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3일(화)

[기차에서 일합니다] 로컬 브랜딩의 그늘

정유미 포포포 대표
정유미 포포포 대표

“플레이어가 없다.” 지역에서 무언가를 시작할 때 입 모아 얘기하는 것은 인프라의 부족이다. 일할 사람과 자원을 연계할 구심점을 찾아 헤매는 사이 기획 부동산은 빠른 속도로 ‘0리단길’을 만들어 원주민을 밀어낸다. 팬시한 카페가 늘어선 관광지는 본연의 매력 대신 도시의 위용을 닮아간다. 자연스레 원도심의 할렘화에도 가속도가 붙는다. 지역의 국립대학과 강소대학도 베드타운으로 기능하기는 마찬가지. 이쯤 되면 외지인에 대한 경계와 텃세가 십분 이해된다. 물론 지역에 정착하기까지 인식의 차이도 걸림돌로 작용한다. 한번은 사회적기업 피칭 현장에서 이런 일도 있었다. 장애아동을 키우는 부모들이 아이들이 커서 자립할 수 있는 ‘카리타스 작업장’을 만들겠다는 목표에 자식 앞세워 장사한다는 심사평이 오갔다. 건설적인 비판이라 포장할 수 없는 지역의 단면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로컬이 미래다, 경쟁력이다’라는 슬로건이 유행하고, 지자체의 로컬크리에이터를 양성하는 사업이 성행 중이다. 지역의 가능성을 조명하는 건 분명 반가운 일이다. 다만 수십에서 수백억원에 달하는 예산이 배정된다 한들 무얼 해야 할지 몰라, 사업을 맡을 인력이 없어 국고로 돌려보내는 일을 왕왕 목격한다. 예산을 사수하기 위해 대게는 외부의 전문인력을 공수하는 것으로 결론이 좁혀진다. 허나 잠시 머물며 로컬을 맛보는 것과 살아가는 것은 엄연히 다른 일이다. 새롭고 낯선 시도를 향해 쏟아지는 관심은 벚꽃비 내리는 봄날처럼 찰나에 불과하다. 왜 이 일을 해야 하는지 명확한 관점과 의지만이 기나긴 겨울을 나는 불쏘시개가 된다.

“우리가 살아갈 미래는 우리가 개척해야죠!” 이찬슬 스픽스 대표는 가장 작고 소외된 곳을 찾아 목포역에서 1시간 떨어진 섬마을 안좌도로 들어갔다. 그의 말처럼 폐교를 동물원으로 바꾸는 ‘주섬주섬(zoo섬zoo섬) 마을’은 변화의 바람을 일으켰다. 인구소멸 위기가 가속화되는 지역의 본질적 문제로 그는 ‘인식’을 꼽았다. 지역으로 가면 실패한 것이라는 편견을 바꾸고 싶었다. 어떤 실험이든 섬에 거주하는 3개월간 1000만원을 지원하는 버킷리스트 프로젝트를 통해 크루를 모았다. 도시에서라면 생각할 수 없었던, 스스로를 더 객관화할 수 있는 고민을 실행에 옮기는 판을 마련했다. 지난 5년간 안전성과 행정 문제로 공들여 만든 폐교를 부숴야 했던 경우도 부지기수. 그럼에도 실험은 계속된다.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자신의 것을 만들 수 있는 중간 거점으로, 크리에이티브한 그룹이 더 큰 성과를 낼 수 있게 만드는 과정이라 생각할 뿐이다. 모두가 무모하다며 말리던 그 과정 자체가 유일무이한 경쟁력이 됐다.

성공과 실패라는 프레임을 실험과 성장의 연속으로 바꿔 보면 어떨까. 처음부터 인구소멸지역에 100명을 유치하려면 자원을 대거 투입해도 달성하기 어려울 터. 그에 반해 권한만 줬을 뿐인데 지자체의 예산 한 푼 들이지 않고 관광 명소가 된 주섬주섬 마을은 어떠한가. 외지인이 찾아들고 돈으로 해결하지 못했던 지역 활성화의 지표가 자연스레 확보됐다. 10명의 팬이 나머지 90명을 데려오는 끌어당김의 법칙은 어디에서나 유효하다. 가설을 검증하는 단기 테스트보다 장기적인 안목으로 지역의 특수성을 반영한 지표를 확립해 나가는 것이 더 중요한 이유다. 한 철 장사인지 생태계 마련이 목표인지에 대한 판단은 결국 시간이 검증한다.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았던 로컬의 잠재력과 문제를 해결해 왔던 플레이어들은 꾸준히 존재해 왔다. 꼭 필요한 서비스와 제품임에도 아직 시장이 성숙하지 않아서 혹은 홍보가 부족해 버티다 사라진 경우가 많을 뿐. 그런데도 나와 내 주변이 처한 문제를 외면하지 않고 변화를 만들어 온 체인지메이커들의 흔적은 짙게 남아있다. 지역, 인구, 미래 세대 소멸의 수위가 찰랑대는 이 시점에서 더는 망설일 시간이 없다. 로컬이라는 브랜딩이 세련된 외부의 자본과 인프라로 무장한 젠트리피케이션의 그늘에서 벗어나길 바란다. 일 년짜리 성과 보고를 위한 지원이 아닌 거시적인 관점에서 지역의 현안을 조망해 이끌어가는 플레이어와 조력자의 협업이 그 어느 때보다 시급하다. 누군가는 파동을 일으켜야 하고 로컬에는 더 많은 퍼스트 무버가 필요하다.

정유미 포포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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