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6일(월)

“타인 배려·공동체 책임… 자원 봉사도 어릴 때부터 가르쳐야”

세계자원봉사협의회 이강현 회장

미국은 재난 발생하면 인적·물적 피해 고려해 5년 이상 봉사계획 수립
사회문제 해결하는 봉사 한국선 확인증 받으려 해
각계 지도자가 나서면 기업·단체들도 따라와… 자원봉사 문화 성장 가능
글로벌 기업, 컨설팅할 때 1명당 100달러 지불 관례, 국내 기업은 찾기 어려워

미상_사진_자원봉사_이강현회장_2013자기가 일하는 분야에 애정을 가진 사람은 눈빛부터 다르다. 하나를 물으면 다섯 이상의 답변이 돌아온다. 정해진 인터뷰 시간을 넘어도 초조해하지 않는다.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지 못한 것을 아쉬워할 뿐이다. 이강현(68) 세계자원봉사협회(IAVE) 회장이 그랬다. 저녁식사 무렵 시작된 인터뷰가 밤 9시까지 이어졌다. 이미 3시간에 걸친 심층 토론을 끝낸 뒤였는데도, 이 회장은 지칠 줄 몰랐다. “식사는 나중에 하면 된다”며 국내 자원봉사의 문제점과 대안을 쉼없이 풀어냈다.

이강현 회장은 한국의 자원봉사와 역사를 함께 한 인물이다. 1991년 한국자원봉사연합회 창립을 시작으로 민간 자원봉사단체인 볼런티어 21(현 한국자원봉사문화)과 ‘한국자원봉사단체협의회’를 설립, 무보수로 일했다. 쉽고 재미있는 자원봉사를 일컫는 ‘볼런테인먼트(Voluntainment)’ 개념을 만들었고, ‘자원봉사관리자(코디네이터)’ 육성을 시작했다. 2008년, 아시아인 최초로 세계자원봉사협의회 회장으로 선출된 그는 지난 2012년 재선됐다. 세계자원봉사협의회는 전 세계 70개국을 회원으로 두고 있는 자원봉사 부문의 세계적인 민간 네트워크다. 지난달 이 회장을 만나 자원봉사의 세계적인 흐름과 한국 자원봉사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다.

―현재 전 세계적으로 자원봉사와 관련해 떠오르는 화두는 무엇인가.

“UN 새천년개발목표(MDGs)가 종료되는 2015년, 국제 개발협력 비전을 설정하는 ‘포스트(Post) MDGs’가 나온다. 지난해 브라질에서 ‘리우+20회의(지구환경정상회의 20주년)’가 열렸는데, 포스트 MDGs 목표에 자원봉사가 중요한 요소로 고려돼야 한다는 것에 의견이 모아졌다. 이는 전 세계적으로 자원봉사 문화를 한 단계 진보시키는 계기가 될 것이다. 또한 최근 세계 각국에서 가장 우려하는 점이 장기 봉사자들의 감소 현상이다. 생활 리듬이 빨라지면서 1년 동안 꾸준히 봉사하던 이들의 호흡이 최근 3개월로 단축됐다는 것이다. 이에 많은 나라가 SNS나 온라인을 통해 자원봉사 교육·관리·기획·진행이 손쉽게 이뤄질 수 있는 새로운 시스템을 개발하고 있다.”

국내 자원봉사 흐름을 들여다볼 때, 현재 가장 문제되는 이슈는 무엇인가.

“자원봉사란 지역사회의 니즈(needs)를 충족시키기 위한 활동을 말한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봉사자의 니즈에 지역사회 문제를 끼워 맞추는 식으로, 거꾸로 가고 있다. 시간 인증을 요구하는 문화가 형성된 게 가장 큰 문제다. 미국 병원을 예로 들면, 50시간 이상 자원봉사 활동을 하지 않으면 시간 확인증을 받을 수 없도록 돼있다. 시민들도 굳이 봉사 시간을 확인받으려 하지 않는다. 반면 우리나라는 2시간만 봉사해도 시간 인증을 받을 수 있고, 시간 인증을 받지 않으면 봉사가 아닌 듯한 분위기가 형성돼 있다. 또 다른 문제는 근본적인 사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자원봉사 활동이 거의 없다는 점이다. 미국의 자원봉사 활동은 재난, 교육, 환경, 대인문제 등 총 4가지 사회문제를 해결하는데 중점을 두고있다. 재난이 발생하면 최소 5년에 걸친 자원봉사 계획을 세운다. 물적, 인적 피해뿐만 아니라 심리적인 문제까지 고려하기 때문이다.”

이강현 회장은 지난 1월 29일 자원봉사 관련 실무자들과 함께 자원봉사의 발전 방향을 토론하는 이색 토크 시간을 가졌다. /한국자원봉사문화 제공
이강현 회장은 지난 1월 29일 자원봉사 관련 실무자들과 함께 자원봉사의 발전 방향을 토론하는 이색 토크 시간을 가졌다. /한국자원봉사문화 제공

―자원봉사에 대한 인식 변화를 위해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무엇일까. 혹시 성공을 거둔 사례들이 있다면.

“사회적으로 영향력 있는 인물이 움직이면 변화는 빠르게 확산된다. 1997년 미국 클린턴 대통령이 ‘자원봉사 정상회담’을 가졌다. 당시 1500만명에 달하던 비행청소년을 구제하는 방안으로 자원봉사를 떠올린 것이다. 클린턴은 전직 대통령, 37명의 주지사, 대학 총장 102명을 비롯해 정치·종교·경제 등 각계 지도자들을 불러 모았다. 4일간에 걸친 토론이 끝난 뒤, 클린턴이 기자 회견을 열었다. ‘비행청소년들을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무언가를 나누자’는 슬로건을 내걸었다. 토론에 참여한 저명인사들이 실제로 지역사회에 나가 직접 자원봉사를 하기 시작했다. 이를 본 기업과 단체들이 비행청소년을 위해 기부·봉사하겠다고 앞다퉈 나섰다. 이는 미국 내의 자원봉사 문화를 성장시킨 중요한 사건이었다.”

―자원봉사의 효과성 측정에 대한 논의도 제기되고 있다. 다른 나라에는 자원봉사의 사회적 임팩트를 위한 측정 기준이나 평가 방식이 마련돼 있나.

“어떤 봉사를 했고, 몇 명이 참여했는지 여부에 중점을 둬선 안된다. 봉사를 해서 실제로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가 중요하다. 외국에선 사회적 영향력을 측정하기 위해 최소 3년 이상에 걸친 연구와 평가를 진행된다. 예를 들어, 알코올 중독자를 위한 프로그램을 기획했다면 교육 후 한 달, 6개월, 1년, 3년 단위로 중독 정도가 어떻게 달라졌는지를 꾸준히 관찰하는 것이다. 글로벌 기업들은 사회적 효과를 측정하는 데 막대한 비용을 투자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봉사활동이 ‘스펙 쌓기’ 도구로 활용되고 있다. 어디서부터 매듭을 풀어야 할까.

“예전에 캐나다, 미국, 일본, 한국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자원봉사 인식 조사를 한 적이 있다. 다른 나라 청소년들은 보통 남들이 가기 싫어하는, 어려운 봉사활동에 몰리는 경향이 있더라. 자원봉사를 사회 문제 해결을 위한 활동으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 한국 청소년들은 쉽고, 재미있는 봉사를 선호하고 있었다. 긴 호흡으로 가정에서부터 제대로 된 나눔 교육이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자원봉사는 ‘타인에 대한 배려’와 ‘공동체에 대한 책임 의식’에서 출발한다. 부모가 자녀들이 어릴 때부터 자원봉사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가질 수 있도록 교육해야 한다.”

―한국에도 CSR(기업의 사회적 책임)이 주요 키워드로 떠오르면서, 기업과 자원봉사단체 사이의 교집합이 넓어지고 있다. CSR의 역사가 깊은 선진국은 어떤가.

“네덜란드에서는 12년 전부터 기업과 시민단체의 파트너십을 위한 ‘소셜 마켓 시장(Social Market Place)’을 열고 있다. 각 지역에서 자원봉사활동을 하고 있는 기업과 시민단체들을 한자리에 불러모은다. 국내에서 시민단체들이 일반인을 대상으로 단체 홍보를 하는 박람회와는 성격이 다르다. 시민단체들은 이때 기업과 어떤 프로젝트를 할 수 있고, 이와 관련된 단체의 역량이 무엇인지에 대해 구체적으로 홍보한다. 네덜란드에서 성공한 것을 보고, 2011년엔 불가리에서도 같은 행사가 열렸다. 당일에만 40개의 파트너십이 성사됐다고 하더라.”

―파트너십이 강화되려면, 기업과 시민단체는 어떤 노력을 해야 할까.

“시민단체의 역량강화를 위한 기업의 교육과 컨설팅이 필요하다. 한국자원봉사문화도 우리은행과 KP&G의 컨설팅으로 많은 것을 얻었다. 단체들도 기업과 함께 프로젝트를 진행하려면, 기업의 용어와 성격을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 글로벌 기업들은 단체와 임직원 자원봉사를 진행할 때, 단체에게 직원 1명당 일정 비용을 지불한다. 이는 프로그램을 기획하기 위해 들어간 단체의 수고와 노력에 대한 정당한 대가다. 직원 한 명당 평균 100달러을 컨설팅 비용으로 내는 것이 관례다. 반면 국내는 자원봉사 프로그램을 기획한 단체에 컨설팅 비용을 따로 주는 기업을 찾기 어렵다. 만약 자원봉사 프로그램이 기획된 상태에서 기업이 갑자기 참여를 취소할 경우, 최소 3만달러의 위약금을 지불한다. 이 역시 의무 규정이 없지만, 약속을 깬 것에 대한 마땅한 대가라고 여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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