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7일(금)

“공부하고 싶은데 책이 없어요”… 아프리카 소년 위해 만든 그림 산수책

산수책 만든 ‘웰던 프로젝트’
디자이너 조동희씨와 전문 자원봉사자 14명… 초등 저학년 타깃으로 제작
오는 27일, 산수책 400권… 아프리카 탄자니아에 전달

아프리카 아이들이 주인공인 ‘산수책’이 만들어졌다. 한국인의 손으로. 산수책의 주인공은 곱슬머리·흑갈색톤 피부의 아프리카 아이다. 이름은 디디에(Didier)로, 코트디부아르 출신 유명 축구선수인 디디에 드로그바를 연상시킨다. 사칙연산에는 기린, 파인애플 등 아프리카와 친숙한 소재가 이미지로 사용됐다. 넬슨 만델라·오바마 대통령 등 아프리카와 관련이 깊은 유명인들도 책에 소개됐다. 작년 여름, 책을 본 탄자니아 학교 선생님들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한 사립학교 교장은 200권을 구매하겠다는 의사를 밝힐 정도다.

디자이너 조동희(오른쪽)씨가 탄자니아 현지 NGO인 ‘그린리빙플래닛’의 대표(왼쪽)와 만나 산수책 공동판권 협약을 체결했다. /웰던프로젝트 제공
디자이너 조동희(오른쪽)씨가 탄자니아 현지 NGO인 ‘그린리빙플래닛’의 대표(왼쪽)와 만나 산수책 공동판권 협약을 체결했다. /웰던프로젝트 제공

이 산수책을 만든 건 한국의 디자이너 조동희(31)씨와 지인들이 속한 디자이너그룹 ‘웰던프로젝트(Well-done project)’다. 시작은 우물이었다. ‘거북이 등껍질처럼 갈라진 아프리카의 메마른 땅에 깨끗한 물을 줄 순 없을까’. 월드비전에서 자원봉사활동을 하던 디자이너 조씨는 2009년 사진·영상에 관심 있던 지인 4명을 모았다. 엽서 제작·판매, 네티즌 모금, 아티스트들의 텀블러 디자인 판매 수익 등 1000만원을 모아 콩고민주공화국에 식수펌프 1개를 만들었다.

두 번째 도전은 2010년 여름 방문한 잠비아 은테베학교에서 시작됐다. 교실이 모자라 밖에서 공부하고, 학교가 부족해 10㎞를 2~3시간 동안 걸어다니는 아이들을 보고, 조씨는 학교를 만들어주기로 결심했다. 잠비아 아이들의 그림으로 만든 티셔츠도 판매하고, 자신의 블로그(http://welldonep .tistory.com)에 ‘웰던프로젝트’ 이야기도 연재했다. 출장비로 사용하라고 1000달러를 쾌척하는 이도 있었고, 사진전 수익금을 기부하기도 했고(이준현 사진작가), 자선 공연을 여는 인디 밴드(게이트플라워즈)도 있었다. 후원금이 900만원 남짓 모였지만 역부족이었다. 10배나 되는 돈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이 프로젝트가 무산될 위기에 처했다.

대신 조씨는 15년 전 쓰인 아프리카 두 소년의 편지 한 대목에서 새로운 아이디어를 얻었다.

‘아프리카를 위한 수학책’을 만든 웰던프로젝트의 전문 자원봉사자들. /웰던프로젝트 제공
‘아프리카를 위한 수학책’을 만든 웰던프로젝트의 전문 자원봉사자들. /웰던프로젝트 제공
산수책 내용 중 ‘도형과 곡선’ 부분. 코끼리, 염소 등 아프리카 현지 풍경을 그려낸 점이 인상적이다. /웰던프로젝트 제공
산수책 내용 중 ‘도형과 곡선’ 부분. 코끼리, 염소 등 아프리카 현지 풍경을 그려낸 점이 인상적이다. /웰던프로젝트 제공

“학교 건물은 있지만 선생님과 책이 없어 공부는 꿈도 꾸지 못합니다.”(아프리카 소년 ‘야킨’과 ‘포드’의 편지 중)

학교는 못 지어도, 책은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아프리카 아이들을 위한 산수책(매시매틱스 북 포 아프리카·Mathematics Book for Africa)’ 만들기 프로젝트는 그렇게 시작됐다. 지인들의 추천을 받거나, 블로그를 통해 전문 자원봉사자 14명을 모집했다. 수학·유아교육을 전공했던 교사 3명은 영국, 호주, 케냐 등 해외 산수책을 벤치마킹해 콘텐츠를 개발했다. 직장인들은 일주일에 1~2번씩 온·오프라인 모임을 갖거나, 주말엔 3일을 합숙하면서 기획에 매달렸다. 아티스트 8명은 ‘아프리카 아이들을 위한 디자인’에 주력했다.

“산수는 그림만으로도 이해가 가능하니 저희가 잘할 수 있는 분야이고, 실생활에서 가장 유용하게 활용되는 과목이잖아요. 초등학교 1~3학년을 타깃으로 삼았어요. 딱딱하고 머리 아픈 산수책이 아닌, 재미있는 그림 산수책을 만들어보고 싶었어요.”

조씨는 후원금으로 만들어진 산수책을 공립학교에 단순 기부만하고 끝내기에는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구매력이 있는 아프리카 내 사립학교에는 적정한 금액(6000실링·4200원 정도)에 판매하고, 수익금으로 어려운 학교에 책을 무상으로 제공키로 했다. 이를 위해 탄자니아 현지 NGO인 ‘그린리빙플래닛(Green-living-planet)’과 공동판권을 갖고 운영한다. 120쪽가량의 산수책은 유네스코지속가능발전교육 공식프로젝트인 북스인터내셔널(Books international)과 협약도 맺었다. 지난달 16일부터 시작된 크라우드펀딩 모금에는 70명에 달하는 후원자가 참여했고, 네티즌들의 지지를 받으며 2주 만에 목표 200만원을 달성했다. ‘아프리카 아이들을 위한 산수책’ 400권은 오는 27일, 탄자니아로 날아갈 예정이다.

관련 기사

Copyrights ⓒ 더나은미래 & futurechosun.com

전체 댓글

제261호 2024.3.19.

저출생은 '우리 아이가 행복하지 않다'는 마지막 경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