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9일(월)

사회적 책임 활동 홍보하던 기업들 “사회공헌 인재는 안 뽑습니다”

주요 15개 기업 캠퍼스 리쿠르팅 현장 찾아가보니
사회공헌 관련 부서에서 일하고 싶다는 말에
“담당 부서 없다” “입사 후 부서 이동 노려라”
사회공헌·CSR은 비주류라는 인식 강해

경제 여건·CEO 의지 따라 CSR 예산·기준 변동
신입 키울 여력 부족… 당장 투입 어렵다는 의견도

국내 기업들의 사회공헌 지출 비용이 3조원을 넘어선 지 오래. 실제로 CSR 및 사회공헌을 바라보는 기업 내부 시선은 어떨까. 조선일보 더나은미래는 CSR 담당자를 꿈꾸는 대학생 기자들로 취재팀을 꾸려, 주요 기업 15곳의 캠퍼스 리크루팅 현장을 찾았다. CSR·사회공헌팀 취업 방법을 묻는 대학생들에게 인사 담당자들은 일제히 우려의 시선을 보내거나, 뜻밖이란 반응을 보였다. 특히 이러한 모습은 CEO가 나서서 사회공헌 및 CSR 관련 철학을 발표하거나, 사회공헌 활동을 활발히 홍보하는 기업에 공통적으로 나타났다.

지난 9월, 주요 대학을 방문한 대기업 캠퍼스 리쿠르팅 현장. 기업은 수만명의 청년들을 채용한다고 밝혔지만 사회공헌·CSR(기업의 사회적책임) 관련 부서로 취업할 수 있는 문은 굳게 닫혀있었다. /조선일보 DB
지난 9월, 주요 대학을 방문한 대기업 캠퍼스 리쿠르팅 현장. 기업은 수만명의 청년들을 채용한다고 밝혔지만 사회공헌·CSR(기업의 사회적책임) 관련 부서로 취업할 수 있는 문은 굳게 닫혀있었다. /조선일보 DB

올해 초, 손경식 CJ그룹 회장은 “기업 활동의 근본적 목표인 이익 창출에 힘쓰는 동시에 사회적 가치도 창출하는 CSV(공유 가치 창출·Creating Shared Value)를 강화할 것”이라면서 “역경을 헤치고 미래 발전을 실현하기 위해 우수한 인재 확보와 육성에 노력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해선 CJ오쇼핑 대표는 2012년 채용설명회에 직접 강연자로 나설 정도로 인재 발굴에 애정을 보였고, 지난해엔 “CJ오쇼핑의 동반 성장 정책이 열악한 중소기업들에 큰 사업 기회가 될 것”이라며 상생을 강조한 바 있다. 그러나 채용상담회 현장에선 CJ오쇼핑의 CSR·CSV에 대한 애정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CSV 사업을 확장하고 있는 CJ오쇼핑에서 관련 업무를 하고 싶어 1년간 준비했다”는 질문에 대해 CJ오쇼핑 관계자는 “사회공헌 부서를 원한다면 CJ 다른 계열사를 알아보라”고 딱 잘라 답했다.

◇CSR·사회공헌 둘러싼 기업의 양면성… 홍보 따로, 채용 따로

“그룹 위상에 맞는 경제적, 사회적 책임을 성실히 이행해나가야 한다”고 밝힌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2012년 신년사 이후, 적극적으로 사회공헌 활동을 홍보한 ㈜한화 역시 마찬가지였다. 캠퍼스 리크루팅 현장에서 ㈜한화 채용 담당자는 “회사가 사회공헌 업무 하나만을 위해 사람을 고용하진 않는다”면서 “열 가지 업무 중 한 가지가 사회공헌일 뿐이니, 그 분야만 생각하고 들어오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CEO의 의지와 달리, 사내에서 사회공헌·CSR 업무가 ‘비주류’인 듯한 인상도 있었다. LS 인사 담당자는 “직원 대부분은 회사 일이 워낙 바쁘기 때문에 CSR에 큰 관심이 없다”면서 “CSR은 홍보팀의 한 기능일 뿐”이라고 답변했다. 이는 구자열 LS그룹 회장이 올해 신년사에서 중점 경영 방침 네 가지 중 하나로 ‘사회적책임과 역할 이행’을 꼽은 것과 배치되는 모습이었다. 지난해부터 CSR팀 채용을 준비하고 있는 김모(24·S대 사회복지학과)씨는 “만약 사회공헌팀이 아닌 마케팅, 회계 직군에 대해 채용 상담을 받는다면 같은 대답이 돌아올까 의문”이라면서 “특히 사회공헌·CSR을 열심히 하고 있다고 홍보하는 기업 위주로 상담을 받았는데, 하나같이 ‘왜 사회공헌에 관심을 갖느냐’는 분위기여서 실망했다”고 귀띔했다.

◇CSR·사회공헌은 비주류… 신입 채용은 “기대 말라”

CSR, 사회공헌 담당 부서가 없어 신입 채용이 어렵다는 기업도 많았다. 삼성엔지니어링 담당자는 “사회공헌 관련 별도 조직이 없고, 사업마다 태스크포스(TF)를 꾸려서 하고 있다”면서 “경영 지원 부문 내 인사팀에 들어가면 관련 업무를 맡게 될 수 있지만, 사회공헌 분야를 위한 채용이 있으리란 보장은 없다”고 설명했다. 제일모직(리조트·건설 부문) 채용 담당자는 “사회공헌 부서가 따로 없어서, 경영지원팀이나 홍보팀에 지원한 뒤 관련 업무 담당자로 일하게 될 순 있다”고 답했다. 채용설명회에 참석한 이모(27·K대 미디어학부)씨는 “자기소개서를 쓸 때 왜(Why) 해당 ‘산업군, 기업, 직무’에 지원하는지 ‘3Why’가 중요하다고 배웠는데, 회사마다 홍보·인사·총무 등 CSR 업무를 담당하는 부서가 제각각이라 어디에 맞춰서 준비해야 할지 막막해졌다”고 토로했다.

이미 CSR 관련 부서가 있는 기업은 타 부서로 입사 지원할 것을 권유했다. 삼성물산 담당자는 “솔직히 CSR·사회공헌 부서가 직원들에게 인기 있는 곳이 아니기 때문에타 부서에서 일하면서 충분히 이동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효성그룹 인사담당자는 “경영지원팀으로 지원하고, 2~3년 후에 사회공헌팀으로 전환 배치받는 게 좋을 것 같다”고 했고, 두산인프라코어 관계자는 “지금까지 신입 사원을 사회공헌팀으로 뽑은 적은 없지만, 최근 조직 개편을 통해 사회공헌팀이 본사로 들어올 정도로 CSR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만큼 입사 후 사회공헌팀을 자원하면 이동 가능성이 높다”고 답했다. 삼성전자, 한화, 금호아시아나항공, IBK기업은행 등도 “입사 이후 사내 부서 이동을 노려보라”고 답했다.

◇국내 CSR 전문가 키우는 곳 없어… 신입 채용 불가능한 구조

이러한 기업 내 분위기와 달리, CSR 관련 부서에 대한 대학생들의 관심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지난해 더나은미래가 사회공헌 및 CSR 연구 동아리 소속 대학생 162명을 대상으로 설문한 결과 “대학 졸업 후 사회공헌 분야로 진출하고 싶다”는 응답이 무려 73%(118명)에 달했다. CSR에 대한 기업 내·외부 관심이 높아짐에도, 신입 채용의 벽이 높은 이유는 무엇일까. S기업의 10년 차 사회공헌 담당자는 “초창기엔 CSR팀을 꾸린 기업 대다수가 NGO나 복지기관 실무자를 경력직으로 채용했지만, 이젠 기업 내부에서 주니어를 CSR 전문가로 키울 시기가 됐다”면서 “그러나 경제 상황에 따라 사회공헌 예산을 대폭 줄이거나, CEO가 바뀔 때마다 CSR 기준도 함께 흔들리다 보니, 신입 사원을 키울 여력 없이 경력 채용만 하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반면, 당장 신입 직원에게 CSR 업무를 맡기기엔 무리란 반응도 있다. H기업 CSR 담당자는 “CSR이란 조직 경영 전반에 걸쳐 적용되는 개념이다 보니, 신입 직원이 당장 투입되기보다는, 해당 기업의 비즈니스·환경·지배구조 등을 깊이 이해한 뒤 CSR 업무를 맡는 게 낫다”면서 “대학교에서 CSR 전문 커리큘럼을 마련하는 등 학생들이 입사 전 CSR을 체계적으로 배울 수 있는 곳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국내 대학 중 인하대를 제외하곤 CSR 학과를 개설한 곳이 없고, MBA 과정에서 CSR을 필수과목으로 배정한 대학조차 찾기 어렵다. 15곳 중 유일하게 CSR 담당자가 채용 상담을 직접 진행한 GS칼텍스 관계자는 자신의 경험을 들어 “광고팀에서 홍보팀으로 부서에 배치받은 뒤, 개인적으로 CSR 관련 교육이나 세미나를 열심히 찾아서 듣고, 스터디를 하면서 ‘이 직원에게 CSR 업무를 전문적으로 맡겨봐야겠다’고 할 때까지 노력했다”면서 “당장 대학에 CSR 전문 커리큘럼이 없다면, 개인적으로 CSR의 전문성을 키울 수 있는 방법을 찾아가길 바란다”고 조언했다.

정유진 기자

강보미·김은솔·채승훈 청년기자(청세담 2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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