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9일(월)

자살위기 청소년에 생명 소중함 알리고 맞춤형 치료까지

생명보험사회공헌위원회
작년 한 해 1만4160명 자살 매일 38.8명 꼴… OECD 1위
청예단 ‘솔루션 지원단’ 위기 청소년 가정을 위한 상담·모니터링 활동 펼쳐
한국건강증진재단 뮤지컬 통해 생명존중 알려
웹툰 ‘썬데이 상담소’ 자살 치유과정 뜨거운 반응

“일을 마치고 돌아와서 매일 먹던 혈압약 상자를 열었는데 약이 하나도 없더라고요. 순간 이상한 느낌이 들어 화장실 문을 열었더니 정태가 쓰러져 있었어요. 아이를 업고 병원으로 뛰어가던 그 순간만 생각하면….”

이정태(가명·18)군의 어머니 한영숙(가명·45)씨가 말을 멈췄다. 그녀의 눈에서 하염없이 눈물이 흘러내렸다. 이군은 1년 전 학교 일진과 말다툼을 한 이후 집단 따돌림을 당하기 시작했다. 주변에서 주먹이 날아오기 일쑤였고 몇몇 학생은 이군이 복도를 걸어갈 때마다 “더럽다”며 침을 뱉었다. 어느 날, 7명의 남학생들이 이군을 화장실로 끌고가 속옷을 벗기고 집단 폭행을 가했다. 이군은 자살을 시도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한씨가 학교와 경찰에 도움을 요청했지만, “학교 폭력을 입증할 만한 증거가 불충분하다”는 답변만이 돌아왔다.

청소년폭력예방재단‘솔루션 지원단’에서 위기 청소년 가정을 찾아 방문상담을 하고 있다. /문상호 기자
청소년폭력예방재단‘솔루션 지원단’에서 위기 청소년 가정을 찾아 방문상담을 하고 있다. /문상호 기자

◇자살 위기에 빠진 청소년 가족의 회복을 돕는다, ‘솔루션 지원단’

통계청이 발표한 ‘2012년 사망원인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자살 사망자수는 1만4160명이다. 매일 38.8명이 목숨을 끊는 셈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자살률 8년 연속 1위’라는 불명예스러운 기록도 세웠다. 청소년 자살 증가도 두드러진다. OECD의 아동청소년 인구 10만명당 자살자 평균은 2000년 7.7명에서 2010년 6.5명으로 감소한 반면, 한국은 6.4명에서 9.4명으로 무려 47%나 늘어났다. 정부가 2009년부터 2013년까지 약 85억원을 들여 자살 예방 사업을 진행했지만, 역부족이라는 지적이다. 안용민 ㈔한국자살예방협회 회장은 “자원봉사자 상담이나 모니터링, 자살 시도자 사후관리 등을 정부 혼자서 감당하기에는 한계가 있다”면서 “민간 차원에서 자살 예방 사업을 확산시켜나가기 위해서는 기업의 후원이 무엇보다도 절실하다”고 말했다.

이에 생명보험사회공헌위원회는 지난해부터 자살 예방 사업을 펼치는 비영리단체들을 지정법인으로 선정, 사업비와 운영비 등을 지원해왔다. 청소년폭력예방재단(이하 청예단)은 교보생명과 업무협약을 맺고 올해 1월부터 학교 폭력 자살 예방 프로젝트 ‘솔루션 지원단’을 운영하고 있다. 전국에서 접수한 학교 폭력 위기 상황 중 지속적인 관리가 필요한 청소년 가정을 선정, 최대 6개월 동안 맞춤형 치료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이군도 지난 5월 솔루션 지원단의 수혜대상으로 선정됐다. 현재 이군은 매주 1회 청예단에서 지정한 상담센터를 찾아 심리 상담과 약물치료를 받는다. 치료비는 매월 약 30만원씩 단체에서 제공한다. 청예단은 어머니 한씨와도 한 달에 한 번씩 전화 상담 또는 방문 상담을 갖는다. 한씨가 아들을 돌보면서 생긴 스트레스를 줄이기 위해서다. 최희영 청예단 학교폭력화해분쟁조정센터 팀장은 “법적 소송, 치료비 부담, 학교 전학 등의 문제로 피해 청소년과 가족이 육체적, 정신적 고통을 겪는다”면서 “지정법인 사업을 통해 상담 활동과 문제 해결을 위한 실질적인 지원을 함께 제공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솔루션 지원단은 다음 달 학교 폭력 피해 경험을 가진 위기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1박 2일의 심리 치유 캠프를 개최할 예정이다.

서울 동숭동 SH 아트홀에서 공연 중인 뮤지컬‘힐링하트: 꼬리 많은 남자’. /한국건강증진재단 제공
서울 동숭동 SH 아트홀에서 공연 중인 뮤지컬‘힐링하트: 꼬리 많은 남자’. /한국건강증진재단 제공

◇한국건강증진재단, 생명의 소중함을 전파하는 다양한 캠페인 펼쳐

16일, 서울 동숭동 SH아트홀의 ‘힐링하트: 꼬리 많은 남자’ 공연 현장. 한 여자 배우가 갑자기 소리쳤다.

“나 오늘 이곳에서 죽을 것이에요. 한 사람의 눈에 들기 위해 그렇게 노력했는데, 이제는 다 필요 없어!”

유쾌한 분위기가 이어지던 공연장에 일순간 긴장감이 돈다. 관객 280여명의 시선이 일제히 여자 배우에게 쏠렸다. “미안해요, 내가 그때는 말이 심했어요. 이렇게 무릎 꿇고 사죄할게요.” 남자 배우의 다급한 목소리가 공연장에 울려 퍼진다. “나도 여배우의 마음을 알 것 같아. 그래도 자살은 옳지 않은 것 같은데….” 공연을 지켜보던 한 남성이 굳은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힐링하트는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는 방법과 생명사랑의 메시지를 전하고자 한국건강증진재단에서 제작한 뮤지컬이다. 한국건강증진재단은 2012년부터 삼성생명과 업무 협약을 맺고 생명보험사회공헌위원회 지정법인으로 활동하는 중이다. 허용 한국건강증진재단 사무총장은 “지정법인에 선정된 후 누구나 쉽게 생명존중을 알 수 있는 다양한 콘텐츠를 기획하고 있다”고 답했다.

온라인을 통한 인식개선 캠페인도 함께 진행했다. 8월부터 10월까지 네이버에서 자살 인식개선 웹툰 ‘썬데이 상담소’를 연재했다. 웹툰작가 신태훈·남지은씨가 참여해, 청소년이 자살을 생각하게 되는 요인과 그 치유과정을 10회에 걸쳐 이야기했다. 3개월 동안 1036만건 이상의 클릭을 기록할 정도로 뜨거운 반응이 이어졌다. 이달 5일에는 서울시, 삼성생명과 함께 한강대교에 ‘생명의 다리’를 조성했다. 마포대교에 이어 두 번째다. 생명보험사회공헌위원회 김규복 위원장은 “‘생명에 생명을 더하다’라는 위원회의 모토에 부합하도록, 앞으로도 자살 예방 사업을 지속적으로 확대해 생명존중 사상 전파에 힘쓸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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