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6일(월)

예술이 어렵다고요? 우리가 문턱 낮추겠습니다

예술가 후원하는 사회적기업 대표 3인… 순수미술과 대중의 거리를 좁히다

안테나… 지역 예술가와 주민 소통
㈜스플… 설치미술을 일상 속으로
에이컴퍼니… 예술가 작품 유통 지원

국내 미술시장 규모는 약 3249억원이다(예술경영지원센터, 2014년 미술시장실태조사). 화랑 4곳 중 1곳(26.2%)이 1년간 단 한 작품도 판매하지 못했다. 경직된 국내 미술시장에 새 숨결을 불어넣고, 예술과 대중 사이에 교감 기회를 주기 위해 밤낮으로 고민하는 사회적기업이 있다. 지역의 문제를 예술가들과 함께 풀어가는 나태흠(39) ‘안테나’ 대표, 설치미술을 활용해 공간 디자인 사업을 펼치는 심소라(39) ‘㈜스플’ 대표, 공정유통 시스템 구축으로 예술가들의 작품 활동을 지원하는 정지연(38) ‘에이컴퍼니’ 대표가 그들이다. 예술의 새로운 가능성을 찾는 이들 3인이 한자리에 모였다.

① 박정용 作〈키스〉116.8×91cm, 캔버스에 유채, 2014. /에이컴퍼니 제공. ② 임시호 作〈memoP〉50×72cm, 캔버스에 유채, 2014. /안테나 제공. ③ 심소라·윤수민·윤보라 作〈버려진 컴퓨터와 설치미술이 만나다_UP-cycle Media Art Tree〉200×300×90cm, 폐전자부품 재생, 2014. /㈜스플 제공.
① 박정용 作〈키스〉116.8×91cm, 캔버스에 유채, 2014. /에이컴퍼니 제공. ② 임시호 作〈memoP〉50×72cm, 캔버스에 유채, 2014. /안테나 제공. ③ 심소라·윤수민·윤보라 作〈버려진 컴퓨터와 설치미술이 만나다_UP-cycle Media Art Tree〉200×300×90cm, 폐전자부품 재생, 2014. /㈜스플 제공.

사회=세 곳 모두 ‘순수예술’을 다루는 ‘사회적기업’이라는 정체성을 갖고 있다. 각 기업이 느끼는 국내 예술계의 문제점은 무엇인가. 어떤 미션을 가지고 비즈니스를 시작했는지 들려달라.

정지연(이하 정)=국내 미술 전공자 대부분은 입시 미술 강사가 된다. 아르바이트 급료로 작품 활동을 하는 등 별도 생계 수단을 마련하고 재능을 취미로 삼는 경우도 많다. 작가층은 점점 좁아지고 미술관들도 해외 작품 대관전을 주로 하게 됐다. 젊은 예술가들의 작품 활동을 지원하기 위해 새로운 미술 시장을 어떻게 만들어낼지 고민한 결과, 2011년 작품 유통과 예술 기획을 전문으로 하는 사회적기업 ‘에이컴퍼니(http://www.acompany.asia) ‘를 만들게 됐다.

심소라(이하 심)=나 역시 설치미술 작가로 10년 이상 활동하며 후배들이 다른 일로 돈 벌어 작품 만들고, 또다시 돈을 들여 작품을 폐기하는 과정을 지켜봐 왔다. ‘어떻게 하면 작품 활동이 비즈니스가 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이 생겼고, 그 답으로 2012년 설치미술에 공간 디자인을 접목한 사회적기업 ‘스플(www.sp-se.com) ‘을 설립했다. 3명의 설치미술 작가와 디렉터 한 명이 고정 인력으로 근무하고 있으며 현재까지 직·간접적으로 12명의 작가가 스플을 통해 작품 활동을 펼쳤다.

나태흠(이하 나)=2007년 설립된 ‘안테나(www.ant3na.com) ‘는 IT 기반 디자인을 전문으로 하다 6년 전 문래동으로 이전했다. 문래창작촌에는 100여 개의 작업실, 250명의 작가가 있다. 이들과 소통하면서 지역 아티스트와 커뮤니티 간의 교류 부재, 기록에 남지 못한 문래동 예술의 역사 등 여러 문제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지역의 과제를 해결하려면 예술가의 역량이 필요하다’는 평소 지론대로 동네 아티스트들과 함께 ‘오지랖’을 떨다 보니 2012년 예비사회적기업 지정까지 받게 됐다.

사회=아직까지도 많은 대중이 순수예술에 심리적 거리감을 느끼고 있다. 공공의 가치를 창출해야 하는 사회적기업으로서 대중과 소통하는 창구를 넓히려는 노력이 필요해 보이는데.

“예술은 우리 삶을 행복하게 만드는 원동력이죠” (사진 왼쪽부터) 심소라 ㈜스플 대표, 나태흠 안테나 대표, 정지연 에이컴퍼니 대표.
“예술은 우리 삶을 행복하게 만드는 원동력이죠” (사진 왼쪽부터) 심소라 ㈜스플 대표, 나태흠 안테나 대표, 정지연 에이컴퍼니 대표.

=안테나는 2011년부터 문래동 예술가들을 기록한 잡지 ‘문래동네’를 발간해 전국에 배포하고 있다. 매달 셋째 주 토요일에는 문래역 7번 출구부터 동네 곳곳으로 이어지는 부스를 설치해 창작촌 작가들의 작품을 판매하는 ‘헬로우문래’를 주최한다. 일반 시민들이 창작촌 작가 작업실에서 영화도 관람하고 이야기도 나눌 수 있는 1일 영화축제 ‘인디필름데이’도 6년째 진행 중이다.

=인왕시장 내 상가에서 2013년부터 2년간 운영했던 스플의 오픈 갤러리는 신진 작가들에게 작품 전시 기회를 주고, 시장 상인과 주민들이 예술을 좀 더 가까이서 접할 수 있도록 한 공간이다. 다양한 프로젝트를 했는데, 4개월간 시장 상인과 시민 170여 명이 종이컵에 쓴 메시지를 설치한 ‘인왕시장 이야기 나누기’가 대표적이다. 선유도 공원에서 진행한 국방부의 정전 60주년 기념 전시 디자인은 작품을 설치하는 과정을 시민들에게 공개해 좋은 반응을 얻었다.

=지난해 한남동 블루스퀘어에서 진행한 ‘제2회 브리즈아트페어’에서 관람객들은 맥주를 마시며 밤늦게까지 축제 현장에 상주하는 작가들과 이야기를 나눴다. 그 결과 유료 관람객 2000명, 공개 선발 작가 50명이 만나 3일 만에 84점의 작품을 주고받았다. 이 페어에서 류수인 작가는 태어나 처음으로 자기 작품을 팔았다. 그림을 산 강민정씨 역시 난생처음 작품을 구매했다. 거래가 성사되자 주변 관람객과 작가들이 박수를 쳐주는 진풍경도 연출됐다. 이날 30명이 넘는 시민이 생애 첫 그림을 샀고, 4명의 신진 작가가 자신의 작품을 판매했다. 브리즈아트페어가 미술계 안에서 그치지 않고 부산국제영화제처럼 더 많은 대중과 소통하고 싶어 하는 이유다.

사회=비즈니스 모델 개발과 예술가 지원, 그 사이를 잇는 대중과의 소통까지 세 마리 토끼를 쫓아야 한다. 세 기업이 나아갈 길이 궁금하다.

=얼마 전 순환자원유통지원센터와 협약을 맺고 인쇄 포스터를 활용해 봉투를 제작하는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었다. 커피 자루나 현수막 안감 등을 활용한 디자인 제품도 개발했다. 예술가가 지역 커뮤니티 내의 문제를 해결하며 자립할 수 있는 공생 모델을 만드는 것이 안테나의 할 일이라 생각한다. 지역의 문제를 디자인적 사고로 해결해나가는 ‘지역커뮤니티활성화 툴킷’도 고안했다. 올해 세운상가에서 이 툴킷을 활용한 첫 번째 프로젝트가 시작될 예정이다.

=미술관은 일찍 문을 닫고, 갤러리 문턱은 높고, 작품 가격은 물어볼 엄두가 잘 나지 않는다. 그래서 이달 22일 이화동에서 재개관한 게스트하우스 ‘미나리하우스’는 예술에 대한 심리적 장벽을 허물었다. 1층 카페에서는 브리즈아트페어 수상 작가인 박정용·이홍한의 작품을 시작으로 다양한 작품을 밤 10시까지 편안하게 관람하며 구매할 수 있다. 아트컴퍼니와 계약을 한 작가 20여 명의 포트폴리오 북이 전시되며 올해 안에 작가 100명의 포트폴리오를 확보할 예정이다. 6개월 단위로 무상 제공하는 레지던시 입주 작가의 창작 과정도 볼 수 있다. 작품 보증서 발급, 신진 작가 아카이빙 구축 등 공정한 작품 거래 시스템도 꾸준히 보완하고 싶다.

=스플의 가장 큰 목표 중 하나는 대중에게 순수공간예술을 알리는 것이다. 예전엔 ‘우린 인테리어가 아니야’라고 말했지만 지금은 설치미술이 공간 인테리어로서 대중에게 소비되는 일도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설치미술에 대한 인식이 널리 퍼지려면 무엇보다 직접경험이 중요하다. 올해는 서울문화재단 꿈다락 토요문화학교 중 ‘설치미술 작가들과 함께하는 예술놀이터’라는 이름으로 청소년들이 직접 작가들의 작품 활동 과정을 체험해보는 공공 설치미술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중1~고1 청소년 누구나 참여할 수 있으며 기수별로 20명씩 총 3기의 체험 프로그램이 7개월에 걸쳐 진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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