(93.2%)이다. 전문가들은 “위탁업체의 역량에 따라 동물 복지의 질이 갈리다 보니 표준화·전문화가 요원하다”고 지적한다. 동물복지 분야의 한 전문가는 “지방의 한 위탁 보호소는 철제 우리(cage)를 갖췄다는 이유만으로 개장수가 위탁업체로 선정되는 일도 있었다”면서 “안락사시키기 전에는 수면주사를 놔서 고통을 줄여줘야 하는데, 그 비용조차 줄이고자 멀쩡한 상태에서 안락사를 진행하는 곳도 있다”고 말했다. 한진수 건국대 수의과 교수는 “공공기관에서 위탁업체 입찰을 하면 통상 ‘저가입찰’할 수밖에 없는데, 입찰을 따내기 위해 적은 금액을 제시하면 이를 메우기 위해 편법이 이뤄질 소지가 있다”고 설명했다.

‘무분별한 안락사를 막고, 올바른 유기동물 입양 문화를 선도하겠다’며 시민단체들이 생겨난 이유다. 현재 서울시에서 동물보호를 목적으로 하는 비영리 민간단체는 모두 13곳. 서울 답십리와 경기도 포천·김포 등에서 유기동물 총 200여마리를 보호하고 있는 동물단체 ‘케어’도 그중 하나다. 100% 시민 후원으로만 운영되는데, 직접 자원봉사자로 나서는 이도 있고, 정기적으로 현금이나 물품을 후원하기도 한다. 이 단체는 학대·상해 위기에 처한 동물을 직접 구조하고 치료 후 입양 보내는 것을 원칙으로 하는데, 치료가 필요한 동물은 답십리 센터에서 보호하고, 정상인 경우는 김포나 포천 보호소로 보내진다.

한나네보호소에는 현재 200여마리의 유기견을 보호하고 있다.(위) / 동물사랑실천협회 김포 보호소 전경.(아래)
한나네보호소에는 현재 200여마리의 유기견을 보호하고 있다.(위) / 동물사랑실천협회 김포 보호소 전경.(아래)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유기 발생 숫자에 비해 입양 숫자가 현저히 떨어지기 때문이다. 특히 아픈 동물이 많은 답십리 센터의 경우 입양은 ‘남의 나라’ 얘기다.

지난달 27일, 케어 답십리 센터에서 만난 백구(白狗) ‘하늘이’는 머리뼈가 변형되고 오른쪽 안구가 빠지는 큰 상처를 안고 있었다.

“충남 공주에서 구한 녀석이에요. 술 취한 남자가 쇠파이프로 머리를 쳤대요. 단지 ‘짖는다’고 말이죠.”

임희진 케어 국장의 말이다. 이곳에선 한 달 평균 15건의 구조가 이뤄지는데, 10마리 정도는 하늘이처럼 폭행당한 상태로 들어온다고 한다.

◇동물 애호가의 봉사, 관리 사각지대의 시한폭탄 사이에 선 ‘사설보호소’

“사람을 너무 좋아해요. 봉사자들 오면 얘들 만져 주느라 일을 못 한다니까(웃음).”

지난달 29일, 대구시 동학동에 위치한 유기견 보호시설 ‘한나네 보호소'(이하 한나네) 주인장 신상희(49)씨가 서울에서 온 손님을 맞았다. 수십 마리의 개도 함께 달려 나와 다짜고짜 손님들 품으로 파고들었다. 이날 한나네를 찾은 김용훈(30)·김은주(26)씨는 ‘세상을 빛내는 광고’라는 공익광고 프로젝트팀의 멤버로, 지난 4월부터 ‘한나네 보호소를 돕자’는 내용으로 크라우드 펀딩(Crowd funding·대중으로부터 자금을 끌어모으는 것)을 진행해, 목표 금액(150만원)의 1000%가 넘는 1800만원을 모았다. 김은주씨는 “유기견 문제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굉장하더라”고 말했다.

200마리 정도의 유기견을 데리고 있는 한나네는 정부의 지원이나 통제를 받지 않는, 일명 ‘사설보호소’다. 지역사회의 후원과 개인 사비로 유지된다. 한나네가 전국적으로 알려진 건 지난해 말 있었던 화재 사건 때문.

“아오, 말도 마요. 정말 그때만 생각하면 머리가 지끈거려.”

지난 31일 열린 ‘2015동물보호축제’에 참가한 황동열 ‘팅커벨 프로젝트’ 대표.
지난 31일 열린 ‘2015동물보호축제’에 참가한 황동열 ‘팅커벨 프로젝트’ 대표.

2014년 12월 18일 밤. 보호소 내 컨테이너 전기 시설이 누전되며 발생한 화재는 순식간에 견사를 덮쳤다. 유기견 45마리가 함께 불에 탔고, 개들을 구하고자 혼비백산 움직였던 신씨 역시 양쪽 볼과 오른쪽 머리, 양 손등에 2도 화상을 입었다. 무허가 시설로 화재보험에 가입할 수도 없었던 만큼, 각종 재산 피해 역시 고스란히 신씨 몫이었다.

“내가 거두지 않으면 죽을 애들이라 하나 둘 받다가 이렇게 커졌다”는 한나네. 가족들이 두 손 들 정도로 개를 좋아하는 신씨의 정성 덕에 보호소 운영은 비교적 야무진 편이다. 유기견들이 새로 들어오면 심장사상충, 홍역 등 각종 검사와 예방 조치를 취하고, 중성화 수술도 빼놓지 않는다. 입양에도 적극적이다. 신씨는 “대부분 잡종이라 사람들이 입양을 꺼린다”면서 “5마리 (입양)보내면 두세 마리는 되돌아온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하지만 모든 사설보호소가 한나네처럼 운영되는 건 아니다. 상당수 시설이 비전문적으로 운영돼 질병·개체 관리에 취약하고, 심지어 개농장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는 의혹도 심심찮게 나온다. 지난해 농림축산식품부 동물복지위원회 위원을 역임했던 명보영 수의사(광주주주동물병원)는 “보호소 안에선 번식을 금해야 하기 때문에 중성화 수술이 반드시 필요한데, 경기도 모 지역에서 가장 큰 사설보호소 중 하나인 A시설에 중성화 수술 봉사를 제안했더니 ‘우린 됐다’고 하더라”면서 “전국에 100개 정도가 있다고 추정만 될 뿐 정확한 개수 파악조차 힘들고 규모·시설·운영방법 등이 모두 제각각인 게 사설보호소의 가장 큰 문제”라고 했다.

◇생산부터 무분별, 유기동물 양산시키는 구조 바꿔야…

“애교가 넘치는 녀석인데, 믹스견이라 입양이 잘 안 되네요.”

지난달 30일 찾은 서울 강서구 화곡동의 ‘팅커벨 프로젝트'(이하 팅커벨) 유기견 입양센터. 황동열 대표가 문 앞부터 꼬리를 세차게 흔들며 반기던 ‘크림이’를 보며 말했다. 불과 몇 주 전 서울 관악구에서 구조된 유기견이다. 헬스 트레이너로 일하던 황 대표가 유기동물 구호 운동에 뛰어든 건 2012년부터다.

“부모님이 한 달 간격으로 돌아가셨어요. 매일 밤 폭음을 했죠. 힘든 나날을 보내던 중 거리에서 ‘오늘 입양되지 않으면 안락사당합니다’라는 유기동물 입양 캠페인 피켓을 보고 삶이 바뀌었습니다. 흰순이, 흰돌이 입양 안 했으면 지금도 고통스러웠을 거예요.” 퍼스널 트레이너로 일하며 ‘유기동물’이란 단어도 낯설었던 그는 백구 두 마리를 입양하고 2012년부터 본격적으로 유기동물 구호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2012년 말 제일 처음 구조했던 강아지의 이름 ‘팅커벨’을 본떠 유기견의 구조·치료·입양을 전문으로 하는 비영리단체를 만들었는데, 지난 3년간 300여 마리를 입양시켰다. 50평 남짓, 가정집 같은 느낌을 주는 공간엔 강아지 15마리, 고양이 6마리가 머물고 있었다. 한 달 평균 적게는 5마리에서 많게는 10마리가 구조되어 들어온다고 했다.

농림축산식품부_그래픽_동물복지_2014전국반려동물등록현황_2015

팅커벨에선 수용 적정선을 유지하는 걸 가장 중요하게 여긴다. 반드시 입양을 완료한 후에야 다른 유기동물을 구조하고, 구조 또한 회원 30명 이상이 일정 금액을 분담하겠다고 동의해야 이뤄진다. 생명을 구하는 데 동정심뿐 아니라 책임감이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이유다.

황 대표는 “불쌍하다고 다 받으면 오히려 동물들의 삶의 질이 떨어진다”고 했다. 초록 앞치마를 두른 자원봉사자의 수는 모두 6명. 이 단체의 정기 후원자로 한 달에 두 번씩 자원봉사에도 나서고 있다는 엄송희(24)씨는 “입양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점이 맘에 들어 활동하게 됐다”며 “마음 맞는 아이가 생기면 입양도 꼭 하고 싶다”며 웃었다.

올해 초 동화작가 박현숙씨와 함께 청소년 유기동물 교육을 위한 ‘동작대교에 버려진 검둥개 럭키’라는 동화책까지 출간한 황동열 대표. 그는 유기동물이 양산되는 구조를 바꾸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갖은 고생을 해서 어렵게 한 마리를 입양 보냈는데, 유기견 세 마리가 발생해 있으면 큰 절망감이 듭니다. 근본적인 원인은 대규모 번식장이에요. 대규모 애견 번식장의 90% 이상이 무허가로 운영되거든요. 아무런 제재 없이 공장처럼 찍어내죠. 싸게 만들어주니, 책임감 없는 사람들이 분양받고 다시 버리는 ‘악순환’이 되풀이됩니다. 생산만 효율적으로 관리해도 유기동물은 반의 반 이상으로 줄 겁니다.”

명보영 수의사 역시 같은 내용을 지적했다. 명 수의사는 “애완동물 번식·판매업이 발전한 나라일수록, 굉장히 까다로운 기준들을 가지고 있다”며 “현재 국내의 애완동물 번식·판매업은 신고제인데, 관리 기준이 높지 않아 실제 신고한 업체조차 극소수”라고 말했다.

해외의 주요 국가들은 어떨까. 미국에선 8주 이하의 강아지를 판매할 때 수의사의 서면 동의가 있어야 하고, 대만에서는 영리를 목적으로 반려동물의 번식·매매 등을 할 경우에는 관할 시·도에 엄격한 심사를 거쳐 영업허가증을 발급받아야 한다.

애견 문화 선진국인 독일에선 애견 분양숍조차 찾을 수 없다. 국가의 허가를 받은 전문 브리더(breeder·동물 사육자)만이 번식을 시킬 수 있고, 분양 역시 까다로운 절차를 거쳐 진행한다. 출생한 강아지는 곧바로 관리 시스템에 등록된다. 안락사 절차도 까다로우며 도살 처분장도 전국 단 한 곳뿐이다. 대신 버려진 동물에게 새로운 가족을 찾아 주는 동물 보호소 ‘티어하임(Tierheim)’이 전국에 500개 넘게 존재한다. 황동열 대표는 올가을 독일 티어하임 견학을 계획하고 있다.

“제대로 보고 와서 책·영상·웹콘텐츠로 만들어 배포할 예정입니다. 좋은 정책과 제도니까 한국에도 널리 알려야죠. 20년 후쯤 사람과 동물이 조화로이 어울려 살 수 있는 우리나라의 모습을 기대하면서요(웃음).”

최태욱 기자

강연우·정영균·윤해림 청년기자(청세담 3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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