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2일(목)

[더나은미래 논단] 사회적경제기본법, 기본이 가장 중요

더나은미래 논단

이종수 (재)한국사회투자 대표
이종수 (재)한국사회투자 대표

우리 사회의 커다란 문제 중 하나는 기본이 지켜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지난 세월 동안 앞만 보고 달려 오느라 원칙과 기본은 무시되는 대신, 편법과 적당주의가 그 자리를 차지했다. 그래서 배는 가라앉고, 다리와 도로는 무너지고, 사회는 나뉘면서 갈등이 심화되고 서로를 신뢰하지 못한다. 언제라도 무언가 터질 것 같은 불안한 사회이다. 그러다 한 군데서 터지면 서로 손가락질하면서 네 책임이라고 소리지른다. 잘못된 것이 본인 탓이라고 말하는 사람을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다.

국회를 중심으로 ‘사회적경제기본법’이 추진 중이다. 날로 심각해져 가는 양극화와 사회문제로 공동체가 무너지는 가운데 지속 가능한 복지 확대와 사회문제 해결을 위해 국회가 나선 것이다. 사회적경제 개념의 도입은 2007년 제정된 사회적기업육성법과 2012년 제정된 협동조합기본법에 이어, 우리 사회의 취약한 구조를 메워주는 매우 바람직한 움직임이라고 볼 수 있다. 지난해 새누리당에서 앞장서고 이어서 새정치연합과 정의당이 경쟁하듯 뒤따라 유사한 내용의 법안을 발의하였다. 그런데 여당 원내대표가 발의하고 야당이 지원하는 이 법안이 상임위 소위원회도 넘지 못하고 표류하고 있다.

정부도 법안 제정에 그다지 적극적인 것 같지 않다. 다분히 정치적인 동기에서 시작되었고 정치적인 이유로 표류하고 있는 것이다. 전 국민을 포용하지 못하는 자본주의와 경제 시스템에 대한 대안을 만들고, 우리 사회의 취약한 구조를 개선하겠다는 강한 의지와 철학보다는, 정치적인 동기와 고려가 더 앞서기 때문이다. 기본에 충실하지 못한 것이 가져다주는 결과이다.

정치적인 이유로 지연되고 있지만 오히려 잘된 일인지도 모르겠다. 법의 제정이라는 성과에 급급한 나머지 법에 당연히 포함되어야 할 내용을 다양한 측면에서 연구하고 공론화하는 과정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프랑스는 작년에 사회연대경제기본법을 제정했다. 1970년대 후반 도입한 사회적 경제에 대한 국민의 인식이 매우 높고, 국민총생산에서 사회적 경제가 차지하는 비율이 6% 이상 되며, 전체 기업 근로자 중 사회적 경제 기업에서 일하는 근로자가 차지하는 비율이 9%나 되는 나라의 이야기이다. 정부가 바뀌어도 지속적으로 논의한 끝에 이루어낸 성과라고 한다.

아직도 세부 시행령을 만들기 위해 논의 중이다. 너무 느리고 신중하다고 할지 모른다. 하지만 정교한 법과 제도를 만들기 위해 기본에 충실한 선진 사회의 모습이 성과 위주의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 크다. 성급하게 만들기보다는 다양한 이해 당사자들의 의견을 듣고 예상되는 문제점을 보완하여 신중하게 추진할 필요가 있다.

미상_그래픽_사회적경제_책계단_2015

사회적경제기본법의 발의 과정을 지켜보면서, 1999년 탄생한 미소금융의 재판이 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있었다. 미소금융은 휴면예금과 기업의 기부금으로 구성된 재원에 대한 운영을 정부가 주도적으로 하다가 제대로 된 성과를 내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막 태동하려는 민간 마이크로크레디트의 성장을 위축시키는 결과를 초래하기도 했다. 정부가 철학과 기본 없이 성과 중심으로 성급하게 제도를 도입하였기 때문이다. 발의된 사회적경제기본법 내용을 자세히 뜯어보면 사회적경제의 기본이 잘 안 보인다. 조직과 제도와 관리만 강조되어 있을 뿐이다.

지난 10년간 사회적기업과 협동조합에 대한 인식이 확산되고 수많은 사회적기업과 협동조합이 설립되었다. 한국의 사회적경제 분야에 대한 이러한 발전은 중국, 일본을 포함한 많은 국가의 벤치마킹 대상이 되기에까지 이르렀다. 정부의 강력한 추진 의지 덕분이다. 정부와 국회는 실적에 대한 욕심과 미련을 내려두어 생태계를 구축하는 데 정책의 우선순위를 놓아야 한다. 사회적경제는 풀뿌리 경제이다. 민간의 자발적인 참여를 유도하고 민관의 적절한 역할 분담을 통하여 사회적경제를 한 단계 발전시키는 기본에 충실한 법이 필요하다. 사회적경제기본법이 무너진 사회공동체를 회복하고 다양한 사회·환경문제를 해결하는 데 크게 기여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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