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30일(화)

[Cover Story] [하트하트재단과 함께 하는 장애인식 개선 캠페인 ‘해피스쿨’] ① 발달장애 오빠 연주 듣고 나니 장애인 친구가 좋아졌어요

[Cover Story] 하트하트재단과 함께 하는 장애인식 개선 캠페인 ‘해피스쿨’

발달 장애인 차별 경험, 지체장애인보다 많아… 따돌림 등 학교폭력 우려
발달 장애 가졌지만 오케스트라 단원 거쳐 音大 졸업한 청년들
초등학교서 연주했더니 아이들 장애 인식 바뀌고 스스로 자존감도 높아져

교육을 마친 수서초등학교 6 학년 1반 학생들이“장애인 친구들도 우리와 다르지 않다 는 것을 깨달았다”고 입을 모아 말했다. /하트하트재단 제공
교육을 마친 수서초등학교 6 학년 1반 학생들이“장애인 친구들도 우리와 다르지 않다 는 것을 깨달았다”고 입을 모아 말했다. /하트하트재단 제공

왕따와 학교 폭력. 유형만 다를 뿐 본질은 똑같습니다. 또래 사회에서 약한 아이를 괴롭힌다는 점입니다. 해결 방법은 여러 가지이지만, 본질은 하나입니다. ‘약한 아이를 배려하는 것’입니다. 그 아이는 왜 다른지 이해하고, 세상에는 나보다 약한 아이가 많으며, 약한 아이를 도와줘야 더불어 함께 살 수 있다는 것. ‘더나은미래’는 ‘하트하트재단’과 함께 올 한 해 장애인식개선 캠페인 ‘해피스쿨(Happy School)’을 시작합니다. 발달 장애를 지녔지만 오케스트라 단원을 거쳐 음악대학까지 졸업한 청년들이 직접 초등학교를 찾아갑니다. 이들이 불러올 마법같은 변화를 기대하고 응원합니다. 편집자 주


“안녕하세요. 홍정한입니다. 24살입니다. 최선을 다합니다. ‘왕벌의 비행’ 좋습니다. 훌륭한 플루트 연주자가 되고 싶습니다.”

어눌한 말투의 홍씨는 2급 자폐성 장애인이다. 방금 전 봤던 ‘장애 인식 개선 애니메이션’의 주인공과 똑같다. 하지만 아이들은 그때처럼 키득거리지 않았다. “쟤, 왜 저래?”라던 소곤거림도 사라졌다. ‘꼴깍’ 침을 삼키며 호기심을 보이는 아이도 있었다. 플루트를 입에 댄 홍씨는 ‘왕벌의 비행'(림스키 코르사코프 작)을 연주했다. 빠르고 현란한 선율이 교실을 감쌌다. 플루트 소리가 멈추자 박수갈채가 쏟아졌다. 이을숙 강사는 “지금까지 보고 들은 것으로 퀴즈를 낼게요”라며 “‘장애인도 ○○할 수 있다’ 안에 빈칸을 채워보자”고 했다. ‘수영’, ‘노래’, ‘공부’ 등 갖가지 대답이 쏟아졌다. 한 아이가 “장애인도 ‘행복’할 수 있다!”고 큰소리로 외쳤다.

지난 18일 서울 이수초등학교 6학년 1반 아이들과 함께한 하트하트재단의 장애 인식 개선 교육 ‘해피스쿨(Happy School)’ 현장. 아이들은 수업을 시작한 지 30여분 만에 ‘장애인은 우리와 다르지 않다’는 것을 스스로 인정했다. 수업에 참여한 임희원(12)양은 “장애인은 보통 사람과 다르다고 생각했는데, 그런 생각이 부끄러웠다”고 했다. 조아진(12)양은 “지금까지는 그저 동생처럼 느껴져 볼을 꼬집기도 하고 무시한 적도 있는데, 앞으로 그들을 인정하고 격려해줄 것”이라고 했다. 현재 이수초등학교에는 전교생 679명 중 12명이 장애인이다. 임순자(36) 담임교사는 “그동안 아이들에게 ‘발달 장애’에 대해 제대로 설명해줄 기회가 별로 없었는데, 이렇게 재밌게 이해시키고 발달 장애인이 직접 연주도 들려주니 아이들이 쉽게 받아들이는 것 같다”고 말했다.

◇’발달 장애’, 장애인 인식 개선의 사각지대

발달 장애란 자폐, 지적장애 등 몸은 또래와 비슷하게 성장하지만 생각하는 능력이 낮고, 다른 사람과의 소통에 어려움이 있는 장애를 말한다. 장애 학생과 일반 학생이 함께하는 ‘통합 교육’이 많아지면서 장애인에 대한 인식 수준은 점점 높아지고 있지만, 발달 장애에 대한 인식은 제자리 수준이라는 평가가 많다. 보건복지부 조사에 따르면 ‘발달 장애 청소년 중 장애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차별을 받은 적이 있다’는 응답이 전체 74.2%에 달했다. 반면 지체장애인은 31.2%, 시각장애인은 25.5%만 ‘차별받은 적 있다’고 답했다(2008년). 홍정한씨의 어머니 정은희(52)씨는 “자폐아를 소재로 하는 영화가 나오는 등 매스컴을 통해 발달 장애가 알려지면서 사람들의 생각이 바뀐 부분은 있지만, 여전히 많이 부족한 편”이라고 했다. 돌발적인 행동이나 단순한 호기심으로 인한 행동을 ‘가해’로 여기는 사람이 많다는 것이다. 정씨는 “자폐아들은 반복적인 행동을 하는 습관이 있는데, 가게의 아이스크림 통을 자꾸 열고 닫는 아이를 교육한다고 가게 주인이 멍들 때까지 회초리를 때린 일도 있었다”고 했다.

하트하트재단이 지난해 초등학생 2172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을 보면 발달 장애인을 바라보는 또래 친구들의 시각을 엿볼 수 있다. ‘이해가 느리다'(60%), ‘허약하다'(44%), ‘불쌍하다'(44%), ‘둔하다'(43%) 등 부정적인 문항에 응답하는 경향이 높았고, ‘공부를 잘한다'(15%), ‘영리하다'(11%), ‘깔끔하다'(11%) 등 긍정적인 문항은 외면당했다. 평점 16점 미만이면 부정적 태도를 갖는 것으로 평가되는 조사에서 기록된 평균 점수는 13.71점. 문제는 이 같은 인식이 ‘학교 폭력’이나 ‘왕따’ 문제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2011년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이 초·중·고 학생 9000여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12%의 학생이 ‘장애 학생을 놀리거나 따돌린 경험이 있다’고 답하기도 했다.

◇또래 친구들도 “느리고, 불쌍하다”고 여겨

하지만 정규교육 과정에서 장애 인식 개선 교육 프로그램은 거의 없다. 전상희 서울교육청 특수교육지원센터 장학사는 “최근에는 시·청각장애인 수가 줄고 발달 장애인 수는 많아지는 추세인데, 이들의 관리는 시·청각장애인에 비해 훨씬 어렵다”고 했다. 돌발 행동을 일삼는 학생에 대해서는 특수교사 등의 인력을 더 투입해야 하는데, 이는 곧 재원의 문제와 연결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하트하트재단은 지난해 16개 학교, 8500명의 학생을 대상으로 직접 교육에 나섰다. 신인숙 하트하트재단 이사장은 “8년 전 발달 장애 청소년을 위한 음악 교육을 시작한 것은 이들을 세계적인 음악가로 만들겠다는 게 아니라 이들을 통해 장애 인식을 개선하고픈 목적이 컸다”며 “8년 만에 음대 졸업생까지 배출하면서 이들을 앙상블로 만들어 교육하면 일반 학생들에게는 인성 교육이 되고 학교 폭력과 왕따의 가장 큰 피해자인 장애 학생에게도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했다”고 말했다.

해피스쿨에서 연주를 맡은 ‘하트미라콜로 앙상블’은 배현규(29·지적장애 2급), 홍정한(24·자폐성 장애 2급), 김우진(24·지적장애 3급) 등 발달 장애인 5명으로 구성됐다. 하트하트재단이 운영하는 국내 최초 발달 장애인 청소년 오케스트라 ‘하트하트오케스트라’에서 실력을 쌓아 음대까지 졸업한 이들이다. 대학 졸업 후 갈 곳이 마땅치 않았던 이들에게는 ‘예술 강사’라는 훌륭한 직업이 생기게 됐다. 홍씨의 어머니 정은희씨는 “정한이가 아이들의 인식 개선을 돕기도 하지만 그를 통해 자존감도 높인다”며 “도움을 받기만 했던 자신이 누군가를 돕고 있다는 마음이 커다란 치유의 에너지가 되고 있는 것 같다”고 했다. 장진아 하트하트재단 사무국장은 “발달 장애 아이들이 자기 입으로 그 이야기를 한다는 게 해피스쿨의 가장 큰 포인트”라고 말했다.

◇해피스쿨, “직접 보고, 스스로 느끼게 한다”

지난 4일 오전 11시 서울 송파구 방이동 하트하트재단 리사이트홀에 서울시내 30개 초등학교 교장선생님들이 모였다. 장진아 사무국장은 “지난해 교육 이후 설문조사를 해보니 ‘바보 같다’ ‘외톨이다’ ‘이해가 느리다’ ‘지저분하다’ ‘이기적이다’라는 부정적인 문항에 대한 응답 비율이 절반가량 낮아졌다”고 평가했다. 김희아 수서초등학교 교장은 “아이들이 발달 장애 학생을 괴롭히는 가장 큰 이유는 그에 대해 잘 모르기 때문”이라며 “따로 설명을 듣기 전까지는 ‘그저 모자란’ 학생으로만 생각하기 쉽다”고 했다. 작년 교육에 참여했던 신채연(10·서울오류남초)양은 “발달 장애 오빠가 들려주는 연주는 감동적이었다”며 “앞으로는 장애를 가진 친구가 있더라도 차별하거나 싫어하지 않고 친하게 지낼 것”이라고 했고, 최다은(11·상도초)양은 “장애를 가진 사람들도 노력하면 얼마든지 자신의 재능을 인정받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했다.

2년차에 접어든 올해는 4월부터 12월까지 30개교, 550학급의 1만5000명이 교육에 참여할 계획이다. 김현정(39) 해피스쿨 전문강사는 “평소에 장애 학생을 때리고 왕따를 주도했던 덩치 큰 친구가 ‘장애를 가진 친구도 소중하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 앞으로 절대 장애인을 괴롭히지 않겠다’는 다짐을 진솔하게 써내기도 했고, 뇌병변 환자 언니를 가진 학생은 ‘그동안 언니가 부끄러워 친구들에게 말하지 않았는데, 이제 당당히 언니를 소개하고 싶다’고 한 적도 있다”면서 “교육을 하면서 아이들의 변화와 다짐에 마음이 뭉클할 때가 많다”고 했다.

1 한 학생이 장애인에 대한 자신의 다짐을 부채에 적고 있다. 2 홍정한씨가 아이들에게 플루트 연주를 들려주고 있다. /하트하트재단 제공
1 한 학생이 장애인에 대한 자신의 다짐을 부채에 적고 있다. 2 홍정한씨가 아이들에게 플루트 연주를 들려주고 있다. /하트하트재단 제공

숫자로 보는 발달 장애인에 대한 인식

13.71 평점 16점 미만이면 부정적 태도를 갖는 것으로 평가되는 조사에서 기록된 점수.

60 ‘이해가 느리다’고 부정적으로 답한 비율. ‘영리하다’‘깔끔하다’와 같은 긍정적인 문항보다 높았다.

74.2 보건복지부 조사에서 발달 장애인 이라는 이유만으로 차별 받은 적이 있다고 답한 학생의 비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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