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8일(토)

“나눔이 주는 감동, 30년 후원 원동력이죠”

창립 65돌 맞은 초록우산어린이재단, 명예의 전당에 오른 특별한 후원자들을 소개합니다

초록우산어린이재단은 1948년 10월, 미국 기독교아동복리회(CCF) 지원에 힘입어 탄생한 이후 지금까지 국내 아동복지의 큰 축을 이끌어왔다. 현재 국내외 5만여 명의 아동을 경제적으로 후원하고, 55만명의 아동에게 교육과 돌봄을 제공하는 힘의 원천은 24만명의 정기후원자다. 초록우산어린이재단은 올해 창립 65주년을 기념해 어린이들의 꿈을 지켜온 장기·고액·특별 후원자 92명을 ‘명예의 전당’에 올렸다. 이 중 ‘가장 특별한 나눔’을 실천한 특별후원자 12명을 소개한다. 편집자 주


주선영 기자
주선영 기자

연예계에서 ‘흔들림 없는 나무’같은 이들이 있다. ‘국민 아버지’,’국민 개그맨’이란 호칭이 자연스러운 탤런트 최불암(71)과 개그맨 이홍렬(59). 데뷔한 지 30여년이 훌쩍 넘은 두 중년 연예인의 또 다른 공통점은 초록우산어린이재단과 반평생을 함께해 온 것. 각각 81년과 86년부터 맺어온 인연이 30여년간의 후원으로 이어져, 지난달 10일 초록우산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올렸다. 이들을 나눔으로 이끈 힘은 무엇이었을까.

“애초에 잘못 끌려왔지(웃음). 81년에 전원일기에서 내가 금동이를 입양했는데 감동했다는 팬레터를 엄청나게 받은 거야. 작가의 펜 끝에서 한 건데 ‘최불암이 훌륭한 일 했다’ 하니까 마음의 짐이 되더라고. 그러다 누가 권유해서 어린이재단에 후원을 시작하게 됐어. 그때부터 어린이재단 전국후원회장이 됐지.”

‘비영리단체 홍보대사’라는 개념도 드물었던 시절. 효과는 엄청났다. 소문이 나면서 전원일기 출연진들, 출연진의 식구들, 식구의 지인들까지 후원이 파도에 파도를 타기 시작한 것. 초록우산어린이재단을 설립·지원한 미국의 기독교아동복리회(CCF) 본부에서 갑작스럽게 후원금액이 급증하는 것에 놀라, 84년에는 최불암씨 부부를 미국으로 일주일간 초청해 강연을 요청할 정도였다. “당시 미국에 가서 충격을 많이 받았어. 한 미국인 부부가 한국 아이를 입양해 20년간 키우고 있는데 애가 간질이 심한 거야. 우리나라만 해도 그나마 입양한다고 하면 예쁜 딸을 찾잖아. 놀라서 ‘다른 나라에서, 그것도 이렇게 질병이 있는 친구를 일부러 입양한 이유가 뭐냐’ 물으니 ‘어려운 아이들일수록 도와야 하는 사명이 더 커진다’ 하더라고. 뭐 이런 나라가 다 있나 싶었지. 사람들한테 물어봤어. 사람들이 십시일반으로 CCF를 후원해서 한국같이 가난한 나라를 돕는 힘이 뭐냐고. ‘휴머니즘 정신’이라면서 ‘문화라는 것을 바꾸는 데 연예인이 앞장서지 않으면 절대 안 된다’고 덧붙이더군. 내가 해야 할 일이 이거구나 싶었지.”(최불암)

“저도 선배님이 하고 계시니까 ‘여긴 무조건이다’ 했죠.” 이홍렬 홍보대사가 후원을 시작하게 된 이유다. 1986년 당시 한국어린이재단(초록우산어린이재단의 전신)에서 개최한 소년소녀가장돕기행사에서 사회를 보고 받은 10만원이 못내 맘에 걸려, 아이 둘을 후원하기로 한 것. 두 명으로 시작한 후원 아동은 지난 30년간 하나둘씩 늘어나 이제는 후원 아동만도 100명, 누적 후원금은 1억3000여만원에 달한다. 이제는 ‘홍보대사’보다는 ‘펀드레이저(모금가)’가 더 잘 어울리는 그다. 98년에 홍보대사로 위촉된 이후, 전국을 돌며 기부특강 펀도네이션을 해 후원자를 발굴해 온 게 어느덧 75회째. 1년에 한 번씩 가수들 모아 공연도 하고 귀중품 경매를 하는 락락페스티벌은 올해로 9년째다. 아프리카 남수단에 아이들 통학을 위한 자전거를 보내는 후원금 모집을 돕겠다며 국토종단을 시작, 목표액 1억원을 훌쩍 넘은 3억원을 모금하기도 했다. “락락페스티벌 경우에는 처음에는 작게 생각했어요. ‘친한 애들 몇명 불러서 물건 팔고 한 500만원이라도 만들어서 기부하면 그게 어디냐’ 했는데, 그게 판이 점점 커진 거죠. 9년째 되니까 도와준다는 후배들이 많아요. 우린 절대 돈 안 준다고 미리 얘기하는데 공짜로 왔다가 자기들이 나눔 분위기에 더 고무되기도 하죠. 노사연씨는 스웨터 팔려고 가져왔다가 450만원에 팔려서 기부하니까 감격의 눈물 흘리기도 하고, 박상민씨는 결혼식 축가 경매를 내걸어서 200여만원에 팔기도 하고…. DJ DOC는 준비를 안 해왔다가 분위기에 취해서 자기들이 쓰던 야구 방망이, 글러브 가져오고 난리였어요. 이런 순간들 보면 참 흥분되고 감격스럽죠.”(이홍렬)

30여년의 세월을 기리듯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올린 게 이들에겐 어떤 의미였을까. “연예인들이 더 나눠야 해. 인기를 위해서가 아니라 TV 안방으로 우리를 보내주는 의미를 생각해봐야지. 그러고 보면 우리가 참 시대를 잘 만났다고 봐.”(최불암) 이어 이홍렬씨가 말을 이었다. “지난 연예계 생활 35년을 뒤돌아보니 가수는 옛 노래로 남고, 연기자는 배역이 남는다 생각하니 참 부럽더라고요. 개그맨인 내가 그나마 남긴 게 뭘까 생각하니, 지금까지 후원해온 게 매우 고마운 거예요. 이게 없었으면 어쩔 뻔했나…. 원래 연예인들이 재능기부를 하면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큰 힘을 발휘하거든요. 내가 잘나서가 아니라 35년간 받은 사랑으로 해올 수 있었던 거죠. 앞으로도 제 자리에서 더욱 노력해야죠.”

一生 일생

우간다에 전 재산 기부한 진순자 할머니

미상_사진_후원자_진순자할머니_2013

농사, 군밤장사, 노점상, 파출부…. 진순자(74) 할머니는 손가락조차 제대로 펴지 못한다. 평생을 이어온 고역 탓이다. 새벽 2시 이전에 집에 들어간 날을 손에 꼽을 정도다. 그렇게 모은 전 재산은 1억800만원. 할머니는 “너무나 힘들게 모아 한 푼도 허투루 쓸 수 없는 돈”이라고 한다. 그 귀한 돈이 향한 곳은 아프리카 우간다의 빈곤 아동들. 할머니는 작년 1월, “제3세계 어린이들의 배움을 위해 써달라”며 전 재산을 기부했다. 진순자 할머니는 “어릴 적 전쟁을 겪고 나서 해외에서 원조받은 돈으로 배웠는데, 나도 힘든 나라 아이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었다”며 “살아생전에 직접 아이들을 만나 ‘공부 열심히 하라’며 머리도 쓰다듬어주고 싶다”고 말했다.

미상_사진_후원자_박춘자할머니_2013

20년간 山에서 번 돈 나눈 박춘자 할머니

박춘자(85) 할머니는 ‘구두쇠’로 불렸다. “돈밖에 모른다”는 말도, “참 억척스럽게 산다”는 말도 들었다. 불행한 결혼생활을 겪은 할머니는 홀로된 이후 악착같이 돈만 벌었다. “경부고속도로를 짓던 시절, 공사현장에 식당을 차리고 거친 인부들 상대로 장사했어요. 그때 모은 돈으로 남한산성 꼭대기에 매점을 하나 냈죠. 산꼭대기에 짐꾼을 부르면 돈을 더 줘야 해서 재료들을 직접 머리에 이고 날랐어요. 20년 동안 매일 산에 올라 등산객들에게 김밥이나 도토리묵 같은 것을 팔았죠.” 3억원이 모였다. 인근 은행에선 수차례 “펀드에 투자하라”고 권했다. 2008년, 할머니는 그 돈을 초록우산어린이재단 계좌로 입금했다. 박춘자 할머니는 “배움은 때가 중요한데, 돈 없어서 공부를 못하면 어쩌냐”며 “하도 고생을 해서 그런지 고생하는 사람부터 먼저 돕고 싶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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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모은 돈 20억 기탁, 송부금 할머니

송부금(74) 할머니에게 나눔은 일상이다. 반찬값을 아낀 돈으로 기부를 했고, 자식을 낳으면 소외 아동과 결연후원을 맺었다. 할머니는 “자식이 다섯이라 현재 후원하는 아이도 다섯 명”이라고 한다. 2007년, 평생을 장애로 힘들게 살아온 동생 송순금씨가 생을 마감하자, 동생의 유산에 자신이 평생 모은 돈을 보탠 20억원을 기탁했다. 이유는 단 하나. “행복하기 때문”이다. “지금은 우리 가족 모두 나누며 살아요. 온 가족이 행복하고 화목해요. 나눔은 남이 아니라 스스로를 돕는다는 것을 느낄 때가 정말 많습니다.

實踐 실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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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 194명 지정결연 맺은 김정실 회장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 김정실(58) 한글과컴퓨터 회장의 나눔 실천이 이와 같다. 재미교포였던 김 회장은 1996년 2월 TV를 통해 국내 소년소녀가장들의 힘든 현실을 접하고, 아이들을 돕기로 결심했다. 같은 해 아동 194명과 지정결연을 맺어 매월 6000만원씩 어린이재단에 후원하고 있으며, 복지기금 관리를 통해 매월 약 400여명의 아동이 자립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중증장애아동시설 한사랑마을에 대한 기자재 지원활동, 장학금 전달 등도 병행한다. 2011년 3월까지 어린이재단을 통해 후원한 누적금액은 32억원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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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념일에 기부하는 여인, 송경애 사장

기업체 전문여행사 SM C&C 송경애(52) 사장의 별명은 ‘날마다 기부하는 여자’다. 결혼기념일, 회사 20주년, 생일 등의 기념일을 나눔으로 축하한다. 자신의 블로그 방문자 수가 1만명 증가할 때마다 장애인시설에 휠체어를 기증하기로 해, 벌써 17대나 기증했다. “저는 기쁜 날에 맞춰 기부해요. 기부는 누군가에 대한 연민이 아니라, 저에게 주는 선물이니까요.” 송 사장의 두 아들 역시 학교 기숙사에서 동료 외국인 학생들에게 컵라면을 팔아 5000달러 이상을 기부했다. 회사 임직원들도 ‘나눔펀드’를 조성해 급여의 1%를 좋은 일에 쓴다.

遺志 유지

장애아동 사랑의 한평생, 故김계자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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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故) 김계자씨는 홀트아동복지회, 다니엘복지원, 한사랑마을 등을 거치며 평생 장애아동의 손발 역할을 해왔다. 24시간 살펴야 하는 중증 장애아동들을 휴일이나 명절도 없이 보살폈다. 1999년 유방암 진단을 받았을 때도 아이들에 대한 헌신은 계속됐다. 2002년 6월, 증상이 급속도로 악화되자 모든 연락을 끊고 은신했다. 주변에 짐이 되기 싫어서였다. 5개월이 지났을 무렵, 어린이재단 앞으로 한 통의 편지가 왔다. “내 전 재산인 아파트를 중증장애아동에게 사용해 달라”는 김씨의 유언이었다. 소외된 이웃을 향한 사랑과 헌신이 ‘한평생’만으로는 모자랐나 보다.

작은방에서 큰 나눔 퍼뜨린 故김우수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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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1년 9월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난 고(故) 김우수씨. 그는 생전에 “빛 한 조각 들지 않는 좁은 고시원 방이지만 후원하는 아이들 사진이 있어 항상 훈훈하다”고 말해왔다. 김씨가 세상에 던지고 간 메시지는 확실했다. “남을 돕는 것은 여유가 있을 때만 하는 게 아니다”라는 것. 김씨는 중국집 배달부로 일하며 받은 70만원으로, 5명의 불우어린이를 정기후원했다. 종신보험에 가입하며 수혜자를 어린이재단으로 지정하기도 했다.

繼承 계승

양애자 할머니 / 우한곤 회장 / 차상정 할아버지
양애자 할머니 / 우한곤 회장 / 차상정 할아버지

자신 명의 아파트 기부한 양애자 할머니

“택시 대신 지하철 타면서, 그 돈을 모아 좋은 일에 쓰셨죠. ‘쓰고 싶은 거 다 쓰면서 좋은 일 못한다’고 하셨어요. 2남4녀의 형제자매 모두 어머니를 보면서 그런 삶을 살려고 노력합니다.”

양애자(90) 할머니의 막내딸 정인숙(55)씨의 말처럼, 할머니의 나눔은 가족들에게 고스란히 전해졌다. 지난해 10월, 초록우산어린이재단은 양애자 할머니 명의의 35평 아파트(서초구)를 기부받았다.

정씨는 “어머니는 아파트를 살 때부터 좋은 곳에 기부하겠다는 뜻을 수차례 밝혔다”며 “2010년 어머니 건강이 나빠지면서 더이상 기부를 미뤄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 끝에 오랜 인연을 맺은 어린이재단에 기부하기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가족 3대 모두 나눔 실천하는 우한곤 회장

나눔의 온기는 가족들 손에서 손으로 이어진다. 우한곤(70) 더베이직하우스 회장 가족이 대표적이다. 재래시장 속옷 장사로 시작해 부산의 대표적 기업가로 성장한 우 회장은 힘겨웠던 어린 시절을 기억하며 통 큰 나눔을 펼쳐왔다. 1987년부터 도왔던 아동, 노인, 장애인 수만 1300여명에 이를 정도. 부인에서 아들·딸로, 며느리로, 사위로, 손자로 3대에 걸친 10명의 가족이 어린이재단에 후원한 금액은 이미 10억원에 이른다.

부인 뜻 기린 주택 기부, 차상정 할아버지

차상정(72) 할아버지는 먼저 떠난 부인의 마지막 뜻을 기렸다. 할아버지의 부인은 장애아동이나 무의탁 노인을 위한 봉사활동에 특히 각별했다. 2001년 부인을 먼저 보낸 차 할아버지는 2003년 8월, 부인과 함께 살던 주택(쌍문동)을 기부했다. “열심히 봉사하던 아내의 뜻을 기려 좋은 일에 써달라”는 의미였다.

최태욱 기자

주선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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