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30일(화)

‘살 만한 곳’ 만들러 나섰으나… 인력관리·자금난에 울상

주거복지 분야 사회적기업들의 고민
취약계층 고용 할당 등 인력 구성에 골치
제도적 뒷받침 미비·더딘 행정 처리에 자금 계획 세우기도 어려운 현실

자기혁신·장기적인 공공 파트너십 필요

“우린 이제 사회적기업 안 합니다. 건설업과는 안 맞아요.”

지난 2010년 설립된 ㈜내일은 인테리어 시공업체다. 김은천 대표는 설립 초기부터 지역복지 시민단체인 ‘열린사회북부시민회’ 등에서 주거 개·보수 관련 봉사를 해오다, 아예 2012년 (서울시 예비)사회적기업 인증까지 받았다. “좀 더 체계화된 봉사를 하겠다”는 의도였다. 하지만 올해 초 김 대표는 스스로 사회적기업을 포기하고 주식회사가 됐다.

“이 분야에선 공공조달 일거리가 중요한데, 이를 수행하려면 공기관이 원하는 인력 구성을 해야 했어요. ‘취약 계층을 몇 명 이상 채용하면 일정량의 물량을 주는 식’이었죠. 그들을 뽑고, 교육과 훈련을 시켜 현장에 투입하는 건 보통 일이 아닙니다. 그런데 오래가지도 않아요. 자세와 의지에서 문제를 보였죠. 업무 역량도 그렇고요. 건설업은 현장에서 융통성 있게 대처해야 할 일이 많거든요. 그런 식으론 운영이 안 되겠다 싶었죠.”

성북구의 마을기업 ‘동네목수’ 직원들이 노후 주택의 지붕을 고치고 있다. /동네목수·두꺼비하우징 제공
성북구의 마을기업 ‘동네목수’ 직원들이 노후 주택의 지붕을 고치고 있다. /동네목수·두꺼비하우징 제공

그는 “누군가에게 보이기 위해 억지로 하는 게 줄어서 마음이 편해졌다”며 “앞으로도 취약 계층을 고용하고 어려운 사람 돕는 일을 계속할 계획이지만, 회사 상황에 따라 자율적으로 정하지 의무적인 틀에 맞추지는 않을 것”이라고 했다.

◇절박함 해소하러 나선 기업들, 절박함에 빠지다

주거 환경을 개선하거나 낡은 마을을 되살리는 사회적기업이 국내에 등장하기 시작한 건 2008년 무렵. 문영록 한국주거복지협회 사무처장은 “기존 자활공동체가 사회적기업으로 전환하기도 하고, 시민활동가들이 무너진 마을을 위해 뭉치기도 했다”고 했다. 이들의 미션은 ‘건설업을 통한 일자리 만들기와 지역 공동체 복원’이었다.

서울 성북구 삼선동 ‘장수마을’에 위치한 ‘동네목수’. 9명의 직원이 주거 개선 사업을 하는 마을기업이다.(2012년 서울시 혁신형 사회적기업 선정) 박학룡 동네목수 대표는 “장수마을은 경사진 달동네로 재개발이 사실상 불가능했는데도 2004년부터 재개발 예정지로 묶여있었다”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사이 마을은 방치되고, 점점 사람이 살 수 없는 곳으로 변해갔다”고 말했다. 동네목수는 이 마을에서 낡은 집을 고치고, 빈집을 살려내는 일을 했다. 작년 매출은 4억여원.

마을재생 사업은 주민들의 힘으로 공동체를 복원하자는 움직임이다. /동네목수·두꺼비하우징 제공
마을재생 사업은 주민들의 힘으로 공동체를 복원하자는 움직임이다. /동네목수·두꺼비하우징 제공

전국주거복지협동조합에 따르면, 유사한 활동을 하는 사회적기업이 서울시에만 15곳, 전국적으론 50곳이 넘는다. 간단한 집수리부터, 인테리어·리모델링, 주택신축, 마을재생 사업까지 도맡는다. 변창흠 한국도시연구소 소장(세종대 행정학과 교수)은 “대형 건설회사들이 빠르게, 대량으로 짓는 것만 고민하다 보니 서민이 어려움을 겪고, 공동체가 사라지는 부작용이 발생했는데, 이는 개인이 혼자 해결할 수 없는 문제”라며 “이를 극복하기 위해 사회적기업, 마을기업, 협동조합 등이 등장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김건 전국주거복지협동조합 사무국장은 “영세한 규모의 기업들이 제도적 뒷받침이 미비한 가운데 사회적 가치까지 따지다 보니 대부분 힘들게 운영해 나가고 있다”고 했다.

◇인력, 자금 없는데 관심도… 삼중고에 우는 기업들

인력 관리는 이 분야 사회적기업들의 대표적인 고민이다. 취약계층을 고용하면 숙련도가 떨어지고, 고급 기술자를 부르면 설립 취지(취약계층 일자리 제공)와 동떨어진다. 2010년 설립한 서울 은평구의 ㈜두꺼비하우징. 정직원 16명이 일하는 중견 사회적기업이지만, 인력 문제는 여전히 골치다. 이주원 두꺼비하우징 대표는 “공사를 따야 매출이 생기다 보니 고정적인 매출을 계산하기 힘들다”며 “어느 순간 매출이 뚝 떨어지는데, 그렇다고 사회적기업이 사람을 함부로 자를 순 없지 않나”며 고충을 토로했다.

자금 관리도 힘들다. 박학룡 대표는 “‘건설업은 금융’이란 말이 있을 정도로 돈 관리가 중요하다”고 한다. 공사비는 공사가 끝나야 완납되는데, 자재비나 일용직 일당 같은 건 바로바로 지급돼야 하기 때문에 자금에 대한 계산이 어렵고, 현금유동성 위기에도 쉽게 노출된다는 것. 건설 분야의 한 사회적기업가는 “설립 후 약 8개월간 매출 없이 급여만 주느라 어머니가 물려 준 집까지 저당잡혀야 했다”고 말했다. “4년간 무보수로 일하며 사비를 5억원이나 끌어 썼다”고 말하는 기업가도 있다.

지난 2011년부터 두꺼비하우징이 시범사업으로 조성하고 있는 ‘산새마을’의 주차장 기공식 모습. /동네목수·두꺼비하우징 제공
지난 2011년부터 두꺼비하우징이 시범사업으로 조성하고 있는 ‘산새마을’의 주차장 기공식 모습. /동네목수·두꺼비하우징 제공

그나마 안정적인 게 공공거래인데, 여기선 더딘 행정이 발목을 잡는다. 주거재생 분야의 한 사회적기업가는 “작년 2월에 모 지자체가 주거환경개선사업을 지원한다고 했는데, 이런저런 절차를 거치다 보니 그해 12월이 돼서야 공사가 시작됐다”며 “그 사이 직원들 월급을 만들기 위해 매달 동분서주해야 했다”고 말했다.

◇안으론 자기혁신, 밖으론 공생공존으로 활로 뚫어야

지난 6월 25일, 서울시 은평구 사회적경제허브센터에서 진행된 ‘빈집재생 프로젝트 공가(共家)’ 워크숍. 이 프로젝트는 비어있는 집을 재생해 청년 셰어하우스(Sharehouse·집을 공유하는 것), 주거 약자 안심주택, 홀몸노인 케어하우스 등으로 개조하는 두꺼비하우징의 신규 사업이다. 이주원 대표는 “기존의 공사 중심에서 부가가치를 높이기 위한 주거 재생 분야 기획 중심으로 거듭나기 위해 뼈를 깎는 자기혁신을 진행하고 있다”고 했다.

서울 성북구 삼선동의 ‘장수마을’ 전경. /동네목수·두꺼비하우징 제공
서울 성북구 삼선동의 ‘장수마을’ 전경. /동네목수·두꺼비하우징 제공

네트워크의 필요성도 강조된다. 실제로 작년 10월 말, ‘건설사회적기업협의회’가 전국 단위의 ‘전국주거복지협동조합’으로 확대 개편됐다. 같은 해 12월에는 나눔하우징, 두꺼비하우징, 동네목수, 금천 마을건축협동조합 등이 모여 주거재생협동조합 ‘나래’를 결성하기도 했다. 백영학 전국주거복지협동조합 이사장(사회적기업 ㈜아키테리어 대표)은 “밖으론 우리 목소리를 한 곳에 모아 공공 영역에 전달하고, 안으론 정보교환, 공동교육, 격려와 감시 등을 통해 함께 어려움을 극복하는 것이 네트워크의 목적”이라고 설명했다.

장기적으론 공공과의 건실한 파트너십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김종식 대표는 “네덜란드는 공공임대 주택이 주거의 65%가량을 차지하기 때문에 집 걱정하는 사람이 거의 없는데, 이는 정부에서 비영리기관이나 사회적경제 조직에 땅을 저리로 40~60년 동안 대여해주는 ‘자산 이전’ 방식 덕분”이라며 “장기적이며 체계적인 공공 파트너십 전략은 결국 주거 복지에 대한 정부 지출을 줄일 수 있다”고 했다.

변창흠 소장은 “지금 우리나라엔 아파트 상표는 있어도 주거의 정서와 문화는 별로 없다”며 “사람이 사는(buy) 게 아니라 사는(live) 곳이라는 걸 깨닫고 주택의 건설, 관리, 운용에 대한 새로운 패러다임이 만들어져야 할 때가 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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