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2월 24일(토)

[진실의 방] 9·11 테러를 막은 사람

김시원 더나은미래 편집국장
김시원 더나은미래 편집국장

미국의 어느 상원의원이 비행기를 탔다가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항공기 기장이 있는 조종실 안으로 다른 승무원들이 너무 쉽게 드나든다는 점이었다. 안전상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 그는 즉시 법안을 발의했다. 기장이 조종실 안에서 문을 열어줘야 바깥에 있는 사람이 들어갈 수 있게 일종의 잠금장치를 항공기마다 장착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항공사들은 난색을 표했다. 이런 장치를 모든 비행기에 설치하려면 일단 비용이 많이 들고 항공기 무게가 늘어나 연료도 더 많이 든다는 설명이었다. 법안을 낸 의원이 잠금장치 회사와 관련이 있다는 루머가 돌기 시작했다. 누명까지 써가며 그는 어렵게 법안을 통과시켰다. 이후 모든 미국 항공기와 미국 땅을 밟는 외국 항공기들이 잠금장치를 장착하게 됐고, 그 덕에 알카에다가 항공기를 납치해 벌인 ‘9·11 테러’는 일어나지 않았다. 아무 일도 없었기 때문에 의원을 칭찬하는 사람도 없었다.

미국 경제학자 나심 탈레브가 쓴 ‘블랙 스완’이라는 책에 나오는 이야기다.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는 위험 상황에 대비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그런 일을 하는 사람들은 대체로 어떤 대접과 평가를 받는지, 가상의 이야기를 통해 생각해보게 한다.

우리 주변에도 이런 일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직업으로 하는 사람도 있지만, 돈 한 푼 안 받고 자기 시간을 내서 하는 사람들도 있다. 적십자 자원봉사자들이 하는 ‘예찰’ 활동이 대표적이다.

태풍이 오거나 비가 많이 내릴 거라는 기상 예보가 뜨면 전국의 적십자 재난상황실로 그 지역 자원봉사자들이 예찰을 나가기 위해 모여든다. 자주 침수되는 지역, 문제가 생길 만한 지역을 미리 예상해서 살펴보는 활동이다. 나뭇가지가 부러져 있거나, 빗물이 빠지지 않는 곳을 발견하면 즉시 필요한 조치를 취한다. 사람들이 다가가지 못하게 펜스를 치거나 관에 알리기도 한다.

예찰은 사고의 작은 조짐을 발견해 큰 사고를 막는 일이다. 다시 말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게 하는 일’이다. 그 덕에 누구도 다치거나 죽지 않지만 ‘숫자’로 보여줄 수 있는 성과가 없기 때문에 임팩트가 없는 일로 치부된다. 그럼에도 자원봉사자들이 예찰을 계속하는 이유는 멈추는 순간 그 일이 일어난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는 위험을 대비하는 사람들. 지난 10·29 참사 때도 그런 사람들이 있었다면 이야기는 달라졌을까. 나심 탈레브처럼 뒤늦은 상상을 해본다.

김시원 더나은미래 편집국장 blindletter@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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