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4일(토)

[아동학대 예방정책, 이대로 괜찮은가] ⑦·끝 “가족 회복 공들이지 않고 신고 처리 급급한 한국… 40년 전 미국 보는 듯”

[아동학대 예방정책, 이대로 괜찮은가] (7·끝)미국의 사례로 살펴본 우리나라 아동보호 체계 개선 방향- 원혜연 한국심리극·예술치료연구소 소장 인터뷰 

주선영 기자
주선영 기자

더나은미래는 지난 4월부터 ‘아동보호 예방 체계, 이대로 괜찮은가’라는 주제로 기획 시리즈를 연재했다. 전문가들은 “전국 51곳 아동보호 전문기관 상담원 300여명이 아동보호에 관한 모든 업무를 담당하는 현 시스템이 아닌, 장기적인 시각으로 아동보호 체계를 갖춰나가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40년 전, 우리나라와 사정이 비슷했던 미국은 어떨까. 1974년 미국에서 ‘아동학대 예방 및 치료에 관한 법률’이 제정됐을 당시, 미국 또한 우리나라처럼 ‘아동보호 전문기관’이 현장 조사와 상담을 함께 해왔다고 한다. 이 방식의 한계가 지적되면서, 차츰 지금의 아동보호 체계로 자리 잡았다. 숭실대 사회복지학 석사, 미국 뉴욕대 연극 치료 석사를 전공한 후, ‘뉴욕아동센터’ 아동학대 예방 프로그램에서 사회복지사로 5년간 근무한 원혜연(43) 현 한국심리극·예술치료연구소 소장을 만나 우리보다 앞서 같은 고민을 거쳐 간 미국의 아동보호 체계를 물었다.(‘뉴욕아동센터’는 1953년 설립된 비영리기관으로, 아동학대, 우울증, 약물중독 등에 대해 아동과 청소년 및 가족에게 심리치료, 약물검사 및 예방 프로그램 등을 지원하는 사회복지 기관이다. 뉴욕시에서 발생하는 아동학대 사건에 대한 예방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 편집자

―미국의 ‘아동보호 체계’가 궁금하다. 어떤 구조로 아동학대 보호 및 사후 대처가 이뤄지나.

“‘국가가 하는 역할’과 ‘민간기관이 하는 역할’이 철저히 분리돼 있다. 모든 아동학대 신고는 각 주·도시에 위치한 아동학대 관련 공공기관인 ‘아동보호국’(CPS·Child Protective Services)으로 보내진다. 아동보호국에서 현장조사를 하고 학대인지 아닌지, 예방조치가 필요한지를 결정한다. 가해자로부터 시급히 아동을 분리해야 하거나 가해자 접근금지 조치를 취해야 하는 경우 가정법원으로 넘어가고, 그렇지 않은 경우 ‘뉴욕아동센터’와 같은 민간기관에서 예방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뉴욕시만 해도, ‘뉴욕아동센터’와 같이 아동학대 사례를 전담하는 민간기관이 많다. 국가에선 예산을 보조하고, 민간 사회복지사들이 전문성을 갖도록 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민간기관들은 예산을 보조받기 위해서 사례 관리를 철저히 하고 시·주정부 감사를 통과해야 한다.”

국가와 민간기관 역할 분리한 미국

정부는 예산지원·현장조사…

민간은 사례관리 상담원 보호 위해 치료 프로그램 활성화

우리나라도 단계별 밑그림 그려야 할 시점

―‘학대 아동’에 대해서 어떠한 프로그램을 제공하나. 실제로 사례관리를 통해 아동학대가 예방 가능한가.

“많은 경우 가해 부모는 동시에 ‘피해자’이기도 하다. 어린 나이에 학대를 당한 경험이 있다거나, 트라우마나 상처에 대한 적절한 치료를 받을 기회가 없던 것이다. 좋은 부모 본보기가 없었다. 아동 외에도 가해자의 트라우마를 이해하고 아동과 부모 모두에게 깊이 있는 상담과 사례관리를 제공한다. 가해 부모가 변화해야 가족이 변화하고, 가족이 변해야 아이가 안전하고 건강한 환경에서 성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가족을 분리하기보다는 ‘가정 회복’이 우선시 되어야 한다. 아동의 신체적·심리적 발달을 체크하고, 부모의 스트레스 레벨이나 우울증 정도를 확인해 가족에게 필요한 서비스를 통합적으로 제공한다. 가족 모두가 참여한 상태에서 가족이 당면한 이슈를 스스로 점검해 장기적인 계획을 짜는 ‘가족 참관 회의(Family Team Conference·FTC)’도 중요한 부분이다. 실제로 효과도 컸다. ‘뉴욕아동센터’에서 나온 보고서에 의하면, 사례 관리를 통해 아동학대 예방 프로그램을 시행한 이후 재학대 및 방임비율이 95% 가까이 예방됐다. 이들에게 ‘가해자’라고 낙인찍고 마는 것이 아니라 ‘변화’의 기회를 주는 거다.”

―우리나라에선 아동보호 전문기관의 상담원 소진 문제가 크다. 인력과 예산이 절대적으로 부족하고, 보상을 얻을 지점도 없다. 미국에선 상담원에게 어떠한 보상과 비전을 제시하나.

“사례관리를 통해 가족이 회복되는 것을 보는 게 가장 큰 보상이다. 사례에 집중하다 보니 가능한 일이다. 또한 사회복지사들이 전문성을 쌓을 수 있다. 사회복지사 1명당 1년에 열두 명가량의 아동과 그 가족을 케어한다. 일하는 동안 ‘가족 치료 방법’ ‘발달 과정에 따른 아동 상담 방법’ ‘인터뷰 기술’ 등 의무적으로 받아야 하는 양질의 교육이 굉장히 많다. 트라우마·치료 프로그램도 잘되어 있다. 내 상사만 해도 15년을 일했고, 소장은 경력이 20년이었다. 동료들도 대체로 최소 4~5년 가까이 일했다.”(한국의 경우 상담원 1명이 평균 60여 건의 현장 조사와 사례 관리를 한다.)

―‘뉴욕아동센터’와 같은 민간기관의 운영은 어떻게 이뤄지나.

“뉴욕시에서 예산이 나온다. 감사는 철저하다. 아동보호국(CPS)에서 감사를 진행하는데, 그간의 모든 사례 관리 상황을 기록한 ‘경과보고서(progress note)’를 제출해야 한다. 그중 무작위로 사례를 선정한다. 감사 결과가 일정 기준을 통과하지 못하면, 펀드가 끊길 수도 있다. 단, 기준은 ‘몇 명을 상담했느냐’가 아닌 ‘제공된 사례 관리 서비스의 질’이다. 단기·중장기 계획은 철저하게 세웠는지, 단계별 적절한 조치를 취했는지, 가족 참관 회의(FTC)는 진행했는지, 후속 조치를 세웠는지 등이 검토 대상이다.”

―미국 경험에 기반해, 국내 아동보호 체계가 어떻게 발전해나가야 한다고 보나.

“40년 전엔 미국도 한국과 똑같은 상황이었다. 신고 접수와 현장조사를 중심으로 이뤄졌다. 그랬더니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다. 아동학대 재발률은 계속해서 높았고, 신고를 처리하기에 급급했다. 이 때문에 정부가 신고 접수와 현장조사를 맡고, 민간에서 심층적인 사례 관리에 특화하는 방향으로 바꿔나갔다. 정부와 민간에서 각각 해야 할 역할이 다르다. 현장조사와 사례 관리는 각각 굉장히 다른 영역의 일이다. 물론 과도기가 있을 것이다. 미국만 해도, 아동 문제와 관련해선 중앙정부가 예산을 꽉 쥐고 지원하고 있지만, 한국은 그렇지 않다. 이제는 단계를 잡아 방향성을 가지고 밑그림을 그려나가야 할 시점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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