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5일(수)

비영리법인은 스스로 돈 벌면 안 된다고요?

비영리법인 수익사업의 면세 범위
“복지 관련없는 수익, 과세”
밀알복지재단이 운영하는 베이커리·미술관 수입에 강남구청이 재산세 추징
법원이 공익사업 인정해 “재산세 돌려줘야” 판결
비영리 수익사업 늘면서 법률 가이드·지식 부족해 투명성 논란 휩싸이기도

“강남구청은 밀알복지재단으로부터 추징한 3억4339만원을 모두 돌려주라.”

지난 1월 28일 밀알복지재단과 강남구청 간 ‘재산세 소송’을 둘러싼 1심 판결 결과다. 이 사건은 작년 6월 말 언론에 집중 보도돼 ‘비영리법인의 불투명성’ 논란을 일으킨 것으로, 그 결과가 주목받아왔다. 법원은 일단 밀알복지재단의 손을 들어줬다. 왜 그랬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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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알복지재단 베이커리·미술관 운영… 공익사업으로 인정받아

2012년 6월 강남구청은 밀알복지재단이 운영하는 밀알아트센터 현장 조사를 통해 “공익사업이 아닌 수익사업을 하고 있다”며 5년치 재산세 3억4339억원을 한꺼번에 추징했다. 현행법상 종교시설이나 사회복지 법인의 부동산에는 재산세와 취득세를 부과하지 않지만, 이 부동산을 이용해 수익사업을 하면 구청에 세금을 내야 한다.

밀알복지재단은 곧 “재산세 부과는 부당하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이에 서울행정법원은 “밀알아트센터는 특수학교 운영과 장애인 복지를 위한 홍보, 인식 개선이라는 고유 목적에 사용됐고, 일부 음악홀·카페·베이커리 등에서 매출이 발생했다는 사정만으로 수익사업으로 볼 수 없다”고 판결했다. 실제 밀알아트센터(지하 2층, 지상 4층)의 연간 매출액은 9억2870여만원(2011년)에 달하지만, 영업손실이 매년 3억원가량 발생했다.

이에 대해 강남구청 관계자는 “세금 감면은 비영리법인에 특혜를 주는 것이기 때문에 엄격하게 적용해야 하고, 비과세 건물에서 카페 운영·대관을 하는 건 본래 공익사업으로 볼 수 없다고 판단해 과세를 한 것”이라면서 “수익사업 과세 문제는 기준이 명백하지 않아 소송이 많은데, 이번 판결 이유를 검토한 뒤 검찰 지휘에 따라 항소 여부를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몰라서 세금 폭탄 맞는 비영리법인 많아… 법률 가이드 필요

문제는 밀알복지재단처럼 최근 카페·강좌 운영, 중고 물품 판매 등 수익사업을 하는 비영리법인이 늘고 있는 데 반해, 비영리법인의 과세 문제에 대한 전문가도, 법률 가이드도 제대로 갖춰져있지 않다는 점이다. 일부 비영리법인은 재산세·법인세 등 법률 지식과 노하우가 부족해, 세금 폭탄을 맞거나 투명성 논란을 빚기도 한다.

최근 교회 내 공간을 기부받아 카페를 운영하던 A 비영리법인은 문 닫을 위기에 처했다. “교회가 운영하는 카페는 종교와 무관한 수익사업”이라며 구청이 해당 교회에 재산세를 추징했기 때문. A 법인은 별도의 사업자 등록이나 신고 없이 교회와 협약을 맺고 카페를 운영하고 있었다. 도움을 주려다 탈세 논란에 휩싸인 교회는 곤혹스러워했고, A 법인은 재산세를 대신 납부한 뒤 다른 장소를 알아보고 있다. A 법인 회계 담당자는 “사회적 약자를 고용하고, 저렴한 가격에 판매하다 보니 다른 곳으로 옮겨 임차료를 부담하기엔 카페 판매금으로 충당하기 어려울 것 같아 걱정이다”고 했다.

◇수익사업 법적 절차 자문할 곳 적어

수익사업을 하려면 어떤 법적 절차를 거쳐야 하는지 자문할 곳도 적다. 비영리법인 실무자들은 “세무사·변호사 사무실에 자문하러 가도 사회적기업을 처음 들어봤거나, 비영리법인을 제대로 모르는 곳이 대부분”이라면서 “세금 추징 때마다 수익사업이냐 목적사업이냐를 두고 소송하는 건 비영리법인에 큰 부담”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유철형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는 “법리상 비영리법인이 해당 수익금을 소외계층을 위해 전부 사용해도, 무조건 면세 혜택을 받는 건 아니다”면서 “만약 수익사업을 하려는 비영리법인이 있다면 ‘시설을 주로 누가 이용하는지’ ‘시중 가격보다 얼마나 저렴하게 판매하는지’ ‘최소 운영 실비보다 영업이익이 얼마큼 많은지’ 등에 따라 판단된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면 좋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Tip! 비영리법인 수익 사업 법률가이드

Q 비영리법인이 카페, 베이커리, 상품 판매 등의 수익금을 전부 소외 계층을 위해 사용한다면 고유 목적사업으로 인정받을 수 있나?

A: 수익금이 고유 목적사업을 위해 쓰인다고 해서 무조건 면세 대상이 되는 것이 아니다. 해당 사업이 비과세 대상(법인세법 1조 1항 단서)인 고유 목적사업이 되려면 활동 범위·내용 등 다양한 요소를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Q 비영리법인의 고유 목적사업과 수익 사업을 구별하는 중요한 판단 요소는 무엇인가?

A: 먼저 정관을 살펴보라. 진행하는 사업들이 정관에 기재된 목적사업에 포함돼야 한다. 만약 정관에 없으면 주무 관청 허가를 받아 목적사업을 추가해야 한다. 이용 대상도 중요하다. 예를 들어 노인 복지 사업을 하는 비영리법인이 사업 대상과 상관없는 외부 사람들이 주로 이용하는 카페를 운영한다면 수익사업이 될 확률이 높다. 또한 대관료나 판매 금액이 일반 시중 가격과 비슷하거나 더 비싸면 수익사업에 가깝다. 반면 외부인으로부터 사용료를 받더라도 수익금이 건물 유지를 위한 운영 실비에 그친다면 세금 추징 위험을 줄일 수 있다.

Q 수익 사업에서 발생한 금액을 적립해뒀다가 목적사업에 사용할 경우 법인세를 내야 할까?

A: 법인세를 내지 않아도 된다. 비영리법인이 수익사업에서 발생한 이익금을 목적 사업에 사용하기 위해 적립해두는 것을 ‘고유목적사업준비금’이라고 한다(법인세법 제29조). 예를 들어 사회복지법인이 장애인 재활을 위한 건물을 매입하거나 치료 시설을 구입하는 경우 고유목적사업준비금을 활용할 수 있다. 법인세도 면제된다. 그러나 이자소득 외의 임대 사업과 같은 별도 소득 금액에 대해서는 50%만 적립할 수 있고, 적립한 때로부터 5년 이내에 고유 목적사업을 위해 지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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