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9일(월)

“사회적기업에서 산 것처럼 해달라”… 실적쌓기에 막힌 공공시장

공공시장 우선구매 제도 허와 실
사회적기업 유통 판로·자생력 위해 실시돼 작년부터 구매실적 의무화… 기관평가 반영
“공공기관이 터무니없는 납품가 요구… 조달청 입찰 등록도 어려워 ‘그림의 떡'”

각 기관에 식자재를 보급하는 사회적 기업 H사는 얼마 전 건강식품을 취급하는 한 기업으로부터 황당한 전화를 받았다. “A공공기관에 건강식품을 납품하기로 했는데, 우리는 사회적기업이 아니다. 대신 수수료를 떼줄 테니 H사에서 납품한 것처럼 해줄 수 있느냐”는 문의였다. 작년 8월 공공기관에서 사회적기업 제품을 구매한 실적을 보고하는 것이 법으로 의무화되면서, 사회적기업 제품 구매 실적을 늘리기 위한 ‘꼼수’였다. H사 대표는 “일반기업 제품을 구매하면서 사회적기업에서 산 것처럼 하고, 단순히 제품구매 실적을 늘리려는 경우가 많다”며 “이런 식으로 공공기관 우선구매제도가 이루어진다면 사회적기업이 장기적으로 지속가능할 수 있겠느냐”고 답답함을 토로했다.

‘공공시장 우선구매 제도’는 사회적기업의 생산품과 서비스를 공공기관에서 우선으로 구매하도록 하는 제도다(사회적기업 육성법 제12조). 사회적기업의 유통 판로를 지원하고 자생력을 갖출 수 있도록 돕기 위한 목적에서 실시되고 있다. 애초에는 권고수준이었으나, 작년 8월부터 구매실적 공고가 법으로 의무화되고 제품구매 실적이 공공기관 경영평가에 이용되면서 사정이 달라졌다. 지난 4월 말, 고용노동부는 “작년 한 해 504개 공공기관은 1916억원 규모의 사회적기업 제품을 구매했고 올해는 63.5% 증가한 3133억원을 구매 예정”이라고 발표했다. 그러나 정작 사회적기업 관계자들은 현재 공공기관 우선구매제도가 실효성이 부족하다고 입을 모았다.

‘최저가 입찰제’방식은 가격 경쟁력이 낮은 사회적기업이 공공기관에 조달하는 데 장애물이 되고 있다. 사회적기업의 경우 일반 기업보다 가격 경쟁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심지어 공공기관들이 납품 단가를 계속 낮추는 일도 발생한다. 취약 계층을 고용하여 피혁 제품을 제조하는 사회적기업 C사 관계자는 “작년부터 공공기관에서 납품단가를 너무 심하게 낮추면서 ‘차라리 중국에서 생산해서 여기서 포장이나 봉합만 해서 단가를 맞추면 안 되겠느냐’고 한다”며 “취약 계층을 고용하면 단가를 낮추는 데도 한계가 있는데 무조건 가격을 낮추고 중국에서 생산해온다면 사회적기업 제품을 구매하는 게 대체 무슨 의미냐”고 했다.

조달청 등록을 위한 높은 진입 장벽도 문제다. 제도적으로는 입찰 과정에서 사회적 기업에 가산점을 부여하거나, 일부 품목에서 제한입찰을 할 수 있지만, 실질적으로 사회적기업을 배려해 명시하는 경우가 많지 않기 때문이다. 유통 사회적기업 ‘청밀’의 경우 “지금까지 여러 번 조달청 전자입찰에 올리려고 했지만 사회적기업 혜택은커녕 어떤 곳은 전년 매출이 100억원, 많게는 600억원 이상인 곳으로 제한을 뒀다”며 “사회적기업을 우선구매하는 제도가 있다고 하지만 제도와 실제 현실 간의 괴리가 크다”고 했다.

한편 공공기관이 원하는 제품과 사회적기업이 공급하는 제품 간에 차이가 크다는 것은 사회적기업이 해결해야 할 과제로 지적된다. 청소용역 사회적기업 B사 대표는 “공공기관들이 사회적기업 제품을 우선으로 구매하려 해도 필요한 물품을 생산하는 곳이 없다는 이야기도 많다”며 “사회적기업들도 마냥 사회적 가치만 생각하고 제품을 생산하기 이전에 어떤 제품이 시장 수요가 있는지를 파악해서 판로를 전략적으로 고려해가며 생산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현재 사회적기업에서 생산하는 제품 구매 실적만을 보고하라고 지침을 보내고 있는데, 세부 계약을 일일이 확인할 수는 없는 상황이다”며 “기획재정부와 안전행정부와 협력하여 허위실적 보고가 적발될 시 합당한 조치를 취할 생각이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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