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30일(화)

[전통시장 사회공헌 분석 ①롯데백화점] 상생협약 후 6개월… 여전히 인적 드문 전통시장

손님 끌기 마케팅전략으로 전통시장 응원 메시지 담아 상인들에게 나눠준 카네이션…
경품 뽑기 이벤트도 잠깐 북적이고 마는 일회성 약수시장 상인들 불만
백화점측 “좋은 취지로 지원했지만 아직 미흡한 부분 인정해 시간이 필요한 문제”

기업들이 너도나도 전통시장으로 몰려가고 있다. 정부의 ‘전통시장 살리기’ ‘상생협력 생태계 조성’과 같은 정책 방향 흐름을 타고 사회공헌 대상으로 전통시장을 찾는 것. 중소기업청에 따르면 2002년부터 올해까지 전통시장 현대화 사업에 들어간 비용은 국비 1조5451억원을 포함해 2조8186억원. SKT, LG유플러스, KT와 같은 통신 3사를 비롯하여 삼성SDS, 이마트, 하나은행 등 업종을 불문하고 전통시장 사회공헌에 나섰다. 조선일보 더나은미래는 연속 시리즈로 기업의 전통시장 사회공헌을 조망한다. 그 첫 회는 롯데백화점이다. 편집자 주


서울 중구 신당동 약수시장의 모습. 약수시장 상인들은 롯데백화점의‘이벤트성 지원’에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주선영 기자
서울 중구 신당동 약수시장의 모습. 약수시장 상인들은 롯데백화점의‘이벤트성 지원’에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주선영 기자

중구 신당동 남산타운 아파트 쪽에서 약수시장으로 들어서는 골목 초입. 환하게 불을 밝힌 커다란 할인마트 앞에서 마이크를 든 점원이 손님 유치에 한창이었다. 할인점을 지나 시장 골목을 따라 200m쯤 걸어내려 오자 또 다른 농수산물 직거래 마트가 눈에 들어왔다. 한산한 골목엔 장 보는 사람 대신 오가는 차로 북적였다. 지난달 26일 오후에 찾은 서울 중구 신당동 약수시장이다. 약수시장이 생긴 건 50여년 전. 신당동 매봉산 기슭에 달동네가 생기면서다. 20여년 전까지만 해도 ‘어깨가 치일 정도’로 북적였던 시장이 쇠퇴하기 시작한 건 90년대 후반, 인근 지역 재개발로 달동네가 허물어지고 아파트가 들어서면서 대형마트에 손님을 잃어갔다. 이제는 60여개 점포가 얽힌 골목 구석구석에 남아 시장의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약수시장을 위해 롯데백화점이 지원군 역할을 자처하고 나섰다. 올해 4월 2일, 롯데백화점은 기업 사회공헌 프로그램의 하나로 전국 8곳 전통시장과 ‘전통시장 상생발전 협약식’을 맺고, 전통시장 지원을 위해 기금 총 50억을 조성했다고 밝혔다. 백화점 한 점포당 한 시장을 맞춤 지원하는 방식으로, 점차 전국 31개 지점으로 늘리겠다는 계획도 발표했다. 약수시장이 롯데백화점 본점과 상생발전협약을 맺고 지원이 이뤄진 지 6개월. 롯데백화점의 전통시장 사회공헌 현주소를 점검했다.

◇’필요한 것’ 말고 ‘내가 잘하는’ 생색내기식 사회공헌

롯데백화점이 강조한 것은 업의 특성과 재능을 살리겠다는 것. 일반 마트나 백화점보다 위생이나 서비스 역량이 부족한 전통시장에 백화점이 가진 서비스와 마케팅 노하우를 전수하겠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많은 상인이 서비스 교육이 시장 활성화로 이어지느냐에 대해 회의적인 목소리를 높였다. 닭튀김집 사장 김상주(가명·52)씨는 “약수시장의 가장 큰 문제는 이 시장 주변으로 공판장이니 수퍼마켓 같은 큰 마트가 6개나 있어 손님 자체가 없는 것”이라며 “이런 상황에서 서비스 교육을 듣는 게 전통시장 살리기랑 무슨 관련이 있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김씨는 “어느 날부터 도와주겠다며 들어와 갑자기 교육을 들으라고 하는데, 혼자 장사하는 사람이 오후 시간에 가게를 비운다는 게 말이나 되느냐”고 덧붙였다.

사람들을 끌어들이기 위한 마케팅 전략으로, 상인들에게 나눠준 물품이나 행사도 별 도움이 못 됐다. 27년간 야채 가게를 운영해 온 박춘녀(가명·64)씨는 “롯데백화점이 나눠준 건 비닐봉지 300장이랑, 어버이날이라고 떡 조금이랑 카네이션, 고객들 나눠주는 끌차, 앞치마 정도였다”며 “처음에 마을 지도를 찍었을 때는 좀 굴러다니고 하더니 요새는 지도 보고 오는 사람 한 명도 못 봤다”고 했다. 40년여간 약수시장에서 가게를 운영해온 한정녀(가명·76)씨는 “평소 워낙 시장이 한산해서 롯데백화점에서 와서 사은품 주고 뽑기 행사 하고 할 때면 시장이 북적거려서 좋긴 좋았다”면서도 “그런 이벤트로 모이는 인원은 한때”라고 덧붙였다. 또 다른 상인 박모씨(가명·49)는 “비닐봉지에 ‘롯데가 전통시장을 응원합니다’크게 써 붙여서 300장 주는 게, 롯데 홍보하는 거지 전통시장 살려주는 거냐”며 “오면 떡이나 돌리고 별것 없으니까 이제는 그냥 ‘오면 오나 보다, 가면 가나보다’ 하고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고 했다.

미상_그래픽_사회공헌_상생협약_2013

◇편중된 지원, 불만 만들기도 해

몇몇 가게에만 국한된 롯데백화점의 지원으로 전통시장 공동체 내엔 감정의 골까지 만들어져 있었다. 15년째 약수시장에서 방앗간 집을 하는 김현숙(익명·60)씨는 “시장을 지원하는 게 아니라 홍보용 몇 가게를 잡아서 내세우는 것 같다”며 “여기 시장에 방앗간 집만 대여섯곳이 넘는데 추석 며칠 전에 롯데백화점에서 20여명이 우르르 와서는, 자기들이 개조해준 방앗간 집에서만 참기름을 사갔으니 다른 상인들은 은연중에 불만이 쌓이는 게 당연하지 않겠느냐”고 했다. 수십 년째 약수시장 단골인 정윤희(가명·60)씨는 “롯데백화점 활동이 가게 매출에 얼마나 차이를 미치는지는 몰라도 편중된 것은 사실”이라며 “정말로 재래시장 활성화가 목적이면 그런 방식은 잘못됐다”고 했다.

롯데백화점 관계자는 “일회성 금전 지원보다는 백화점이 가진 노하우를 전수해 의지가 있는 분들이 자립할 수 있게 도와주자는 좋은 취지에서 지원한 것이었는데, 아직 미흡한 부분도 있는 것 같다”며 “모든 부분을 한 번에 만족하게 할 수는 없는 만큼 시간이 필요한 문제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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