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9일(월)

노인 고용률은 63%인데 정규직은 딱 3%… 생계 위해 달리는 궁핍한 노년현실

세계노인복지지표, 韓 96개국서 50위

스리랑카·베트남보다 복지 순위 낮아… 총 고용률엔 폐지 줍는 어르신도 포함
한국서 가장 취약한 부분은 ‘소득보장’ 연금 적어 늦은 나이까지 일하는 게 원인

지난 1일 ‘세계 노인의 날’을 맞아, 전 세계 노인 복지의 현주소가 공개됐다. 헬프에이지 인터내셔널이 지난해에 이어 두 번째로 발표한 ‘세계노인복지지표(Global AgeWatch Index)’를 통해서다. 96개국 노인 복지의 수준을 소득, 건강, 역량, 우호적 환경 등 4개 영역 13개 측정 지표로 분석했는데, 이는 전 세계 노인 91%를 아우를 수 있는 범위다. 노르웨이가 전체 1위를 차지했고, 스웨덴·스위스·캐나다 등이 그 뒤를 이으며 전통적인 복지 선진국의 면모를 드러냈다. 우리나라의 전체 순위는 50위. 아시아에선 일본(9위), 태국(36위), 스리랑카(43위), 필리핀(44위), 베트남(45위), 중국(48위), 카자흐스탄(49위) 다음이다. 조현세 한국헬프에이지 회장은 “작년(67위)에 비해선 조금 나아졌지만 22위권인 경제 수준을 감안하면 여전히 실망스러운 수준”이라고 했다.

지난 1일, 한국관광공사 3층 백두실에서 진행된 ‘제4 회 Age 토크: 2014 세계노인복지지표’발표 현장에는 50여명의 노인이 함께 참석해 한국 노인복지 현주소에 대한 의견을 나눴다. /한국헬프에이지 제공
지난 1일, 한국관광공사 3층 백두실에서 진행된 ‘제4 회 Age 토크: 2014 세계노인복지지표’발표 현장에는 50여명의 노인이 함께 참석해 한국 노인복지 현주소에 대한 의견을 나눴다. /한국헬프에이지 제공

세부 영역을 살펴보면 우리의 현주소를 좀 더 잘 알 수 있다. 가장 취약한 영역은 ‘소득 보장’ 부분. ‘연금소득 보장’ ‘노인 빈곤율’ ‘노인의 상대적 복지’를 근거로 매겨진 점수에서 우리나라는 96개국 중 80위에 그쳤다. 이는 방글라데시(75위)보다 낮은 순위. 60세 이상의 ‘기대수명’과 ‘건강 기대수명’ 등을 따지는 건강 상태에선 42위, ‘사회적 연결’이나 ‘시민의 자유’ 등을 묻는 ‘우호적 환경’ 영역에선 54위에 그쳤다. 가장 높은 순위를 차지한 건 고용률과 교육 수준으로 집계되는 ‘역량'(19위) 부분이다.

◇대한민국의 노인 ‘일 많이 하고 생활은 궁핍하다’

이번 지표는 많이 배우고 오래 일하면서도 가난한 우리나라 노인의 현실을 여실히 보여준다. 왜 그럴까. 최혜지 서울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소득에서 ‘공적 이전 소득'(국가로부터 받는 소득) 비율이 너무 낮고, ▲연금 수급률에 비해 연금 액수가 너무 낮으며 ▲노동의 질이 떨어지기 때문으로 분석했다. 최 교수는 “노인이 버는 돈을 100만원이라고 하면 근로·금융·부동산 소득이 81만원이고, 나라로부터 받는 건 19만원밖에 안 된다”며 “노인들이 직접 발로 뛰어야 삶을 연명할 수 있다는 얘기”라고 했다. 63%에 이르는 노인의 고용률이 이를 증명한다. 이 중 80%는 오로지 생계만을 위해 일한다. 하지만 노동의 질은 열악하다. 노인 고용 중 상용 근로자나 정규직은 3.1%에 그친다. 대부분 임시직·일용직·영세 자영업이다. 최 교수는 “노인 고용률에는 폐지 줍는 어르신이나, 한 달에 20만원 정도 받는 공공형 일자리 20만개가 다 포함된 것”이라며 “직접 벌 수밖에 없는데, 큰 소득은 기대하기 힘드니 가난해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수치상으론 10명 중 8명이 공적연금을 받는 것으로 나타나지만, 실질적으로 살림에 도움을 줄 정도는 아니다. 최 교수는 “기초연금(67%), 국민연금(28.3%), 특수직역연금(공무원·사학·군인연금, 4.1%) 수급률을 모두 합치면 79%나 되지만, 기초연금 최대치는 20만원에 그치고, 국민연금을 받는 액수도 10만~20만원의 비율이 가장 높다”고 설명했다.

◇”50위도 안 된다!” 발표회 현장 반응 후끈

이번 지표가 발표된 지난 2일, ‘제4회 Age토크: 2014 세계노인복지지표’ 발표회 현장에 참석한 노인 청중 50여명은 한목소리로 “결과를 수긍하지 못하겠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경기도 부천의 ‘노인나눔터’에서 일하는 김진영씨(한국헬프에이지 활동가)는 “50위라는 순위가 너무 낮은 게 아니라, 너무 높아서 충격”이라며 “우리 지역에 사는 어르신들을 비롯해, 현장을 다녀보면 그보다 더 열악하다는 걸 한눈에 알 수 있다”고 말했다. 노년 노동조합에서 활동한다는 김선태씨는 “연급 수급률이 80% 가까이 나왔는데 기초생활수급자들에게 기초노령연금을 줬다 뺏는 걸 감안한 것인가”라고 물으며 “한 달에 20만원, 그것도 1년에 9개월밖에 못 하는 공공형 일자리를 취업률에 포함했다는 것 자체가 지표에 허수가 들어있다는 것”이라고 못 박았다. 익명을 요청한 한 활동가 역시 “노인에게 우호적인 환경이 장애 접근성과 비슷하다고 봤을 때 54위까지 될까 하는 의문이 든다”고 지적했다.

이번 지표는 국제노동기구(ILO),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월드뱅크, 국제갤럽 등의 국제 표준 데이터를 사용해 국가 간 비교를 가능하게 한 것이 특징이다. 토비포터(Toby Porter) 헬프에이지 인터내셔널 CEO는 “전 세계적으로 고령화가 급격히 진행되고 있지만, 노인들에 대한 국제적인 데이터가 마땅치 않아 적절한 대응 마련이 어려웠다”며 “이번 발표가 노인들의 삶의 질 개선을 위한 제도와 정책으로 이어질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조현세 한국헬프에이지 회장 또한 “데이터의 허점이 다소 존재하는 건 사실이지만, 96개국이 모두 똑같은 지표를 사용해 비교할 수 있게 했다는 것에 의미를 뒀으면 좋겠다”면서 “앞으로 이 지표가 노인 복지 환경 개선을 위한 사회운동의 원동력이 될 수 있도록 어르신들과 함께 실천적인 대안을 고민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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