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8일(토)

[미리 보는 사회문제… 2015년 新사각지대를 살피다]① Ⅰ 아동 – 어릴 적 받은 상처… 평생토록 아물기 어려워

미리 보는 사회문제… 2015년 新사각지대를 살피다
불안정한 가정 환경에 방치된 아동들
경제 수준 낮을수록 아동의 삶의 질 지표 낮아… 건강한 성장 위해 장기적 심리 치료 지원돼야

송파 세 모녀 자살 사건, 아동 학대 사망 사건, 세월호 참사, 윤 일병 사건…. 사회문제가 곪아 터진 후 이슈가 되면, 그제서야 새로운 대책이 만들어진다. 정책의 손길이 닿지 못하는 사각지대는 끊임없이 생겨난다. 정부와 기업, NGO가 모두 2015년의 새로운 사업을 준비하는 시기를 맞아, ‘더나은미래’는 아동·청소년·청년·노인 분야의 신(新)사각지대는 무엇인지 들여다봤다.

미상_그래픽_사회문제_사회문제일러스트_2014

이진호(가명·10)군의 집은 3평 남짓한 고시원이다. 부모님이 함께 운영하던 스포츠용품 사업이 부도나면서, 매일 다투던 부모님은 결국 이혼하고, 어머니는 집을 떠났다. 부도날 때 진 빚에 사채가 더해지면서 아버지의 빚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전세금을 뺀 돈으로 사채는 막고 옆 동네 고시원으로 거처는 옮겼지만, 전학 처리를 하지 않은 탓에 학교도 다니지 못했다. 아버지가 일용직을 하러 나간 사이, 온종일 동네를 걸어 다니다 떡볶이나 라면을 사먹고 들어오는 게 진호군의 일과였다. 지난해 한 아동보호전문기관에서 진호군을 발견했을 때, 진호군의 인지 능력은 또래보다 훨씬 떨어졌다. 영양 불균형도 심했고, 공격적인 성향도 강했다.

아버지에 대한 교육과 상담이 이뤄지고, 진호군에게는 18회 동안 그림 치료가 이뤄졌다. 진호의 치료사는 “엄마로부터 버림받았다는 생각에서 오는 좌절감이나 학교에 다닐 수 없었던 상황에 대한 분노, 아버지에 대한 두 가지 모순적인 감정들이 드러났다”며 “감정을 꺼내놓고, 조금씩 풀고 나니 시간이 쌓일수록 심리적 안정감을 찾아갔다”고 했다. 진호군은 이제 열악한 환경의 고시원 대신 쉼터에서 생활하며 치료를 지속하기로 결정했다. 아버지가 경제적 여력을 갖출 때까지다. 안정을 찾은 진호군은 감정 조절도 잘하고, 학교에 다니며 또래 친구들과도 어울린다.

◇가난할수록 마음이 아픈 아이가 많다

1차 보호망이어야 할 가정으로부터 보호받지 못하는 아이들이 늘고 있다. 그중 아동 방임, 정서 학대와 같은 아동 학대 등으로 마음을 다치는 아이들이 늘어나고 있는 것. 미국 애리조나주 교육청에서 심리학자로 근무하는 이선화 박사는 “심리·정서적으로 트라우마가 있는 아동 수를 공식적으로 집계하기는 굉장히 어렵지만, 미국 심리학회에서는 전체 아동의 약 40~80%가 직간접적으로 가정폭력·학대를 경험하고, 그로 인한 심리적 트라우마를 겪고 있다고 본다”며 “한국의 경우는 좀 다를 수 있겠지만, 생각 이상으로 많은 아동이 심리적 트라우마 상황을 겪는다”고 했다.

더 큰 문제는 저소득 가정으로 갈수록 이 비율이 높게 나타난다는 것.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2013)에서 조사한 ‘아동·청소년 인권 실태’에 따르면 경제 수준에 따른 아동·청소년의 생활 및 정서 문제는 심각한 정도다. 160여개의 조사 항목 가운데 약 80% 이상, 가정의 경제 수준이 낮아질수록 청소년의 삶의 질을 측정하는 지표가 나빠졌기 때문. 특히 스트레스 인지, 우울감 및 자살 생각 등 정신적·심리적 영역에서 저소득층 청소년일수록 문제가 크다.

방임, 정서 학대, 가정 해체, 주거 환경, 경제 수준 등 다양한 요인들로 인해 마음이 아픈 아이들이 늘어나고 있다. 아이들의 정서·심리를 어루만지는 지원이 필요한 시점이다.
방임, 정서 학대, 가정 해체, 주거 환경, 경제 수준 등 다양한 요인들로 인해 마음이 아픈 아이들이 늘어나고 있다. 아이들의 정서·심리를 어루만지는 지원이 필요한 시점이다.

◇주거 환경도 심리·정서 불안의 큰 요소로 작용해

주거 환경 또한 아동의 심리·정서 불안에서 큰 요인을 차지한다. 2013년 초록우산어린이재단이 한국도시연구소와 함께 조사한 바에 의하면, 최저 주거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환경에 거주하는 국내 아동이 129만명에 육박했다. 아동 인구 10명 가운데 1명꼴인 수준이다. 지하에 사는 아동은 23만명에 달하고, 비닐하우스, 컨테이너에서 사는 경우도 2만5000명에 달했다. 김민기(가명·16)군은 커갈수록 분노조절장애가 심해졌다. 2평 남짓한 좁은 공간에서 세 식구가 생활하다 보니,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불안감과 스트레스가 지속됐던 까닭이다. 쪽방촌 내 술에 취한 다른 사람들에게 노출되는 영향도 컸다. 매일 술에 만취한 사람들이나 취객의 고성방가를 듣고 자라면서 취객에 대한 심리적 트라우마도 생겼다.

최은영 한국 도시연구소 연구원은 “열악한 주거 환경에서 거주하는 아이들은 다른 아이들에 비해 우울증, 불안함, 스트레스, 분노 지수 등이 굉장히 높다”며 “어린 시절의 주거 환경이 아동의 인지 능력 및 학업에도 영향을 크게 미친다”고 했다.

◇세대가 전이되는 심리 트라우마… 정서 지원 확대돼야

전문가들은 “아동, 특히 빈곤 아동의 정서·심리적 트라우마를 어루만지는 지원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특히 어린 시절 트라우마는 발달 단계와 맞물리기 때문에 나이가 들어서도 쉽게 치유되지 않기 때문. 이선화 박사는 “어린 나이에 트라우마에 노출될수록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데, 부모의 트라우마가 아동에게 전이되는 경우도 많다”고 지적했다.

저소득층 아동을 대상으로 한 기업 사회공헌의 경우, 현물 지원이나 일회성 캠프와 같은 지원은 많지만 ‘아동의 정서·심리’에 초점을 맞춘 프로그램은 찾아보기 어렵다. 김은정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아동복지연구소 소장은 “아동의 정신 건강권은 지금껏 많은 관심을 받지 못했는데, 아동의 건강한 발달과 성장을 위해선 가장 지원이 필수적인 부분”이라며 “가정 해체 및 여러 이유로 가정에서 보호받지 못하는 아동들의 심리·정서는 장기간에 걸쳐 지원을 해나가는 게 결과적으로는 사회적 비용도 줄일 수 있는 길”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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