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12일(금)

[로컬 패러다임] 수도권을 향하는 청년, 수도권을 떠나는 청년

양경준 크립톤 대표
양경준 크립톤 대표

지방대 소멸은 청년들의 수도권 쏠림 현상을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 중 하나다. 과거에는 지방 명문대로 불리는 학교들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렇지 않다. 지역 인구가 줄어서 혹은 실력이 없어서 이 대학들이 소멸 위기를 겪는 게 아니다. 전적으로 학생 수가 줄기 때문이다. 입학생도 줄어들지만, 설령 입학했어도 졸업 전에 떠나는 학생이 많다. 이유는 지방 대학을 나와서는 기회가 없다는 생각 때문이다. 사회심리학자 매슬로우에게 대한민국 청년들이 수도권으로 몰려가는 이유를 설명해 달라고 하면 ‘생존의 욕구’ 때문이라고 할 것이다. 살아남아야 한다는 강한 욕구의 발동으로 청년들은 수도권으로 이동하고, 생존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결혼도 하지 않으며, 결혼해도 출산을 하지 않는다. 자신의 생존조차 담보할 수 없는데 가족과 후세의 생존까지 생각하는 건 사치다.

대세가 이러함에도 언젠가부터 탈(脫)수도권하는 청년들이 나타났다. 제주의 로컬 콘텐츠를 깊이 있게 담아내는 매거진 ‘제주iiin’을 창간한 고선영 대표는 제주 출신이 아니다. 여행 전문기자로 전 세계를 누비던 그녀는 어느 날 방전(放電)됐고 아무 일도 할 수 없어서 도피하듯 제주로 내려왔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그곳에서 자신만의 여행 전문 매거진을 만들었다. 방전된 그녀를 제주가 다시 충전(充電)해준 것이다. 이전보다 더 달릴 수 있는 수준으로 말이다. 현대카드와 라인에서 브랜드 디자이너로 일하다 제주에서 서핑을 테마로 하는 라이프스타일 브랜드 ‘베러댄서프’를 만든 김준용 대표 역시 마찬가지다. 그에게도 어느 날 번아웃이 왔고, 지칠 때마다 재충전을 위해 찾던 제주에서의 서핑을 떠올리며 아예 제주로 내려온 것이다.

그런가 하면 지치지 않고서도 제주에 내려온 청년들도 있다. 유아람 제로포인트트레일 대표는 제주 원도심인 산지천에서 한라산 정상까지 온전히 자신만으로 힘으로 올라가는 씨투써밋(sea to summit)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그는 그리스의 대문호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그리스인 조르바’를 읽고 소설의 배경인 크레타 섬까지 갔다가 정작 별 게 없다는 실망감을 안고 돌아왔고, 오히려 제주에서 감동을 받고 정착한 사례다. 단순히 산을 오르는 것이 아니라 산을 통해 자신을 치유하는 프로그램을 그는 한라산에 이어 설악산, 지리산으로 확대해 나가고 있다. 제주 바다에서 자라는 우뭇가사리를 이용해 푸딩을 만드는 우무(umu)의 박지훈, 신동선 공동대표는 제주가 좋아서 이주해 살다가 창업한 사례다. 이들이 운영하는 조그만 카페는 MZ세대가 반드시 방문하는 핫플레이스가 됐다. 연간 방문객은 60만명이 넘는다.

방전이 돼서 왔거나 제주가 좋아서 왔거나 이들이 제주에 온 이유는 사실 같다. 모두 생존의 욕구 때문이다. 살려고 온 것이다. 이러다가는 죽을 것 같아서 제주에 왔거나 다른 어떤 곳보다 여기에 사는 게 좋아서 제주에 왔다고 한다. 이것이 시사하는 바는 매우 중요하다. 첫째, 청년이 수도권으로 몰려든 이유도 자발적으로 떠나는 이유도 모두 생존의 욕구라는 것이다. 둘째, 청년이 자발적으로 수도권을 떠나게 하는 사실상 유일한 방법은 로컬에 있다는 점이다. 청년들이 수도권을 벗어나 갈 수 있는 곳은 외국이나 로컬, 두 가지 선택밖에 없다. 생존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외국을 선택하는 청년들이 소수라는 점을 생각하면 다수는 로컬 외에는 답이 없다는 뜻이다. 그러니 어떻게 해야 하겠는가. 지역이 살아나려면 청년들이 다시 돌아와야 하고, 청년들 역시 로컬 외에 마땅한 대안이 없다면 오직 하나의 명제가 남는다. 청년들이 오고 싶은 로컬, 청년들이 살고 싶은 로컬이 돼야 한다. 그런 로컬을 어떻게 만들 수 있을지 고민하는 게 모든 지역사회에서 지금 해야 할 일이다.

양경준 크립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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