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4일(토)

국내 최초 발달장애인 오케스트라 10년, 발달장애인… 무대 위로, 세상 밖으로

9년간 330번 공연, 단원 70% 중증장애인… 25명이 한예종 등 음대 진학
美·中 등 해외공연, 예술의전당 무대도… 단원 자신감 상승, 장애 인식 개선 효과도

“늘 혼자 있는 모습만 봐왔어요. 아이들이 왁자지껄 어울릴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도, 정한이만 다른 방에 숨어있었죠.”

홍정한(25·발달장애2급·플루티스트)씨의 어머니 정은희(54)씨의 말이다. 자폐 성향이 유독 심했던 홍씨가 하트하트오케스트라에 들어온 것은 2007년. 7년간 체득한 ‘하모니’는 홍씨를 세상 밖으로 끌어냈다. 정은희씨는 “가끔 정한이가 ‘오늘 화나는 일이 있었지만 꾹 참았다’는 말을 하는데 들을 때마다 신기하고 감사하다”고 했다. 현재 홍씨는 하트미라콜로앙상블 단원으로 활동하며, 초등학교의 장애 인식 교육 ‘해피스쿨’ 강사로도 나서고 있다.

2006년 창단한 발달장애인 오케스트라 ‘하트하트오케스트라’는 현재 64명의 단원이 활동하고 있는데, 이 중 74%가 15에서 25세 청소년이며, 70%는 중증 발달장애를 앓고 있다. /하트하트재단 제공
2006년 창단한 발달장애인 오케스트라 ‘하트하트오케스트라’는 현재 64명의 단원이 활동하고 있는데, 이 중 74%가 15에서 25세 청소년이며, 70%는 중증 발달장애를 앓고 있다. /하트하트재단 제공

“15년 전, 정한이가 유치원이나 학교에 갈 때면 제가 교사·학생들을 일일이 만났죠. 아이 상태를 말해주고, ‘다르지 않다’고 읍소했어요. 이제 정한이가 직접 학교를 찾아가 연주하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그 감동은 말로 다 할 수 없어요.”

하트하트오케스트라가 만든 기적이다. 하트하트재단(이사장 신인숙)은 지난 2006년 멤버 전원이 발달장애인들로 구성된 ‘하트하트오케스트라’를 발족하며, 이 모델을 처음 세상에 알렸다. 최근 우후죽순 탄생하고 있는 장애인 오케스트라의 선도적인 역할을 한 셈이다.

지난달에는 오케스트라 탄생 10주년을 기념해 지금까지의 활동을 집대성한 연구 보고서를 발표했다. 이번 연구의 총책임자인 김미옥 전북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이번 연구는 오케스트라의 성과를 객관적으로 분석하고, 앞으로 나아갈 바를 짚어보는 자료로서 가치가 있다”고 했다. 지난해 4월 시작된 연구는 국내 문헌조사를 시작으로, 오케스트라 사업 현황 분석, 단원·학부모·관객들을 대상으로 한 일대일 설문 조사, 부양 가족과 음악 강사에 대한 ‘초점집단인터뷰(FGI)’ 등의 과정을 거쳤다. 김 교수는 “발달장애인과 소통이 원활치 못하기 때문에, ‘포토보이스(Photovoice·사진을 통해 감정을 표현하는 연구 기법)’를 활용하기도 했는데, 단원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해 기대 이상 효과를 보았다”고 했다. 하트하트오케스트라에서는 현재 단원 64명이 활동 중이며, 한 해 평균 30회 정도 공연 일정을 소화한다.

미상_그래픽_장애인_오케스트라활동을통한단원의변화_2015

◇330번의 감동, 하트하트오케스트라 10년의 기록

하트하트오케스트라는 ‘윈드오케스트라(관악기와 타악기만으로 이뤄진 구성)’로 출발했다. 창단 첫해 발달장애인 14명과 함께 2번의 무대를 꾸몄던 오케스트라는 이후 양적·질적 성장을 거듭했다. 재단 담당자는 2명에서 6명으로, 악기 강사는 3명에서 17명으로 늘었고, 전담 부서(문화복지사업부)까지 생겼다. 이런 노력은 현악기, 목관악기, 금관악기, 타악기 등으로 구성된 ‘심포니 오케스트라(교향악을 연주하는 대규모 관현악단)’ 탄생이란 결실로 이어졌다. 단원의 74%가 15세에서 25세 청소년이며, 70%가 중증 발달장애를 가지고 있다. 지금까지 단원 25명이 삼육대, 나사렛대, 숭실대, 백석예술대 등 국내 대학 음악 관련 학과에 진학했는데, 특히 2012년 김동균 단원(플루티스트), 이듬해 이영수 단원(플루티스트), 그리고 작년에는 이한결 단원(트럼페터)이 한국예술종합학교에 입학하기도 했다. 이뿐 아니라 2013년 전국학생음악콩쿠르, 19회 한음음악콩쿠르 등 국내 유수 음악 콩쿠르에서 입상한 횟수도 64회에 이른다.

하트하트오케스트라는 9차례 진행됐던 정기 연주회를 포함, 지금까지 총 330번의 무대를 꾸몄다. 미국(LA·시카고, 2008), 중국(상하이·칭다오·베이징, 2010) 등 해외 초청 공연도 여러 차례 가졌으며, 유엔 아시아·태평양 경제사회위원회(UNESCAP) 정부 간 고위급 회의, 평창 동계스페셜올림픽 등에서 기념 공연을 진행하기도 했다. 서울시립교향악단, 카라카스 유스 오케스트라 등과 합동 연주회도 있었다. 특히 지난 2013년부터는 최정상 클래식 연주자만이 선다는 예술의전당 무대에서 관객들을 만나고 있다.

사업 영역도 넓어졌다. 하트하트오케스트라 외에도, 발달장애 아동들을 대상으로 기초 음악 교육을 제공하는 ‘하트뮤직아카데미’와 직업인으로 성장할 수 있는 ‘전문 음악 인재 육성 프로그램’ 등도 진행하고 있다.

미상_그래픽_장애인_자녀의오케스트라활동이후부모및가족의변화_2015

◇자존감·사회성 훌쩍 커지고, 장애 인식 개선 효과까지… 오케스트라가 만든 변화는?

이번 연구에서 오케스트라 단원들의 심리·행동상의 긍정적인 변화 여부를 3점 척도로 평가한 결과, 단원들의 평균은 2.71점으로 나타났다. 특히 자신감 증가(2.87점), 집중력 향상(2.87점) 등의 항목에서 좋은 평가를 받았다. 부모의 만족도도 3.3점(4점 만점)으로 높았다. 장애 인식 개선에도 효과적이었다. 지난해 11월, 하트하트오케스트라 공연이 이루어진 고등학교의 학생 153명을 대상으로 공연 후 인식 변화를 물었는데, 응답자의 84%가 ‘장애인에 대한 생각이 바뀌었다’고 답했다. 지난 2008년부터 하트하트오케스트라에서 활동하고 있는 김다빈(22·자폐성장애 3급·첼리스트)씨의 어머니 유항숙(52)씨는 “지인과 친척들도 예전보다 다빈이를 더 이해하고 격려해주면서 가족들의 시름이 많이 줄었다”고 했다. ‘포토보이스’를 통해선 단원들의 음악적 열정을 엿볼 수 있다. 단원들이 자신을 표현하고 싶은 사진을 고른 후 설명하게 했는데, 무지개 사진을 선택한 단원이 “화합과 하모니가 좋아야 멋지다”고 말하기도 했다.

◇세 가지 성공 비결은 특수성·전문성·지속성

김미옥 교수는 “고도화된 음악적 기술과 반복적인 연습, 여기에 소통과 조화까지 필요한 오케스트라는 발달장애인에게 굉장히 어려운 콘텐츠”라고 했다. 이 같은 악조건을 딛고 하트하트오케스트라가 오랜 세월 성공적으로 운영되는 비결은 무엇일까. 먼저 지속성이다. 하트하트오케스트라 창단 이전에도 발달장애인을 대상으로 하는 음악 지원 활동은 있었다. 음악 캠프나 악기 교육 같은 것이다. 하지만 주로 1~2년 정도 단기 투자를 통해 다수에게 혜택을 주는 방식이었다. 김 교수는 “같은 대상을 10년 가까이 지원하는 것은 매우 차별화된 전략으로, 하트하트오케스트라의 성공 비결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전문성 확보도 중요하다. 국내의 우수한 교수진·음악감독·연주자 등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며 키워온 음악적 역량은 오케스트라 활동의 질을 높였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운영 주체가 가진 미션이나 전략과 맞아야 한다”는 것. 하트하트오케스트라 창단 당시, 발달장애인에 대한 지원은 대부분 생계·주거 등에 집중돼 있었다. 김미옥 교수는 “오케스트라는 많은 시간과 돈, 애정을 투입해야 하기 때문에 민간이 나서서 10년 동안 이어온 것은 정말 쉽지 않은 일”이라며 “발달장애인 단원들이 직업인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정책적인 지원이 뒷받침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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