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8일(일)

“발달장애인은 단순 직업만 가진다? 어엿한 오케스트라 단원으로 월급 받아요”

하트하트재단 발달장애인 앙상블…
고정수입 받으며 꾸준히 공연 가져
“선망받는 직종에 근무할 수 있어”
고졸채용 계획 밝히자 문의 쇄도하기도

지난 10일 저녁, 서울 용산구에 있는 용산아트홀 대극장에서 열린 하트하트재단(이사장 신인숙) ‘원 하트 콘서트(ONE HEART CONCERT)’ 현장. 적막이 흐르는 가운데 8명의 연주자가 무대 위에 올라왔다. 이들은 발달장애 청년으로 구성된 전문 연주팀 ‘하트클라리넷 앙상블’ 단원이다. 관객을 향해 인사를 마치고 10초간 서로를 바라보던 단원들은 몸을 한 번 들썩이더니 클라리넷 연주를 시작했다. 빠른 템포의 곡 ‘칼의 춤’을 과감하고 자신감 있게 연주했다. 2분 정도의 공연이 끝나자, 객석에서는 기다렸다는 듯 우레와 같은 박수와 함성이 쏟아졌다.

하트하트재단 클라리넷 앙상블 단원들이 포즈를 취하고 있는 모습. /하트하트재단 제공
하트하트재단 클라리넷 앙상블 단원들이 포즈를 취하고 있는 모습. /하트하트재단 제공

◇장애인 문화예술 직업 재활 모델의 중요성 점차 커져

국내 등록 발달장애인 수는 18만명을 넘어섰지만, 이들이 사회에서 일할 환경은 열악하다. 만 15세 이상 발달장애인 12만9517명 중 취업에 성공한 이는 2만7953명으로 약 21%에 불과하다(2011년·서울대 산학협력단). 취업 가능한 직종도 제조업이나 청소 및 환경 미화, 제과·제빵, 세탁 등 단순 노무직에 한정돼 있다. 반면 선진국에선 발달장애인의 가능성에 주목해 문화예술 직업 모델을 적극 개발해왔다. 1993년 창단된 스위스의 극단 ‘호라(HORA)’는 단원 20명이 전부 지적장애인으로 구성돼 있으며, 매년 40회 이상 전 세계를 순회하며 공연을 한다. 미국 오클랜드에 있는 장애 예술가 전문 스튜디오 ‘크리에이티브 그로스 아트센터(Creative Growth Art Center)’도 40여년의 역사를 자랑하고 있다. 발달장애인을 포함한 80여명의 장애 예술인이 센터에 소속돼 있으며, 일부 작가의 작품은 뉴욕현대미술관 등 세계 유수의 미술관에 소장될 정도다. 국내에선 하트하트재단이 2006년 이후 하트하트오케스트라를 설립해 발달장애인의 음악적 재능을 개발, 직업 재활로 연결하는 모델을 시도해왔다. 음대 졸업생으로 구성된 국내 최초의 직업연주자 앙상블 ‘하트미라콜로앙상블’을 비롯, 5개 앙상블에 참여하는 연주자 27명에게 공연 개런티를 주고 있다. 또한 추가 오디션에 합격한 직업단원들은 30만원에서 최대 50만원까지 월급을 받는다. 시급으로 환산하면 약 1만6000원으로, 2014년 최저임금 5210원의 세 배에 달하는 액수다. 올해부터는 하트미라콜로앙상블 채용 대상자를 대졸 연주자에서 고졸 연주자까지 확대했다. 하트하트오케스트라 단원 천재윤(19)군의 어머니 이경애(53)씨는 “발달장애 청년들이 선망받는 직종에서 근무할 기회가 생겼다”고 말했다. 장진아 하트하트재단 사무국장은 “고졸 연주자 채용 계획을 발표하자마자 외부에서 활동하던 발달장애 연주가들이 앙상블에 들어갈 수 있는지 문의할 정도로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다”고 밝혔다.

오디션에 합격한 앙상블 단원들은 최대 월 50만원의 월급을 받는다.
오디션에 합격한 앙상블 단원들은 최대 월 50만원의 월급을 받는다.

◇발달장애인 청년, 문화예술 활동을 통해 미래를 꿈꾸다

‘안정적인 취업’을 해보려고 끊임없이 노력했지만 좌절의 고배를 마셔야 했던 8명의 청년. 이들은 현재 하트클라리넷 앙상블에 다니면서 남부럽지 않은 하루를 보내고 있다. “아이가 고등학교 3학년 때 패스트 푸드점에 취업했어요. 당시에는 취업이 됐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했지만, 2년이 지난 뒤 계약 연장에 실패했어요. 이후 운 좋게 구청에서 운영하는 도서관에 사서 보조로 취업했지만, 재계약을 할 수 없는 1년 단기 계약직이었어요. 이유를 알고 봤더니 저희뿐만 아니라 다른 발달장애인 가족들도 도서관 취업을 기다리는 상황이더라고요.” 앙상블 단원 정종현(26·발달장애 1급)씨의 어머니 원봉자(55)씨가 말했다. 종현씨는 고등학교에 다니던 지난 2005년 나가노 스페셜올림픽에 스피드스케이팅 선수로 출전한 경력을 갖고 있다. 하지만 정작 사회에 진출할 때가 되자, 그의 능력을 활용할 수 있는 직업은 턱없이 부족했다. 결국 종현씨는 고등학교 졸업과 동시에 다른 발달장애 청년들처럼 단기 계약직과 보호 작업장을 전전했다. 월급도 최저시급을 간신히 맞추는 정도였다. 하트하트오케스트라를 만난 뒤 종현씨의 삶은 극적으로 변했다. 현재 종현씨는 2011년부터 클라리넷 앙상블에 소속돼 연간 10여회 이상 공연을 하고 있다. 월급과 연주 개런티도 약 50만원씩 받고 있다. 또 다른 앙상블 단원 이성엽(20·지적장애 1급)군도 자립할 준비를 하고 있다. 어머니 윤성숙(56)씨는 지난 3월 성엽군이 받은 첫 월급으로 펀드를 들었다. “첫 월급을 받았다”고 달려왔던 아들이 비장애인들처럼 어엿하게 미래를 설계하기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돈이 좀 더 모이면 바람직하게 돈을 쓰는 법도 가르치고 싶어요.” 윤씨의 얼굴에 엷게 미소가 퍼졌다. 하지만 재단은 이러한 변화에 마냥 웃음만 지을 수 없는 상황이다. 발달장애인 가족들의 관심과 참여 의사는 많아지는데, 재단 자체의 운영만으로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담당자들이 정부 부처 곳곳을 돌아다니며 사업의 당위성과 지원을 요청했지만, 문화부·교육부·복지부로부터 모두 “우리 부처의 소관이 아니다”는 대답만 들을 수 있었다. 한 공무원은 “내 자식한테도 음악을 가르치지 않는데 장애인이 왜 그런 일을 배워야 하느냐”고 따지기도 했다. 장진아 사무국장은 “발달장애인들의 문화예술 직업 재활은 단순한 취업을 넘어 자신의 능력과 취미를 살린다는 점에서 삶의 질을 한 단계 높인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말했다. 김종인 나사렛대 부총장은 “최근 정부가 창조경제와 문화 융성을 적극 강조하고 있는데, 정부와 기업이 문화예술을 통한 장애인의 직업 재활 모델을 지원하는 것도 훌륭한 사례가 될 수 있다”면서 적극적인 참여를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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