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8일(토)

이모티콘 읽어주는 카카오톡… 라인은 못 읽네

모바일 메신저, 장애인 배려 점수는?
카카오톡, 장애인 접근성 테스트로 세부 음성 안내 등 100여개 상황 개선
라인, 이모티콘·친구 선택 등 액션 읽는 기능 막혀 있어 불편
애플보다 안드로이드 접근성 떨어져

일러스트=박상훈 기자
일러스트=박상훈 기자

“오늘 별일 없었어?”

“14pads.”

“무슨 일인데?”

“버튼, 버튼.”

모바일 메신저 ‘라인(LINE)’으로 친구와 이야기하던 김수민(가명·28·시각장애 1급)씨는 한숨을 푹 쉬었다. 친구가 보내는 이모티콘을 전혀 읽을 수가 없었다. 모바일 화면을 음성으로 읽어주는 ‘스크린 리더’가 이상하게 작동한 탓이다. 이는 라인이 채팅창에서 사용하는 이모티콘·이미지 등에 대체 텍스트를 넣지 않아서 생긴 일이다. 도움을 요청하고자 다른 친구들을 채팅방에 초대하려 했지만 이 역시 번번이 실패했다. 초대할 친구를 선택해도, 스크린리더는 묵묵부답이었다. 200여명 중 어떤 친구를 초대했는지 읽어주질 않았다. 결국 엉뚱한 이들을 잔뜩 초대한 김씨는 “모바일 메신저는 시각장애인들에게 필수적인 의사소통 창구란 것을 IT업체들이 모르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모바일 앱 접근성에 큰 격차를 보이고 있는 카카오톡과 라인
모바일 앱 접근성에 큰 격차를 보이고 있는 카카오톡과 라인

◇모바일 메신저, 시각장애인 배려 점수는?

스마트폰 사용자 3500만 시대다. 장애인의 스마트폰 보유율도 2010년 1.6%에서 2013년 39.9%로 3년 새 25배가량 늘었다. 모바일을 활용하는 장애인의 정보화 수준도 2012년 30.2%에서 2013년 41.8%로 껑충 뛰어올랐다.(2013년도 정보격차 실태조사, 미래창조과학부) 반면 모바일 앱들의 장애인 배려 수준은 아직 ‘걸음마’ 단계다. 특히 시각장애인들에게 은행 뱅킹·쇼핑보다 중요한 모바일 메신저 시장에선 접근성 격차가 현저하다는 지적이 많다.

조선일보 더나은미래와 함께 국내 모바일 메신저, 라인(LINE)·카카오톡·페이스북 등 세 곳을 비교·시연한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 부설 한국웹접근성평가센터 시각장애인 모니터링단은 카카오톡에 가장 높은 점수를, 라인에 가장 낮은 점수를 줬다. 한국웹접근성센터 모니터링단은 “카카오톡은 유료 이모티콘을 제외하곤 캐릭터 표정이 읽혀 편리한 반면, 페이스북은 이모티콘이 영어로 읽혀 불편하고, 라인은 아예 읽히질 않는다”면서 “카카오톡과 페이스북은 사진 저장하기, 선택하기 등 액션을 읽어주는 기능이 원활한데, 라인은 해당 기능이 막혀 있다”고 평가했다.

◇직원들 스스로 접근성 높인 카카오

국민 메신저 카카오톡이 모바일 앱 접근성을 높인 데는 이유가 있다. 지난 1월, 경기도 판교 카카오 사옥 앞에선 1인 시위가 한창이었다. 시각장애인 이경호씨는 ‘카카오톡 이모티콘을 읽어주지 않는 것은 장애인을 차별하는 것이다. 이것은 장애인의 인권이다’라고 쓰인 피켓을 들고 있었다. 이씨를 만난 카카오 CS지원팀은 개선 사항을 정리했고, 해당 내용은 사내 게시판에 공유됐다. 자발적으로 태스크포스(TF)를 꾸린 직원들은 장애인 모바일 앱 접근성 스터디모임을 꾸렸다. 공감대 형성을 위해 모바일 앱 접근성을 알리는 사내 홍보 영상도 자체 제작했고, 워크숍도 개최했다.

카카오 사내 분위기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직원들 스스로 사내 게시판에 모바일 앱 접근성에 따른 세부 개선사항들을 올리고, 개발자들은 실시간 이를 고쳐나갔다. TF는 서울시각장애인복지관 등 시각장애인 접근성 테스터들을 만나 카카오톡 사용성 테스트를 진행했다. 그 결과 ‘친구 000가 선택됐음’, ‘즐겨찾기가 해제됨’ 등 액션에 대한 세부 안내 음성을 비롯해 100여 가지 사항이 개선됐다. 표정·내용에 관계없이 ‘이모티콘’으로만 읽혔던 과거와 달리, 180여 가지 캐릭터들의 이름과 이모티콘 표정도 안내된다. 각 캐릭터 생김새와 히스토리가 안내된 점자카드도 만들어 시각장애 관련 단체에 배포했다. 이현주 카카오 소셜플랫폼실 개발자는 “일산직업능력개발원의 시각장애인 선생님이 카카오톡으로 청각장애 학생들을 가르치는 모습을 보면서 모바일 앱 접근성이 왜 중요한지 절실히 깨달았다”면서 “이젠 개발자들이 서로 프로그램 개발 과정에서 미리 장애인들을 위한 접근성 테스트를 하는 등 마인드가 달라졌다”고 설명했다.

카카오톡이 시각장애인을 위해 제작·배포한 이모티콘 캐릭터 점자카드. /카카오 제
카카오톡이 시각장애인을 위해 제작·배포한 이모티콘 캐릭터 점자카드. /카카오 제공

◇모바일 앱 접근성… ‘4G LTE급’ 애플 VS ‘3G급’ 안드로이드

한편 모니터링단은 애플과 안드로이드 간의 접근성 격차에도 주목했다. 스마트폰 자체에 탑재된 음성인식 기능, ‘선택 항목 실행하기’ 등 접근성 관련 기능의 속도·편리성을 비교할 때, 애플폰이 ‘4G LTE’라면 안드로이드폰은 ‘3G’라는 것. 이들은 “개발 전부터 장애인 접근성을 고려해 만든 애플과 달리 안드로이드폰은 실행하는 방향대로 커서가 움직이질 않고, 앱을 다운받을 때마다 구현되는 접근성 기능이 달라 불편하다”면서 “국내에서 안드로이드폰을 사용하는 시각장애인을 찾아보기 어려운 이유”라고 설명했다. 안동한 한국웹접근성센터 팀장은 “지난해 4월, 장차법(장애인차별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의 확대 시행으로 모든 법인의 웹 사이트 접근성 준수가 의무화된 반면, 모바일 앱 접근성에 대해선 아무런 규정이 없다”면서 “웹에서 모바일로 시대 흐름이 바뀌고 있는 만큼, 장애인의 입장에서 듣고 보고 구현할 수 있는 모바일 앱과 스마트폰 탑재 기능이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관련 기사

Copyrights ⓒ 더나은미래 & futurechosun.com

전체 댓글

제261호 2024.3.19.

저출생은 '우리 아이가 행복하지 않다'는 마지막 경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