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8일(수)

[아동학대 예방정책, 이대로 괜찮은가] ② “인력 턱없이 부족, 기존 사례만 관리해도 더 많은 학대 막을 텐데…”

[아동학대 예방정책, 이대로 괜찮은가] (2)아동보호전문기관 상담원 동행취재

울주와 칠곡의 아동 학대 사망 사례로 인해 전국이 떠들썩하다. 아동 학대 현장의 최전선에 있는 전국 50개 아동보호 전문기관에선 매일 이 같은 사건을 접하지만, 정작 아동 한 명이 죽기 전에는 주목조차 받지 못한다. 지난 11일 더나은미래 주선영 기자는 경기 지역의 한 아동보호 전문기관 상담원의 하루를 동행 취했다. 편집자 주


우리나라 전국 아동보호 전문기관에서 근무하는 상담원은 총 338명 (중앙아동보호전문기관 포함). 전문가들은“전국 지자체 224개, 933만명의 아동들을 제대로 관리하기엔 현 상담 원 인력과 기관 수가 턱없이 부족하다”고 지적한다 /조선일보 DB
우리나라 전국 아동보호 전문기관에서 근무하는 상담원은 총 338명 (중앙아동보호전문기관 포함). 전문가들은“전국 지자체 224개, 933만명의 아동들을 제대로 관리하기엔 현 상담 원 인력과 기관 수가 턱없이 부족하다”고 지적한다 /조선일보 DB

“근래 아슬아슬한 현장이 많았어요. 며칠 전 한 초등학생이 아버지로부터 온몸에 멍이 들 정도로 심하게 맞아 긴급 분리한 사건이 있었어요. 아버지는 ‘내 아이 돌려주지 않으면 농약 먹고 자살하겠다’고 난리였고요. 오늘 현장에선 어떤 돌발 상황이 있을지 모르겠네요.”

오전 10시. 간단한 브리핑이 끝나자 김정환(가명·30) 상담팀장이 이날 동행할 신고 사례를 설명했다. “할머니가 중학생, 초등학생 남매를 돌보는데, 아이들끼리만 지내서 보호가 안 되는 상황이라고 엊그제 신고가 들어왔다”고 했다. 우선 학교에서 해당 아동을 만나기로 하고, 김 팀장과 올해 경력 4년차인 박민주(가명·27) 상담원이 2인1조로 함께 차에 올랐다. 아동보호 전문기관을 출발한 차는 고속도로로 내달렸다. 이 기관에서 담당하는 시(市)는 총 4곳이다. 서울시의 3배에 달하는 면적을 상담원 9명이 담당한다. 지자체 담당 공무원에게 “아동 학대 사건이 이렇게 많으니 인력 예산을 지원해달라”고 몇 차례 설득한 끝에 그나마 올해 계약직 상담원 1명을 늘린 것이라고 했다.

신고 현장까지는 2시간 넘게 걸렸다. 학교 담당 교사의 도움을 받아 정예솔(가명·11)양을 상담실에서 만났다. 긴장한 모습이 역력한 정양은 “할머니가 가끔 다녀가시고, 중학생인 오빠는 집에 잘 안 들어와 혼자 지낸다”고 했다. “학교 끝나고 잠깐 같이 집에 가볼 수 있겠느냐”는 박 상담원의 말에 정양은 “문제없이 잘 지낸다”며 고개를 내저었다. “사는 동네까지만 같이 가보자”고 정양을 설득, 수업 후 만나기로 하고 돌려보냈다.

“만나면 술술 이야기하는 친구들도 있지만, 경계하는 친구들도 당연히 많아요. 여러 번 상담이 이뤄지고 라포(rapport·상호 신뢰)가 형성될 때까지 시간이 필요해요. 학대가 심한 경우에는 쉽게 털어놓지 않아요. 한 친구는 심하게 학대받은 흔적이 역력해 그룹홈으로 데려와 보호했는데, 자기가 가해자로부터 안전하다고 생각해서 ‘학대 상황’을 털어놓기까지 3년이 걸렸어요. 아동 학대 특성상 ‘물증’보다는 ‘심증’으로 판단, 움직이는 경우가 많아요. 그럼에도 아이들이 끝까지 ‘아니다’라고 하면 무조건 밀어붙이기엔 한계가 있는 거죠. 칠곡 계모 사건이나 울주 서현이 사건이 난 뒤에도 ‘왜 아이 말을 더 의심하지 않았느냐, 더 민감하게 반응 안 했느냐’고 하는데, 의심되니까 사례 종결을 안 시키고 끈을 잡고 있었던 거겠죠. 개입하면 ‘고작 그것 가지고 왜 부모와 아이를 분리시켰느냐’고 욕먹고, 개입을 안 하면 ‘왜 안 했느냐’고 비난받는 상황입니다.”(김 팀장)

서울시 3배 면적을 상담원 9명이 담당

응급 신고 하루 4건… 4~6월 특히 많아

대책 논의·현장 조사·서류 작업 등 바빠

심증만으론 사건 개입에 한계 있어

◇9명의 인력, 서울시 3배 면적… 현장까지 가는 데만 2시간

갑자기 상황이 급박해졌다. 김 팀장에게 긴급 사례 신고가 들어온 것. “예솔이는 아직 위험 요소가 크지는 않은 듯하니 우선 출동하고 다음에 다시 와야겠다”며 급히 회의 장소로 향했다. 경기도 무한돌봄, 드림스타트센터, 정신건강센터, 보건소, 시 행정공무원 등 지역사회의 보건복지 관계자들이 한곳에 모였다. 이 지역 드림스타트(보건복지부 취약계층 아동 맞춤형 통합 서비스 사업) 담당자의 브리핑이 시작됐다.

“아이들은 초등 1학년, 2학년 두 명이고, 남편은 집을 나간 지 몇년이 됐는데, 엄마가 알코올중독이 심합니다. 어제 저녁부터는 환청, 환각이 심해져서 이불이나 옷걸이를 보고 사람이라고 소리질렀다고 해요. 작은 딸아이 앞머리가 길다며 가위로 댕강 잘라버렸더라고요. 아이들은 밥 대신 생라면을 주로 먹고 있고요. 까딱하면 위험한 상황이라 주말 전에 긴급 분리를 취해야 할 것 같아서 연락드렸습니다. 아이들에게도 ‘엄마가 치료받고 빨리 나을 수 있게 잠깐만 떨어져서 지내자’고 잘 설명해둔 상태입니다.”

시 행정공무원이 기초생활보장 수급자 여부 및 등본 등 제반 서류를 확인하는 동안 ‘엄마의 정신병원 입원비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아이들이 생활할 곳은 어디로 할 것인가’ ‘엄마의 정신병원 강제 입원을 위한 가족의 동의를 어떻게 받을 것인지’ 등을 두고 단체 간 논의가 1시간 반가량 이어졌다. 학교를 마친 최진혁(가명·8)군과 최정아(가명·7)양과 함께 차를 타고 보육원으로 이동했다. 처음 묵묵히 상황을 받아들이던 아이들도 조금 멀리 이동하는 듯 싶었는지 “엄마가 보고 싶으면 어떡하느냐” “사진이라도 갖고 싶다”며 불안해했다.

보육원에 도착, “이제 여기서 한동안 생활한다”는 말에 어린 두 남매는 애써 눈물을 참았다. “알코올중독은 치료가 정말 어려워요. 제발 어머니가 빨리 나으셔서 다시 세 가족이 살 수 있어야 할 텐데요…. 학대·방임 아동이 처한 상황이 더 위험할지, 아니면 아이가 부모와 분리되면서 보육원이나 그룹홈 등에서 살게 될 상처가 더 클지 무게를 따져 봅니다. 결정을 할 때마다 마음이 저미는 순간이 한두 번이 아닙니다. 아이들이 무슨 죄인가요. 그냥 이 상황이 참 답답하죠.”(김 팀장)

◇턱없이 부족한 여건, 촘촘할 여력 부족해

다시 아동보호 전문기관으로 돌아오는 길. 금요일 저녁이라 고속도로는 꽉 막혀 있었다. 박 상담원은 “이번 주에 이렇게 시(市)를 왕복한 게 벌써 세 번째”라고 했다. 지난해 이곳에 접수된 신고 사례는 총 500여건. 2인1조를 고려하면 한 사람당 대략 최소 120차례 신규 사례 현장 조사를 나간 셈이다.

“지난해에도 방학 직전인 4~6월에 신고가 많더니 이번 달도 신고가 너무 많아 저희끼리는 ‘죽음의 사(死)월’이라고 불러요. 어제 들어온 응급 사례 신고가 4건이었고요. 아침에 출근해서 지난 누적 사례 관리하고, 다른 신규 사례 현장조사 나가고, 들어와서 저녁에 다른 사례 현장 나가는 식이에요. 현장 한번 나갈 때마다 전산망에 입력해야 하는 게 많은데, 시간이 없어서 새벽이나 주말에 해요. 이번 주에도 전 직원이 주말 출근해 사례를 전산 입력해야 합니다.”(김 팀장)

오전에 떠난 아동보호 전문기관에 다시 도착했을 때는 7시가 훌쩍 넘은 시간. 김 팀장은 차를 주차하기 무섭게 다른 직원이 운전하는 차 조수석에 올라타고 다른 현장으로 나갔다. “하루 24시간, 1년 내내 대체로 이런 일상이에요. 크리스마스 이브, 연말연시, 그런 날일수록 사건 신고도 많아요.”(박 상담원) “학대 재발 신고가 많게는 네 번까지도 들어와요. 기존 사례들을 철저히 관리하는 것만으로도 훨씬 더 많은 아동 학대 사건을 예방할 수 있을 텐데…. 새로운 사례들은 쏟아지고, 인력은 턱없이 부족하니 긴급히 신고된 사례들 처리하는 것만으로도 바빠 안타까워요.”(박 상담원)

“대체 이 일을 왜, 어떻게 하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다들 하루에도 그만둘지 말지 몇 번씩 왔다갔다 한다”며 박 상담원이 웃어넘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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