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2월 14일(토)

[로컬 패러다임] 로컬을 위한 금융

양경준 크립톤 대표
양경준 크립톤 대표

벤처 투자는 ‘로컬’에도 적용될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답하려면 벤처 투자의 속성부터 알아야 한다. 벤처 투자는 리스크가 커서 은행과 같은 전통 금융에서는 도저히 지원을 받을 수 없는 경우에 투자하는 걸 말한다. 왜 리스크가 크다고 할까. 첫째, 리스크를 측정하려면 뭐라도 측정할 근거가 있어야 하는데 대부분 신생 회사다 보니 업력도 없고 매출도 없다. 게다가 상당수의 창업자가 사회 경력이 없거나 경력이 있다 하더라도 불과 몇 년에 불과하다. 둘째, 아무도 해보지 않은 사업모델이거나 누가 먼저 시작했더라도 아직 검증이 됐다고 하기엔 이르다. 리스크가 큰 정도가 아니라 측정 불가능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래서 벤처투자의 속성을 ‘고위험, 고수익(High Risk, High Return)’이라고 하고 벤처투자자들이 ‘사람을 보고 투자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실사람의 됨됨이만 보고 투자하는 건 아니다. 벤처투자자들이 반드시 보는 지표가 있다. 바로 성장성과 수익성이다. 매출 또는 기업가치가 빠르게 (거의 기하급수적으로) 성장해야 하고 수익성도 커야 한다. 이 두 지표는 시기에 따라 비중이 다른데 시장이 너그러울 때는, 다시 말해 유동성이 풍부할 때는 당장 수익이 나지 않아도 성장성이 큰 기업을 선호하고 시장이 어려워지면 성장성보다도 수익성에 더 무게를 둔다. 그러나 벤처 투자는 둘 중 어느 하나도 포기하지 않는다. 다시 말해 두 가지를 다 충족시키지 못하면 벤처 투자자들의 관심을 받을 수 없다.

그럼 이 기준을 로컬에 적용해보자. 로컬을 비수도권에 위치한 스타트업이 아니라 로컬 아이덴티티를 사업화한 스타트업이라고 한다면, 일단 성장성부터 걸린다. 여기서 스타트업은 초기 창업기업의 통칭으로 사용한다. 도시의 크기는 도시민의 삶의 속도, 심지어 걷는 속도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이론 물리학자 제프리 웨스트는 그의 저서 ‘스케일’에서 사람들의 걷는 속도가 도시 크기에 비례하여 거듭 제곱 법칙에 따라 빨라진다고 말하고 있다. 주민이 수 천 명에 불과한 소도시에서 100만 명이 넘는 도시로 가면 평균 보행 속도가 시간당 무려 6.5km로 거의 2배 빨라진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로컬은 대도시에 비해 상대적으로 느리게 움직인다. 스타트업이 말하는 혁신은 어쩌면 대도시에서나 적합한 용어일지도 모른다. 로컬에서 빠른 성장이란 어불성설일 수도 있다는 얘기다.

로컬에서는 성장하더라도 느리게 성장한다. 벤처 투자자의 관심을 받기 어려울 정도로 느리게. 수익성은 어떨까. 일반적인 스타트업에서는 성장을 위해 수익을 포기하는 경우도 많지만 로컬에서는 손익분기점에 도달할 정도의 매출이 나오지 않기 때문에 수익성에 대해서도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없다. 결론적으로, 로컬은 전형적인 벤처 투자에는 적합하지 않다. 이미 벤처투자자의 투자를 받은 로컬 스타트업들도 이런 기준 때문에 이미 딜레마를 겪고 있거나 머지않아 딜레마를 겪게 될 것이다. 그런데 그렇기 때문에 본질적인 의미에서 로컬은 벤처가 맞다. 왜? 리스크가 크기 때문이다. 다만 추구하는 가치가 다르다. 성공을 추구한다는 측면에서 모든 창업은 같지만 전형적인 벤처창업이 고성장을 추구한다면 로컬 벤처창업은 성장보다는 자아실현, 지역재생 등의 가치를 추구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다시 말해 벤처는 맞는데 전형적인 벤처투자에는 맞지 않다는 얘기가 된다. 그렇기 때문에 로컬 벤처에 특화된 별도의 금융이 필요하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투자를 안 하면 될 것 아니냐고 할 수도 있지만 그러기에는 로컬의 가치가 너무 크다. 개인의 가치를 넘어서 로컬은 인구소멸과 지역재생의 현실적인 최선의 대안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로럴 벤처금융의 공급 주체는 누가 돼야 할까. 추구하는 가치 대비 성장성, 수익성을 담보할 수 없으니 초반에는 공공 금융이 역할을 해야한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왜냐하면 적어도 공공은 대한민국에서 지속가능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그렇기 떄문에 민간에서도 로컬 금융이 움직여야 하는데 민간에서는 이변이 없는 한 수익성을 포기할 수 없다. 따라서 로컬에서도 스케일업이 가능한 사례가 나와야 한다. 글로벌 사례에서 알 수 있듯, 비전과 경영마인드만 있다면 로컬도 얼마든지 스케일업이 가능하다. 결론적으로 로컬 벤처금융은 씨드 단계에서는 공공이, 스케일업 단계에서는 민간이 움직이는 투 트랙 구조가 만들어져야 한다.

양경준 크립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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