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2월 14일(토)

[로컬 패러다임] 라이콘을 말한다

양경준 크립톤 대표
양경준 크립톤 대표

“유니콘은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시작됐지만, 라이콘은 대한민국에서 시작해 세계로 가게 하겠다.” 지난 10월 6일 열린 ‘라이콘 육성 파이널 피칭대회’에서 중소벤처기업부 이영 장관이 한 말이다. 라이콘(LICORN)은 이번 정부가 만들어낸 용어로 라이프스타일(Lifestyle)·로컬(Local)과 유니콘(Unicorn)의 합성어다. 유니콘은 1조원 이상의 기업가치를 인정받는 비상장 스타트업을 지칭하는 표현으로 라이프스타일과 로컬 영역에서도 큰 기업가치를 인정받는 기업을 배출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이다. 정부의 이 선언에는 몇 가지 의미가 담겨있다고 할 수 있다.

첫째, 지금까지 이 분야에서는 큰 기업가치를 인정받는 기업이 없었다는 뜻이다. 적어도 국내에서는 말이다. 왜 없었을까. 이 분야 창업은 꾸준히 있어왔는데 말이다. 큰 기업가치를 인정받으려면 성장성과 수익성이 담보돼야 한다. 여기서 성장성은 시간과 속도의 함수다. 더 짧은 시간에 더 가파르게 성장할 수 있어야 더 큰 가치를 인정받는다. 그리고 자본은 절대적으로가 아니라 상대적으로 움직인다. 쉽게 말하면, 투자금의 총액은 한정적이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더 짧은 시간에, 상대적으로 더 가파르게 성장할 수 있어야 더 큰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21세기는 IT가 성장을 주도하는 시대다. 소규모의 IT 엘리트들이 노트북 앞에 앉아서 단기간에 앱을 개발하고 단기간에 수십만, 수백만명의 사용자를 모은다. 제품과 서비스를 한 땀 한 땀 만들어내야 하는 라이프스타일·로컬 창업이 그들과 성장을 겨뤄 이길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러니 기업가치를 키우는 것은 난제다.  

둘째, 하지만 가능하다는 뜻이다. 분명한 증거가 있다. 전세계 60개 이상의 국가에서 2만3000개 이상의 매장을 운영하고 있는 스타벅스는 커피를 좋아하던 영어교사 제리 볼드윈, 역사교사 제프 시글, 작가 고든 보커가 모여 1971년 미국 시애틀의 한 수산시장에서 창업했다. 50여 년이 지난 지금 스타벅스의 기업가치는 1000억 달러가 넘는다. 전세계 90여 개 국가에서 3000개 이상의 매장을 운영하고 있는 화장품 기업 록시땅(L’occitane)은 1976년 프랑스 남부 프로방스에서 올리비에 바우산에 의해 설립됐다. 시어버터, 라벤더 등 자연 유래 성분 화장품으로 유명한 이 회사의 시작은 작은 마을 장터에서 로즈마리 에센셜 오일을 판매하는 것이었다. 아일랜드 더블린의 동네 양조장으로 출발한 기네스, 덴마크 시골 동네 빌룬에서 나무 장난감을 만들어 팔기 시작한 레고도 세계적인 기업이 됐다. 대한민국에 있었다면 이들은 ‘로컬 크리에이터’로 불렸을 것이다.

셋째, 그동안 육성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국내에 SPC그룹 등 스케일업 사례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극소수에 불과한 이유는 다른 산업 대비 이 분야 육성이 힘을 받지 못했다는 뜻이다. 가장 큰 이유는 박정희 정부가 경공업에서 수출을 주목적으로 하는 중화학공업으로 산업 육성의 방향을 전환한 데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다음의 국가 성장동력은 IT 산업이었다. 그런데 왜 지금 라이콘을 육성하겠다고 하는 것일까. 이유는 자명하다. 산업혁명이 제공하던 편리함의 시대가 가고 자아실현을 추구하는 라이프스타일 시대가 도래했기 때문이다. 인공지능(AI)과 로봇으로 대표되는 기술혁신은 끝을 모르고 계속될 것이다. 그러나 그만큼 인간의 존엄성과 자아실현 욕구도 극대화될 것이다. 따라서 라이프스타일과 로컬 분야가 주목을 받기 시작했고 본격적인 성장궤도 초입에 진입했다고 할 수 있다.

변화하는 인간의 욕구에 가장 빠르게 반응하는 주체가 창업가와 투자자다. 이 분야 창업가는 갈수록 증가할 것이고 창업가의 퀄리티는 올라갈 것이며 스케일업에 성공하는 사례도 점점 늘어날 것이다. 성장하는 시장에서 성장하는 창업가와 기업을 발굴하려는 투자자도 당연히 늘어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지금이 중요하다. 그렇기 때문에 중소벤처기업부의 라이콘 육성 정책과 의지를 환영한다. 한류가 대한민국의 성장동력으로 자리잡아가는 지금이 적기다. 다만 주의할 점은 앞서 언급한 사례들이 말해주듯 라이콘은 유니콘만큼 빠르게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라이콘에게는 유니콘보다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정책이 그 시간을 기다려주지 못하고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정책이 바뀐다면 라이콘은 환상에 그칠 것이다.

양경준 크립톤 대표

관련 기사

Copyrights ⓒ 더나은미래 & futurechosun.com

전체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