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8일(수)

‘세살 봉사’ 여든까지… 잘할 수 있는 것에서 시작하라

자원봉사 자발성·만족도 높이려면
청소년, 적성과 봉사 연결해 동기 부여… 부모는 아이템 정하도록 ‘코칭맘’ 역할
베이비붐 세대는 재능기부로 참여

“참여율·만족도 둘 다 높이려면 새 모델 계속 개발해 봉사의 질 향상”

3억9248시간. 지난 한 해 국내 자원봉사자의 활동 시간이다. 15년 전인 1999년(4억9892만 시간)보다도 적다. 3년 전의 8억3455만 시간과 비교했을 땐 반 토막이 났다. 자원봉사 참여율도 22.5%로 10년째 정체기다. 참여율뿐만 아니다. 자원봉사자의 만족도가 12년 만에 최저 수준으로 나타났다. ‘내가 원해서 시작한 것이 아니었다’며 자원봉사 불만족을 나타낸 이가 2002년 11.5%에서 2014년 40%로 2배 이상 늘었다. 지난 12월, 행정자치부에서 일반인 15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자원봉사 활동 실태 조사가 발표되자 자원봉사계가 술렁이고 있다. 자원봉사의 두 축인 ‘참여율’과 ‘만족도’가 곤두박질쳤기 때문. 더 늦기 전에 자원봉사 프로그램의 질과 담당자들의 역량을 높여야 한다는 자성 목소리가 이어지고 있다. 자원봉사 문화를 확산하려면 어떤 변화와 노력이 필요할까. ‘더나은미래’는 한국자원봉사문화의 도움을 받아 자원봉사의 자발성과 만족도가 높은 현장을 찾아가 봤다.

⃝청소년 연합동아리‘타’의 봉산탈춤 연습 현장. 국악에 흥미를 가진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모인 동아리‘타’ 학생들은 10년째 재능기부 공연을 이어가고 있다.
⃝청소년 연합동아리‘타’의 봉산탈춤 연습 현장. 국악에 흥미를 가진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모인 동아리‘타’ 학생들은 10년째 재능기부 공연을 이어가고 있다.

◇내신·스펙 쌓기에 지친 청소년… ‘코칭맘’ 만나 프로젝트 리더로

“요즘 중·고등학생들의 자원봉사 만족도가 너무 낮아요. 봉사 시간을 채우려고 기관에 방문하면, 기계적으로 청소·배달 등 시키는 일만 하니 재미를 느끼기 어렵죠. 청소년들이 우리 지역의 문제를 함께 이야기하면서 자발적으로 자원봉사할 수 있도록 만들었습니다.”

서영주 과천시 자원봉사센터 코칭맘이 ‘코칭 청소년 봉사단 프로젝트’를 소개했다. 1년간 최소 10회 이상 자원봉사를 직접 기획·활동할 청소년 50명만 선발하고, 70% 이상 참여해야만 수료증을 받을 수 있는데도 매년 100명 이상 신청자가 몰린다. 비결은 ‘코칭맘’에 있다. 한국자원봉사문화는 청소년 봉사단을 도와줄 학부모들을 10명 남짓 선발, 12회에 걸쳐 자원봉사 리더 교육을 진행하고 이들을 ‘코칭맘’으로 임명한다. 이들의 역할은 철저히 서포트에 그친다.

작은 도서관 독서상자 만들기 자원봉사(왼쪽) / 학생들이 독거노인 어르신들이 시원한 여름철을 보낼 수 있도록 부채를 만들고 있다.
작은 도서관 독서상자 만들기 자원봉사(왼쪽) / 학생들이 독거노인 어르신들이 시원한 여름철을 보낼 수 있도록 부채를 만들고 있다.
따뜻한 목도리를 직접 만들어 어르신들께 선물하는 학생들.
따뜻한 목도리를 직접 만들어 어르신들께 선물하는 학생들.

“가장 중요한 건 ‘티칭(teaching)’이 아니라 ‘코칭(coaching)’입니다. 봉사 아이템을 정하지 못한 채 한 학기를 보내도 기다려주고, 아이들이 그 과정을 충분히 즐길 수 있게 합니다. 코칭맘끼리 ‘부회장이 이듬해 회장을 맡는다’는 등 회칙을 마련해 매년 지속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었고요.” 손희경 과천시 자원봉사센터 코칭맘 회장의 설명이다. 벌써 4~5년에 걸쳐 코칭맘을 지속해온 학부모도 많다.

자발적인 활동이다 보니, 수료한 후에도 학생들의 봉사는 이어지고 있다. 김지혜(과천외고 3년)양은 1년간 코칭 청소년 봉사단에서 학습 멘토링 봉사를 함께 기획·진행한 팀원들과 함께 연합 동아리를 만들었다. 과천시 내에 뜻을 함께하는 청소년들을 동아리 멤버로 선발하고, 벌써 4년째 학습 멘토링을 지속하고 있다. 김양은 “예전에 학교에서 했던 봉사활동은 ‘시간 채우기’ 같아 흥미를 느끼지 못했는데, 이곳에선 서로 다니는 학교도, 나이도 다른 친구 8명이 1년간 함께 머리를 맞대면서 지역에 또 다른 형제 자매가 생긴 느낌”이라고 말했다.

코칭 청소년 봉사단이 소문을 타자, 삼성전자·복지기관 등에서 ‘자발적으로 청소년들을 봉사하게 만든 노하우를 전수해달라’며 코칭맘들에게 강의 요청이 쇄도했다. 지난해엔 경기도 우수 자원봉사 지원 사례로 뽑혀 상금 1500만원을 받기도 했다. 코칭맘들은 이렇게 받은 외부 강의료를 학생들의 자원봉사 활동을 위해 기부하고 있다.

미상_그래픽_봉사_자원봉사설문_2015

◇자원봉사 ‘블루오션’은 베이비부머… 세대 통합형 모델 떠오른다

“우연히 시작한 자원봉사 경력이 동화 구연 강사로 이어졌네요.”

박순옥(62)씨가 눈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2000년 장애인복지관을 찾아가 목소리 기부를 시작한 게 인연이 됐다. 시각장애인을 위해 책을 읽고 녹음하는 봉사만 벌써 10년째. 그 뒤론 지역 아동센터, 다문화가족지원센터 등을 방문해 동화를 읽어주고 한국말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지난해, 그녀는 10대 청소년들 앞에 강사로 섰다. 연예인을 꿈꾸는 아이들에게 발성법을 가르치고, 진로 체험을 위해 함께 연예 기획사를 방문하는 재능 기부였다. 반응은 뜨거웠다. 기획사에서 직접 드라마 대본을 받아 청소년들과 함께 읽어보던 중, 15년간 자연스레 지속해온 박씨의 자원봉사 이야기가 전해졌다. 60여년간 담아둔 그녀의 히스토리가 ‘사람책’으로 재탄생한 순간이다.

‘사람책(리빙라이브러리)’은 한국자원봉사문화가 지난해부터 시작한 베이비부머 재능 기부 프로젝트다. 베이비부머 총 10명이 사람책으로 나서 ’30년 직장 생활의 노하우’ ‘평범한 주부가 봉사하다 모델 된 사연’ ‘캘리그래피(손글씨) 이야기’ 등 자신의 이야기를 나눈다. 초·중학교, 요양원, 복지관 등을 직접 방문해 소그룹 나눔 형태로 진행된다. 20년간 다니던 직장을 은퇴한 뒤 자살 예방 전문가로 활동 중인 이철주(56)씨는 초등학생들 사이에서 인기 교사다. 이씨는 “아이들에게 꿈을 물으면 대부분 디자이너·과학자 등 추상적으로만 답하는데, 자동차·냉장고·비행기 등 디자이너의 역할이 다양하다는 것을 알려주고, 지금부터 어떻게 조금씩 준비하면 좋을지 같이 이야기를 나눈다”고 설명했다.

국내 베이비부머 수는 총 710만명. 반면, 50~60대 자원봉사 참여율은 2011년 45.2%에서 40.6%으로 감소했다. 전문가들은 “다양한 경험과 노하우를 갖춘 베이비부머가 재능 기부에 적극 참여한다면, 청소년, 청년과 연계한 다양한 윈윈(win-win) 전략이 나올 수 있다”고 분석한다. 실제로 베이비부머가 청소년 진로 체험을 기획·진행하는 재능 기부 사업이 기대를 모으고 있다. 진로 탐색을 위한 중학교 자율학기제가 2016년 전면 시행되면서, 지난해 개소한 전국 진로직업체험지원센터에 우수 인력이 필요한 상황. 이에 지난해 말, 교육부·한국직업능력개발원·진로직업체험센터는 베이비부머 23명을 ‘진로 체험 코디네이터’로 선발했다. 베이비부머는 청소년 진로 체험처를 발굴하고, 소그룹 청소년 진로 특강 및 멘토 역할을 맡았다. 이태현 금천구 진로직업체험지원센터 주무관은 “대기업 부사장으로 은퇴하신 한 분은 네트워크를 동원해 2주 만에 청소년 진로 체험 일터를 8곳을 발굴해주셨고, IT 회사에 다니던 분은 홀랜드(Holland) 자격증을 갖고 계셔서 청소년들에게 직업흥미검사와 상담을 진행해주셨다”면서 “청소년과 베이비부머 모두 5점 만점에 평균 4.2점을 기록할 정도로 만족도가 높았다”고 전했다.

정희선 한국자원봉사문화 사무총장은 “일반인의 60% 이상이 대학 입시·졸업·직장 내 봉사활동 의무화를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난 것을 보면, 대다수가 ‘자원봉사를 해야 한다’는 생각이 있지만 막상 봉사를 하러 가면 프로그램 질과 담당자 역량 부족으로 만족도가 떨어진다는 것을 나타낸다”면서 “청소년, 가족, 베이비부머의 자원봉사 참여율과 만족도를 높이는 새로운 모델이 계속 개발돼야 한다”고 말했다.

정유진 기자

강미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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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61호 2024.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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