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2월 8일(일)

[논문 읽어주는 김교수] ESG, 산산조각이 나다

김민석 경기도사회적경제원 사업본부장
김민석 경기도사회적경제원 사업본부장

“더 이상 ESG라는 용어를 사용하기를 원하지 않는다.”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투자자 중 하나인 블랙록의 CEO 래리 핑크는 지난달 25일 아스펜 아이디어스 페스티벌 행사에서 ‘ESG’라는 용어가 정치적으로 상대 진영을 공격하기 위한 무기로 쓰이는 등 오용되는 것에 대해 “부끄럽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더는 ESG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그동안 핑크가 보여준 행보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어서 많은 화제가 됐다.

실제 핑크는 2018년 블랙록의 연차보고서에서 ‘불확실성이 높아지는 시장에서 장기적으로 지속적인 성과를 내며 환경과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이 중요하다’며 공개적으로 ESG를 지지한 이후, 계속해서 기업에 ESG 이슈를 고려한 경영을 강조해 왔다. 나아가 2021년에는 기업들에 비즈니스 모델이 넷제로와 어떻게 연결되는지에 대한 계획을 공개하도록 요청했다. 덕분에 작년 기준으로 미국 대기업의 82%가 탄소 배출량 감축 목표를 설정하는 등 많은 기업이 RE100과 같은 이니셔티브에 가입하며 탄소중립과 온실가스 감축에 관심을 보이기도 했다.

핑크의 이번 발언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ESG를 반대하는 미국 공화당의 어느 의원은 최근 몇 년간 자산운용사가 좌파의 압력에 너무 민감하게 반응했다고 주장하며, ESG 추세를 멈추려는 노력의 승리라고 했다. 또한 보수 성향의 주주들은 올 1월부터 5월 말까지 ESG를 반대하는 내용의 결의가 최근 3년간 400% 이상 증가하는 실적을 거뒀다고 주장했다.

반면 여전히 ESG에 관심을 보이는 곳도 많다. 한국의 경우 ESG 성과를 내는 기업에 금리를 우대하는 정책이 운영되고 있고, ESG 역량이 부족한 중소·중견기업을 위한 공공과 대기업의 지원 프로그램이 제공되고 있다. 이맘때쯤이면 각 기업의 지속가능경영보고서가 발간돼 그들의 ESG 성과를 이해관계자와 활발히 커뮤니케이션하기도 한다.

ESG를 둘러싼 어수선한 분위기에서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무엇일까? 먼저 ESG 경영에 대한 본질을 잊지 않아야 한다. 특히 미국 정치권에서는 ESG를 논쟁의 대상으로 삼으면서 소모적인 싸움이 지속돼 왔다. 문제는 ESG 경영을 찬성하는 쪽이나, 반대하는 쪽 모두 일리가 있는 주장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양쪽의 말만 들으면 이상한 것이 없다. 왜냐하면 그들이 말하는 경제라는 것이 절대 단순하지 않고, 투자의 기준 또한 획일적이지 않으며 기업의 성공 요인 역시 정해진 답이 있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ESG 경영의 본질인 ‘지속가능성’을 우선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즉 조직의 지속가능성을 위해서 비재무 성과인 ESG 경영과 재무적인 성과를 통합하는 관점을 갖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용어는 유행을 탈 수 있지만 ESG가 추구하는 가치는 변하지 않는다. ESG가 등장하기 이전에는 환경과 사회적가치에 대한 담론이 없었을까? 아니다. 여러 주체가 그들의 용어로 다양한 관점에서 목소리를 냈었다. 그리고 성과도 있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 ESG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주체들이 늘어나며, 특히 영향력이 강한 공공과 기업이 ESG를 그들의 주요 아젠다로 정하면서 다소 과장되고 왜곡되는 모습을 보이게 됐다.

래리 핑크가 쏘아올린 ESG의 열풍이 핑크로 인해 다시 사그라질까? 반은 맞고 반은 틀릴 수 있다. ESG라는 용어는 확실히 예전보다 덜 사용될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ESG가 포함하고 있는 기업의 환경에 대한 관심, 사회에 대한 논의는 다른 이름으로 계속될 것이다. 왜냐하면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환경과 사회를 중요한 축으로 두는 지속가능성에 대한 개념은 오랫동안 모두의 관심사였기 때문이다. 핑크 역시 이번에 ESG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는다고 했지만, ESG에 대해 언급하지 않는다고 해서 블랙록의 입장은 바뀌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여전히 탈탄소화, 기업 지배구조 개선 및 해결해야 할 사회적 문제에 대해 이해관계가 있는 회사와 계속해서 대화할 것이라고 덧붙인 것이다.

얼마 전 자산운용사인 프랭클린템플턴의 지속가능성 책임자인 앤 심슨은 ‘ESG가 산산조각이 났다’고 언급했다. ESG가 쓸모가 없다거나 의미가 없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다. 심슨은 “이것이 끝이라고 생각해서가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기 때문”이라며 “ESG를 적용하고 받아들이는 방식에 대해 새로운 변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우리는 어떠한가?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더 이상 ESG를 맹신하지도 무시하지도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ESG를 전혀 쓸모없는 것으로 폄하하거나 또는 우리 사회를 구원할 만병통치약으로 여기는 것 역시 경계할 필요가 있다. 모든 것은 그에 맞는 쓰임이 있듯이 ESG가 제 쓰임을 다하도록 ESG를 다루는 모든 당사자의 책임감 있는 모습을 기대해 본다.

김민석 경기도사회적경제원 사업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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