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30일(화)

[전통시장 사회공헌 분석 ②kt 전자화폐 ‘주머니’] “전자화폐로 장사 잘될 줄 알았는데… 아무도 몰라요”

누구나 휴대전화만 있으면
송금·결제한다던 ‘주머니’ 새마을시장엔 8곳만 가입

상인·고객용 사용 복잡한데 kt, 설명은 딱 한 차례 진행
상인은 결제 기기 내버리고… 손님은 “상품권이냐” 되물어

kt “젊은층 위한 결제 기술… 주머니, 사용 어려운 점 인정”

전통시장에 정보통신기술(ICT) 바람이 불고 있다. 현 정부가 ‘전통시장 살리기’와 ‘창조경제’를 주요 국정 과제로 발표하면서부터다. 이에 기업들의 업과 특성에 따른 다양한 ICT 기기가 전통시장에 보급되고 있다. 이에 더나은미래는 ‘전통시장 사회공헌 분석 시리즈’ 두 번째로, kt의 사회공헌 현장을 찾았다. 편집자 주


작년 10월, KT가 지원한 '주머니(ZooMoney)' 서비스는 상인에게도 고객에게도 외면받는‘무용지물’이 되어있었다. 기자가 찾은 잠실 새마을시장은 60여곳의 상점 중 8곳만 '주머니' 스티커가 붙어 있었다. /주선영 기자
작년 10월, KT가 지원한 ‘주머니(ZooMoney)’ 서비스는 상인에게도 고객에게도 외면받는‘무용지물’이 되어있었다. 기자가 찾은 잠실 새마을시장은 60여곳의 상점 중 8곳만 ‘주머니’ 스티커가 붙어 있었다. /주선영 기자

지난달 26일, 잠실 고층 아파트촌에 둘러싸인 새마을시장은 낮에도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시장 중앙골목을 따라 약 200여 미터를 들어갔다. 상점 60여곳 중 ‘주머니(ZooMoney)’ 가맹점 스티커를 붙인 집은 고작 8곳에 불과했다. 설치한 지 이제 1년. 작년 한 해 언론을 통해 ‘ICT를 통한 전통시장 혁신 사례’로 대대적인 광고가 이뤄졌던 것에 비하면 너무도 적은 수의 가게만이 ‘주머니’를 기억하고 있었다.

◇열어보니 텅 빈 주머니… 상인도 몰라, 단골도 몰라

지난해 5월, kt는 전통시장 활성화를 위해 휴대폰만 있으면 송금과 결제가 가능한 선불형 전자화폐 서비스 ‘주머니(ZooMoney)’를 출시했다고 발표했다. 남대문시장과 잠실 새마을시장에 주머니 서비스를 보급했다. 현금결제 비중이 80%에 달하는 전통시장에서, 신용카드나 현금이 없어도 스마트폰으로 결제할 수 있는 방식을 도입하겠다는 것. 전통시장에서 만난 상인들은 1년 동안 제공된 주머니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새마을시장에서 9년째 야채가게를 하는 김복남(가명·62)씨는 ‘주머니’가 ‘kt에서 설치해 줬던 결제시스템’이라는 것을 생각해내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주머니(ZooMoney) 스티커를 가리키며 “주머니로 결제할 수 있느냐”고 물었다. 김씨는 “비닐봉지로 어떻게 결제를 하느냐”며 몇 차례 되물었다. 김씨는 “작년에 설치한 뒤로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써본 적이 없고, 그걸로 결제한다는 사람도 못 봤다”면서 “주머니 결제를 위해 필요한 QR코드 찍는 기기는 이미 버린 지 오래”라고 했다. ‘주머니’가 생소하기는 시장 단골들도 마찬가지였다. ‘잠실 토박이’라 새마을시장에 수십년째 온다는 최정오(55·송파구)씨는 “‘주머니’가 온누리 상품권 같은 거냐”고 물었다.

◇시장을 위한 주머니? kt를 위한 주머니?

전통시장의 주 고객인 장년층이 사용하기에는 ‘주머니’ 시스템 자체가 복잡하고 어렵다는 문제도 지적됐다. 주머니 결제 서비스를 이용하려는 소비자는 일단 스마트폰으로 ‘주머니’ 앱을 내려받고, 회원 가입과 동시에 형성되는 주머니 가상계좌에 일정 금액을 별도로 입금해야 한다. 구매자가 주머니 앱을 실행시키고 화면에 QR코드를 띄우면, 시장 상인들은 kt로부터 지급받은 기계에 상품 금액을 입력한 뒤 바코드처럼 QR코드를 찍어야 한다. 견과류 상점 주인 김숙자(가명·43)씨는 “현금이나 카드로 결제하면 간단한데, 어떤 소비자가 앱을 깔고, 주머니 계좌에 입금하고, QR코드까지 화면까지 띄워가며 계산을 하겠느냐”면서 “애초부터 고객이나 상인 모두에게 복잡하게 설계된 실효성 없는 서비스”라고 비판했다. 분식집을 6년째 운영하는 한미정(가명·60)씨는 “kt에서 처음에 QR코드 기기를 보급한 뒤 사용법을 딱 한 번만 설명해줘서, 대부분의 상인이 주머니 사용법을 모른다”면서 “나도 주머니로 결제하려면 아들한테 전화해서 물어봐야 한다”고 했다.

7년째 반찬가게를 해 온 김지명(가명·58)씨는 “처음엔 대기업이 해준다니까 고객들이 많이 이용할 거라 기대하고 얼른 달았는데, 그게 아니었다”고 했다. 정육점 주인 김지민(가명·43)씨는 “시장에 정말 필요한 게 무엇인지 상인들 몇 명만 직접 만나서 물어봤다면, 시장 수익에 도움되는 더 좋은 지원책이 나왔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kt “IT서포터즈 교육 등 더 노력할 것”

kt가 전통시장 사회공헌으로 주력하는 것이 또 있다. 전통시장 상인들에게 인터넷과 스마트폰 등 정보통신기술 활용교육을 진행하는 것. 서울 동대문구 신설동에 있는 풍물시장은 kt가 2010년부터 ICT 활용교육을 진행해 온 곳이다. 한 회에 20명씩, 일주일에 네 번에 걸쳐 이뤄지는 교육은 일 년에 두 차례씩 이뤄졌다. 풍물시장에서 공예품을 판매하는 전진현(여·48)씨는 “그동안 컴맹이었는데 이제는 트위터와 페이스북 정도는 능숙하게 사용한다”며 “좀 더 익숙해지면 옥션이나 지마켓에서 물건을 판매해 볼 생각”이라고 했다. 한편, 상인회에서 활동하는 김진호(가명·57)씨는 “상인 중에 어르신이 많아 열심히 교육받는 사람들을 빼면 호응이 크지 않고, 교육 자체가 당장 매출 증대로 이어지지는 않을 것”이라면서도 “열심히 해서 좋은 성과를 내는 분이 한둘씩 나오면 시장 전체에 자극이 될 것”이라고 했다.

이에 대해 kt 관계자는 “‘주머니’가 젊은 20~30대를 타깃으로 한 기술이다 보니 전통시장에서 실효성을 내기에 부족한 면이 있었던 것 같다”면서 “전통시장 상인들을 대상으로 한 IT교육이 온라인 판로를 형성하고 소비자와 쉽게 만날 수 있도록 돕는 등 전통시장 활성화에 기여하기 위한 방법들을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문상호 기자

주선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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