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5일(일)

[진실의 방] 까칠한 인터뷰이가 좋다

인터뷰를 하다 보면 ‘기자’라는 직업에 냉소적인 사람을 만날 때가 있습니다. ‘나는 이미 기자라는 인간들을 만나볼 만큼 만나봤으며, 내 앞에 있는 당신 역시 그들과 별반 다를 게 없다는 걸 잘 안다’는 눈빛을 하고 있죠. 기자들이 어떤 실수와 잘못을 했는지 설명해주는 인터뷰이도 있습니다. 사건이 터지면 불나방처럼 달려들어선 정작 기사에는 자극적인 얘기만 가득 쓰고 꼭 써달라고 했던 중요한 얘긴 쏙 빼놓는다는 푸념이죠.

이상한 소리일지 모르겠으나, 저는 냉소적인 인터뷰이를 좋아합니다. 이들에겐 몇 가지 공통점이 있습니다. 대부분 한 분야에서 오래 일한 현장 전문가라는 것, 자기 업적을 부풀리지 않는다는 것, 기사에 멋있게 나가는 걸 싫어한다는 것 등입니다. ‘제발 포장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써달라’고 요구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누는데 한쪽이 일방적으로 냉소적인 태도를 보이니 인터뷰 초반에는 분위기가 썩 좋지 않습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주파수가 맞아떨어지면, 분위기가 반전됩니다. 기억에 남는 인터뷰이는 모두 그랬습니다.

더나은미래는 2018년 마지막을 장식할 12월호 커버스토리 주인공으로 지난 20년간 북한을 80여 차례 다녀온 인세반 유진벨재단 이사장을 택했습니다. 인터뷰 날짜와 시간을 조율하면서 ‘까다로운 사람일 수 있겠다’는 짐작은 하고 있었습니다. 역시나, 인터뷰를 마치고 돌아온 후배는 ‘쉽지 않았다’며 고개를 저었습니다. 그는 기자나 언론에 대해 냉정함을 지닌 사람이었습니다. 기사에는 빠졌지만, 구구절절 옳은 이야기가 많았습니다.

“개발 구호 사업은 유엔 대북 제재에 걸리지만, 식량·의약품 지원을 하는 순수 자선 단체는 대북 제재와 관련이 없다. 그런데 기자들이 그걸 구별 못 하고 막 쓰니 정부 관료들도 헷갈리는 것이다.” “이번에 북한에 가져가는 물품 중에 라면이 있는데 그것 때문에 ‘유진벨재단의 북한 반입품에 한국산 라면이 포함됐다’는 기사가 났다. 북한 사람들 줄 게 아니라 우리가 먹을 라면인데 그게 뭐 중요하다고.”

반복된 좌절의 경험이 사람을 냉소하게 만듭니다. 우리가 만난 인터뷰이들도 기자들에게 기대하고 그 기대가 꺾이는 상황이 반복되면서 점점 차갑게 변했을 겁니다. 한해의 끝에 서서 ‘내년에는 언론도 달라질 것’이란 거짓말은 차마 못 하겠습니다. 다만, 얼마든 냉소하되 지치지는 말아 달라는 당부를 그들에게 전하고 싶습니다.

 

[김시원 더나은미래 편집장 blindletter@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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