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20일(월)

사회봉사 녹인 교과목… NPO 현장이 눈앞에 성큼

[NPO와 대학 수업의 통합] ‘빅이슈’ 잡지 판매로 노숙인 자립 도와… ‘흥부와 놀부’ 번역해 난민 아동에 전달
NPO 기관 정보 부족해 아쉬운 점 있어

정광욱(19·경희대 정치외교학과 1년)씨는 지난 학기에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시민교육’ 수업을 통해 노숙인에 대한 편견을 깨기 위한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먼저 노숙인의 자립을 돕는 사회적 기업 ‘빅이슈코리아(이하 빅이슈)’를 현장으로 정하고 ‘현장참여활동 계획서’를 작성했다. 이후 ‘빅이슈’를 직접 방문해 현장 인터뷰를 하고 ‘빅돔’이라는 판매도우미 교육을 받았다. 정씨는 “회기역에서 일주일에 한 번, 2~4시간씩 빅이슈 판매원과 함께 잡지를 팔았다”며 “활동을 통해 노숙인은 게으를 것 같다는 등의 선입견도 깨지고 노숙인 자립 지원단체의 중요성도 깨달았다”고 말했다.

서울대를 비롯한 경희대, 서울여대, 이화여대 등 서울지역 10여개의 대학은 ‘사회적 책임을 실천하는 리더 양성’을 목표로 사회봉사 관련 교과목을 개설해 운영 중이다. 1994년 ‘사회봉사’ 교과목을 도입한 한양대의 경우 2009년부터 필수교양과목으로 지정했다. 2006년부터 ‘사회봉사(1학점)’ 교과목을 개설한 서울대는 매년 1500여명이 사회봉사교과목을 수강하고 있다. 7년째 누적 수강생은 1만명에 달한다.

 왼쪽부터 지난 학기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시민교육’ 교과목 수강생인 정광욱씨, 김수빈씨, 조하영씨와 채진원 교수.

왼쪽부터 지난 학기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시민교육’ 교과목 수강생인 정광욱씨, 김수빈씨, 조하영씨와 채진원 교수.

◇학생들이 직접 설계하고 체험한다,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시민교육’

경희대에서는 2010년부터 20여명의 전담 교수가 ‘시민교육(3학점)’이라는 필수교양수업을 운영했다. 보통 3~4명이 조를 이뤄 직접 환경, 노동, 사회적 약자 등 관심분야와 연구주제를 정한다. 청년노동조합 ‘청년유니온’을 통해 I 호텔에서 비정규직 노동자의 삶을 체험한 조하영(19·철학과 1년)씨와 김수빈(20·경영학과 1년)씨는 “비정규직 노동법이 현실에서는 전혀 통하지 않아서 답답했다”며 “노동자의 입장을 경험하면서 윤리적 경영이 중요하다는 것을 피부로 느꼈다”고 소감을 밝혔다.

채진원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는 “현장성, 실현가능성 등 심사항목에 따라 계획서를 평가하고 현장활동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도와준다”며 “학생들은 연구주제 관련 NPO(Non-Profit Organization: 비영리 민간 단체)를 방문해 함께 정책 제안, 캠페인 등의 활동을 한다”고 설명했다.

◇전공교과목과 지역사회봉사를 결합시킨 서울여대의 ‘서비스-러닝’

서울여대는 2005년부터 ‘서비스-러닝(Service-Learning)’ 교수학습법을 도입했다. 전공수업과 지역사회봉사를 결합시킨 프로그램(전공 3학점+지역봉사 1학점)이다. 매년 한 학기당 400여명의 학생과 80여개 봉사기관이 참여하고 있다. 작년에 개설된 불어불문학과 ‘서비스-러닝’ 수업에서는 전래동화 ‘흥부와 놀부’를 프랑스어로 번역한 책을 만들어 프랑스권 아프리카 난민 아동들에게 전달하는 프로젝트를 실시했다. 미술, 체육, 심리 등 다양한 전공수업이 ‘서비스-러닝’과 연계되어 전공생들이 지역아동센터의 프로그램을 맡아서 진행하고 있다. 유숙영 서울여대 교육대학원 교수는 “전공수업을 맡는 전문 자원봉사자들이 NPO에 맞춤형 프로젝트를 진행하기 때문에 학생과 NPO 모두에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아시아개발협력단체 ㈔아시안프렌즈는 2010년부터 ‘제3세계와 국제개발협력’이라는 수업과 연결해 ‘나눔여행’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NPO의 전문실무자가 일일수업을 맡기도 한다. 작년에는 사전 수업을 수강한 10여명의 학생이 방학을 이용해 인도 오르차 찬드라반 마을을 방문했다. ㈔아시안프렌즈는 학생들의 조사결과를 토대로 영양 지원사업, 가축은행 등 현지에서 필요한 사업을 시행하고 있다. ㈔아시안프렌즈 김준식 이사장은 “개발협력공부를 하고 현지에 봉사활동을 다녀온 학생 중 20여명이 현재 후원자로 관계를 맺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동계학기, ‘제3세계와 국제개발협력’ 서비스 러닝 수업을 통해 인도 오르차 찬드라반 마을을 방문해 현지 조사 중인 서울여대 학생의 모습. /㈔아시안프렌즈 제공
지난 동계학기, ‘제3세계와 국제개발협력’ 서비스 러닝 수업을 통해 인도 오르차 찬드라반 마을을 방문해 현지 조사 중인 서울여대 학생의 모습. /㈔아시안프렌즈 제공
서울여대의 ‘서비스 러닝’ 프로그램은 국제개발협력 사업뿐만 아니라 지역아동센터, 노인복지시설 등 다양한 NPO 활동현장과 결합하고 있다. /서울여대 교수학습센터 제공
서울여대의 ‘서비스 러닝’ 프로그램은 국제개발협력 사업뿐만 아니라 지역아동센터, 노인복지시설 등 다양한 NPO 활동현장과 결합하고 있다. /서울여대 교수학습센터 제공
서울여대의 ‘서비스 러닝’ 프로그램은 국제개발협력 사업뿐만 아니라 지역아동센터, 노인복지시설 등 다양한 NPO 활동현장과 결합하고 있다.
서울여대의 ‘서비스 러닝’ 프로그램은 국제개발협력 사업뿐만 아니라 지역아동센터, 노인복지시설 등 다양한 NPO 활동현장과 결합하고 있다.

◇NPO 인력 보조 역할만… 한계 지적도

한편 교과목으로 운영되는 ‘사회봉사’의 한계를 지적하는 목소리도 있다. 서울 모 대학 4학년 권영민(가명·24)씨는 “처음에 기대한 봉사활동과 달리 기관의 인력이 부족해 행정업무만 했다”며 아쉬움을 토로했다. 학점이수라는 강제성이 있기 때문에 봉사활동의 계기를 제공한다는 점에서는 좋지만, 막상 현장에서는 부족함이 많았다는 것. 학생들의 입장에서는 기관에 대한 정보가 부족해 업무 이해가 쉽지 않았고, 인력 보조의 역할만 하는 경우도 태반이었다. 반면 봉사 기관 관계자는 “한 학기 30시간 정도의 활동으로는 학생들에게 교육과 활동이 이뤄지기 쉽지 않다”며 봉사의 지속성과 전문성에 한계가 있다고 설명했다.

서울대에서는 2009년 개설한 ‘공공인턴십’ 교과목을 2년 만에 폐지하기도 했다. 공공인턴십은 소수의 인원(최대 6명)을 대상으로, 2학점을 부여해 학생들의 시간과 노력이 더 필요하도록 설계했다. 수강생은 ‘공공인턴십’을 통해 NPO 현장에 인턴으로 참여하면서 이론과 현장을 공부했다.

참여하는 학생들의 반응은 좋았지만, 2년간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한계에 부딪혔다. 이봉주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외부기관과 협약이 필요한 부분이 있기 때문에 교수들이 개별적으로 진행하기는 어려웠다”고 말했다. 이봉주 교수는 “수강생 중 체육교육학을 전공하는 남학생은 수업을 계기로 사회적 기업을 창업했다”며 “공익섹터와의 접점을 마련해주면 자연스럽게 남을 배려하고 나누는 인재가 길러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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